복학과 함께 시작된, 이중생활
이번 이야기는 앞선 물류 회사에서 마케터로의 직무 변경을 거쳐, 어쩔 수 없이 학교에 돌아와 졸업 전시와 사업을 동시에 도전했던 이야기입니다. 왜 학교로 돌아가야 했는지 못 보고 오셨다면, 앞선 이야기를 보고 오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어쩔 수 없이 학교로 돌아가야 했던 그때, 솔직히 마음이 썩 유쾌하진 않았습니다. 한참을 학교 밖에서 지낸 터라 아는 사람은 교수님 말고는 거의 없었고, 무엇보다 졸업 전시를 '팀플'로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이 뇌를 살짝 때렸기 때문이죠.
타고난 INFP에게, 학번 차이 많이 나는 친구들과 팀플을 한다는 건 꽤 큰 사회적 이벤트였습니다. 그래도 일단 졸업은 해야 해서 복학생의 민망함을 꾹 누르고 복학을 하게 되었죠.
이번 이야기는 그렇게 어설프게 시작된 졸업 전시 이야기와, 그 와중에 가족의 제안으로 뛰어든 정육 사업 이야기까지 '두 가지 생존기를 연달아 기록해보려 합니다.
한국에서 대학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다들 하나쯤은 팀플 트라우마가 잇죠. 교수님들이 도대체 왜 '혼자 해도 될 과제'를 꼭 싸움 나는 구조로 만들어주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입니다.
특히 디자인과의 졸업 전시 팀플은 그 악명이 자자합니다. 팀이 중간에 폭파되는 건 예사고, 피눈물 나는 감정싸움도 흔하거든요.
다행히 저는 편입생들과 팀을 이루게 되었고, 신기하게도 단 한 번의 싸움 없이 졸업 전시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드문 행운이었어요. 그 팀은 아직도 종종 만나 회포를 풀 만큼 좋은 인연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팀이 유독 평화로웠던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일단, 시국이 코로나 시국이었던지라 오프라인 전시 대신 온라인 전시로 바뀌면서, 쓸데없는 시간과 체력 낭비 없이 진짜 해야 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죠.
또한 디자인과 팀플이 힘든 이유 중 하나는, '각자의 미감(디자인 취향)'이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가뜩이나 예민하고 감성 충만한 디자이너 꿈나무들이 한 팀에 모이면, 협업이 쉽지 않죠.
하지만 UX영역의 졸업 전시는 미감만큼 '논리'와 '설계'의 완성도도 중요했고, 그 부분에서 사회 경험이 있던 제가 강점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생활에서 익혔던, 커뮤니케이션, 역할 분담, 기획 정리 등을 바탕으로 저는 흐름을 정리하고 UX 구조를 잡는 데 집중했고, 그 외의 디자인 적인 부분은 다른 팀원들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진짜 분업을 실현했죠.
특히, 저는 이미 디자인분야의 진로에서 벗어난 상황이었기에, 욕심을 내려놓고 철저히 서포팅 포지션을 자처했습니다. 욕심 없이 먼저 배려하니, 감정 상할 일도 줄어들었고 우리는 만족스러운 퀄리티로 졸업 전시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확실히 사회생활은 사람을 단련시킵니다. 길진 않았지만 직장 생활을 하고 학교에 돌아오니, 졸업 전시 프로젝트조자초 '회사 일보단 쉽다'는 마음이 생기더군요.
이미 사회생활에서 잔뜩 역치가 높아진 상태에서 조금 쉬운 프로젝트를 한다고 생각하니, 예전 같았으면 "이건 아닌데요?"부터 나왔을 상황에서도, "음... 이건 이런 의도겠구나"하며 혼자 정리하고, 팀원들 의견을 잘 듣고 조율하는 저를 보며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정리하고, 말도 정중하게 하고, 필요한 순간엔 선 넘지 않게 정리해 주는 모습. 아, 이래서 회사 다녀오면 달라지는 거구나 싶었습니다.
덕분에 팀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고, 논리 구조를 잡고 UX 흐름을 만드는 과정에서 진짜 협업이 가능해졌죠.
그렇게 졸업 전시 준비가 무르익던 어느 날, 사촌 형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요즘 시간 좀 있지? 형이랑 같이 고기 팔아보자."
... 갑자기 고기요?
처음엔 단순히 돕는 수준으로 이야기를 하더니, 어느새 같이 사업 얘기를 하게 되고 오프라인 정육점 지점을 늘리고, 온라인 브랜드를 런칭하게 되었죠.
그렇게 하루는 와이어프레임을 짜고, 다음 날은 고기 배치를 신경 쓰는 삶. 그렇게 UX 디자이너와 정육점 마케터의 이중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 다음 편에 고기 파는 썰 계속
바닥에서 구르며 최고가 되는 것보다, 살아남는 데 진심인 개복치입니다.
바닥부터 구르며, 사업을 말아먹고, 다시 일어서길 반복한 사회생활 10년 차, 생존형 직장인
- 스타트업 개복치팀의 개복치 팀장
- 들으면 오~ 할 만한 군생활 경력 보유
- 롤 최고티어 상위 0.1%까지 찍어본 경력 보유
- 침수 피해 4회 '살아있는 재난 블랙박스'
- 비둘기 자택 침공 저지 경력 보유
- 고기 좀 팔아 본 경험 보유(진짜 정육점)
- 창업 두 번 말아먹고 나름 괜찮았다 생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