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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전시 낮, 고기 파는 밤_최종

젊어서 해봤고, 젊어서 망했다.

by 집구석마케터

이번 이야기는 앞선 졸업 전시부터 정육점으로 이어지는 스토리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이전 스토리와 흐름이 이어지니, 전편을 못 보셨다면 아래 링크에서 보고 오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들어가며


오프라인 정육점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하자, 그제야 미뤄두었던 '온라인 브랜드 런칭'에 눈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이름부터 로고, 쇼핑몰, 랜딩페이지, 제품 이미지, 가격 설정까지.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혼자 만들었습니다. 낮에는 고기를 포장하고 썰고, 저녁엔 노트북을 붙잡고 사이트를 만들었죠. 지금 돌이켜보면, 정육점에서 일하는 디자이너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실제로 졸업 전시도 병행 중이었다는 게 반전)


그렇게 완성된 브랜드, '고기마스터' 그럴싸한 고기 사진과 예쁜 페이지를 구성해서 올렸지만, 현실은 냉정했습니다. 온라인은 오프라인과 다르게 '열심히 한다고 팔리는 곳'이 아니었거든요.


손님들은 클릭 몇 번이면 더 싸고, 더 큰 브랜드의 고기를 발견할 수 있었고, 우리의 정성은 손쉬운 가격 비교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오늘은 냉정한 온라인의 벽을 어떻게 돌파할지에 대한 정육 사업 이야기의 최종장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 없는 걸 만들기로 했다


사람들은 가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럼 너네가 더 싸게 팔면 되지 않냐?"


듣기엔 그럴싸하지만, 정육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온라인에서의 정육은 규모의 경제가 모든 걸 결정하는 업종입니다. 많이 사고, 많이 팔수록 원가는 내려가고, 단가가 싸도 남는 구조가 생기죠.


그렇기 때문에, 가장 싸게 파는 곳이, 가장 좋은 고기를 파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반대였습니다. 작은 정육점이었기에, 싸게도 못 팔고 더 낫다고 자부하기도 애매한 딱 그 '어중간한 존재'였죠. 100원 단위의 전쟁에서 우리가 이길 수 없다는 건 명백했습니다.


그래서 방향을 틀었습니다.


이미 있는 걸 더 싸게 팔기보단,

아예 '없는 걸 새로 만들어서' 사람들을 끌어들이자.



단순한 고기가 아니라, 고기를 즐기는 '경험'을 팔자


우리는 생각했습니다. "큰 정육업체는 하기 힘든 일, 작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정육점에서 고기를 파는 게 아니라, 고기로 인해 생기는 경험을 팔기로 했습니다. 캠핑장에서, 가족 모임에서, 친구와의 만남에서 고기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이야깃거리'가 되게 만드는 것.


그게 우리가 온라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었습니다.



첫 번째 히트 상품 : 돈마호크

고기마스터 - 뼈등심

4~5년 전쯤, 유튜브나 SNS에서 캠핑장 불판 위에 거대한 고기 하나 올려놓고 '토마호크 먹방'이라 하며 구워 먹는 영상들 기억하시나요. 그리고 그에 바로 이어서 '돈마호크'라는 상품이 엄청난 유행을 타기 시작했죠.


믿기 어렵겠지만, 그 '돈마호크'라는 이름을 만들고, 온라인에 팔기 시작한 게 바로 저였습니다.


온라인 스토어를 오픈한 지 5개월쯤, 수많은 신메뉴를 개발하기 위해 버린 고기만 톤 단위가 넘어가던 시기.


정육점 직원과 함께 유튜브를 보며 토마호크 캠핑 먹방을 보고 있던 어느 날, 제가 툭 던졌습니다.


"아니 저건 너무 커서 캠핑 가서 어떻게 먹냐. 코로나 시국이라 7~8명이서 캠핑 가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러자 직원이 말했습니다.

"그거, 돼지고기로도 비슷하게 만들 수 있는데요?"

바로 뼈등심 이야기였습니다.

돈마호크 - 뼈등심 + 삼겹살 + 새우살

사실 뼈등심은 정육 하는 사람들이 다 알지만, 잘 안 파는 부위입니다. 껍질 벗기고, 기름 치우고 살 발라내려면 포기해야 할 '맛있는 부위'가 너무 많거든요. 뼈등심 부위를 맛있게 팔기 위해선, 돼지고기 스테디셀러인 삼겹살, 새우살을 같이 포함하여 정형해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뼈등심에 포함된 삼겹살과 새우살을 따로 팔 수 없다는 아주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큰 업체에선, 굳이 뼈등심을 팔기 위해 너무 잘 팔리는 삼겹살과 새우살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생각했던 작은 '우리만 할 수 있는 메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전율이 일어났습니다.


"이거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토마호크가 인기 있는 이유는 소고기라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건 우리 모두가 어릴 적 TV에서 보던, '만화고기'의 현실판이었기 때문입니다. 손에 쥐고 뜯는 그 느낌, 그게 캠핑장에서 불 피워 놓고 먹을 때 딱 감성에 꽂혔던 것이죠.


거기에 코로나 시국. 대면 모임은 줄고, 캠핑과 차박이 유일한 탈출구가 되던 시기. 그런 시대적 맥락이 토마호크를 더 유행시킨 겁니다.


돈마호크 트래픽

1~2인이 먹을 수 있는 토마호크. 비싼고 큰 소고기가 아닌, 돼지고기로 만든 토마호크. 기름기 적당히 덜고, 진공 포장해서 배송하고, 잡기 좋게 한 손 크기로 정형한, 진짜 '한 입 크기 만화고기.' 우리는 마침내 '돈마호크'라는 이름의 신메뉴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두 번째 히트 상품 : 죽통삼겹살


돈마호크는 런칭되고 한 달이 될 때쯤부터 엄청난 트래픽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캠핑 유튜브를 하는 사람들이 먼저 연락 와서 협찬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지상파에서 하는 캠핑 프로그램에서 저희 제품을 사서 먹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 만에 돈마호크를 팔아서 만든 '고기마스터'의 매출이 정육점 매출을 넘어서기 시작했죠.


하지만, 저는 이 제품의 한계를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정육점'을 하고 있는 누구나 다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육 사업이나 고기 부위는 '특허'라는 것을 적용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카피캣이 늘어날 것은 당연할 것이라 생각했죠.


그래서 우리는 고기 부위가 아닌 '고기 경험'에 더 집중했습니다. '돈마호크'를 즐기는 사람들은 캠핑에서 '남들이 즐기지 못하는 '감성 있는 경험'을 더 즐기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더 좋은 경험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죽통 삼겹살 밀키트'였습니다.(죽통삼겹살, 대통삼겹살, 대나무통삼겹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고기마스터 - 죽통 갈비, 죽통 쪽갈비
고기마스터 - 죽통 목살, 죽통 삼겹살, 직화닭목살

캠핑용으로 대나무 안에 고기를 넣어 익히는 건 예전부터 있던 방식이었지만, 직접 준비하기엔 너무 번거롭습니다.


대나무를 따로 구입하고, 그에 맞게 고기를 손질해야 하며, 뚜껑이 없어서 육즙이 날아가기 십상이었죠. 그래서 우리는 아예 대나무를 구해, 뚜껑까지 맞춤 제작한 다음, 대나무 크기에 맞게 고기를 정형해서 세트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죽통삼겹살은 돈마호크만큼이나 대히트를 쳤습니다. 입소문을 타고 다시 새로운 고객이 유입되었습니다.



잘 될수록, 어긋나기 시작한 현실


그렇게 모든 게 잘 풀리는 듯 보였지만, 사촌 형과의 갈등은 점점 커졌습니다. 형은 사업을 무리하게 더 확장하자고 했고, 저는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대표는 형이었고, 확장은 그대로 진행됐습니다. 그때부터 빠르게 무너졌습니다.


월세, 고기 관리 비용, 인건비... 우리는 아직 그만한 고정비를 감당하기엔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저는 3개월 넘게 수입 없이 일을 했고, 결국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 지분 내려놓고, 이제 그만할게."

단순히 어려운 시기라서 그만둔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속되는 다툼과 스트레스, 그리고 함께 꾸려가기 어려운 방향 차이. 그래서 저는 1년 반 동안 정든 '우리소우리돼지'와, '고기마스터'를 내려놓고 떠났습니다.


저의 마지막 학창 시절과 함께,

저의 마지막 사업도 그렇게 정리되었습니다.



TMI) 사실 돈마호크와 죽통삼겹살에 대한 에피소드가 더 잔뜩 쌓여있지만, 글이 너무 길어지는 관계로 나중에 기회가 되면 별도의 글로 작성해 보겠습니다.



졸업 전시 낮, 고기 파는 밤은 이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다음 글은 사업을 정리하고 마케터로 재취업한 이야기로 이어가겠습니다.



개복치 이재선을 소개합니다

고기마스터 런칭한 개복치

바닥에서 구르며 최고가 되는 것보다, 살아남는 데 진심인 개복치입니다.


바닥부터 구르며, 사업을 말아먹고, 다시 일어서길 반복한 사회생활 10년 차, 생존형 직장인


Profile

- 스타트업 개복치팀의 개복치 팀장

- 들으면 오~ 할 만한 군생활 경력 보유

- 롤 최고티어 상위 0.1%까지 찍어본 경력 보유

- 침수 피해 4회 '살아있는 재난 블랙박스'

- 비둘기 자택 침공 저지 경력 보유

- 고기 좀 팔아 본 경험 보유(진짜 정육점)

- 창업 두 번 말아먹고 나름 괜찮았다 생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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