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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전시 낮, 고기 파는 밤_2

일개 학생이었던 내가 갑자기 정육점 사장님?

by 집구석마케터

이번 이야기는 앞선 복학 생활 동안 경험했던, 정육점 브랜드 창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졸업 전시 이야기를 보고 와야 이야기 흐름이 이어지니, 못 보신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보고 와주세요.



들어가며


졸업 전시 준비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슬며시 이런 생각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근데... 생각보다 시간이 좀 남네? 알바라도 해야 하나?


그 타이밍에 사촌 형에게서 저화가 왔습니다. 오프라인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던 형이었죠.


"같이 사업해 볼래?"


딱 봐도 졸업 전시와 동시에 하기엔 무리수라는 것을 알았지만, 젊을 때 이런 거 안 해보면 언제 또 해보겠냐는 생각으로 흔쾌히 정육점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중 4일은 졸업 전시 준비, 나머지 3일은 고기 썰고 포장하는 본격적인 이중생활이 시작됐습니다.


이번 회고는 그 시절 묵혀놨던 정육점 사업 이야기를 꺼내보려 합니다.



고기는 어떻게 팔아야 하나요?

IMG_4980.JPG 맛있는 소고기

정육점 사업에 호기롭게 합류한 저에게 주어진 미션은 두 가지였습니다.

오프라인 정육점 '우리소우리돼지' 매출 올리기

온라인 정육 브랜드 '고기마스터' 런칭하기


고기 써는 것도 처음인데 브랜드를 만들라니... 그때 제 상태는 거의 "고기요...? 먹어본 적은 많은데요" 수준이었죠. 게다가 때는 코로나로 모든 자영업자들이 비명을 지르던 시기였죠.


정육점 매출은 갈수록 빠지고 있었고, 사람들은 지갑을 꽁꽁 싸매고 돈을 아끼고 있었죠.


그래서 아직 시작도 안 한 온라인 브랜드 런칭보다는, 이미 운영 중이던 오프라인 정육점을 먼저 살리는 게 현실적인 목표가 됐습니다.


문제는... 온라인 광고만 몇 번 돌려본 제가 오프라인 마케팅은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최악의 입지조건


자영업을 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오프라인에서 할 수 있는 마케팅은 정말, 진짜, 심각하게, 한정적입니다.


음식점은 입소문 타면 타지에서 오는 손님이라도 있지만, 정육점과 같은 식료품점은 철저한 '동네 장사'입니다. 지역 상권이라는 좁은 원 안에서 살아남아야 하죠.


그런데 우리 정육점은 그 원의 가장자리에 있었습니다. 시장 중심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고, 그것도 오르막길에 위치하고 있었죠.


주 고객은 어르신들이었는데, 그분들이 오르막길을 올라올 리가 없었죠.


"우리 고기는 좋은데... 사람들이 안 올라와요." 이게 당시 가장 많이 했던 말이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었습니다.



오프라인 마케팅이란... 몸으로 때우는 것


정육점 매출을 올려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제가 처음 한 일은 구글에 검색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정육점 마케팅 잘하는 법"

하지만, 검색 결과엔 죄다 체인점 창업 정보나, '고기 써는 법' 유튜브가 줄줄이 나왔습니다. 브랜드 마케팅도, 콘텐츠 기획도 없었죠. 결국 몸으로 때우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해본 건 전단지 뿌리기였습니다. 직접 디자인해서 출력하고, 시장 초입부터 오르막길까지 돌며 돌렸죠. 그런데 전단지를 돌리는 제 손보다 거절하는 어르신의 손이 더 빨랐습니다.


거절당하는 횟수가 쌓일수록, 제 멘탈도 고기처럼 얇게 썰려나갔습니다.


전단지를 뿌린 다음 시도한 것은 간판 교체였습니다. 기존 간판은 워낙 오래되고 촌스러워서 "이거부터 바꾸자!"며 디자인 새로 뽑고 사촌 형과 셋이서 직접 교체까지 했죠. 그런데 정작 지나가는 사람들 반응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렇게 또 고생하고 나서야 하나를 더 깨달았죠. '입지가 안 좋으면, 간판도 안 보인다는 것을...'



SNS라도 해볼까? 어... 당근이세요?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봤습니다. 디지털 세대답게 인스타그램 계정도 만들고, 고기 굽는 사진, 포장하는 영상, 스토리까지 열심히 올려봤습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어르신들은 인스타그램을 하시지 않습니다.


팔로워는 제 친구들, 좋아요는 사촌형 지인들, 문의는 없고, 전화만 간혹 오고 있었죠.


그렇게 열심히 여느 때와 같이 해시태그를 달고 있던 어느 날, 문득 떠오른 전날 당근하러 오신 아주머니가 한 말씀.


"당근 하러 나왔다가, 국거리 고기 사러 들렀어~"


그때 깨달았습니다. 여기 사람들... SNS는 안 하지만 당근마켓은 한다는 것을.


그때부터 당근을 열심히 공략하기 시작했습니다.

"당근 보고 오시면 고기 돼지고기 100g 서비스!"


조금씩 반응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찔끔찔끔 이었지만, 한 번 오신 분이 단골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물론 폭발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당근도 결국 '디지털'이었으니까요. 그 동내에선 디지털보다 접객이 먼저였습니다.



접객은 곱셈으로 돌아온다

IMG_4985.JPG 고기 한 점 드셔보세요


어느 날부터인가 손님이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홍보는 안 했고, 당근 효과도 예전 같지 않았는데 말이죠.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어머니, 여기 시장에서도 꽤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오셨어요?"

"00 엄마가 여기 오면 젊은 총각들이 친절하고, 서비스도 잘 준다고 하더라고~"


화려한 이유나 비법은 없었습니다.


고기 굽는 냄새 조금 더 퍼뜨리기,

눈 마주치면 잘 구운 고기 한 점 쓱 건네기,

어르신 이름 외우고, 말동무해드리기,

더워 보이면 음료수 하나 슬쩍 챙겨드리기,


브랜드니 타겟팅이니 말하기 전에, 그 동네에서 '사람'으로 인정받는 일이 제일 중요한 마케팅이었습니다.


... 다음 편에 고기 파는 썰 2 계속



개복치 이재선을 소개합니다

고기 파는 개복치

바닥에서 구르며 최고가 되는 것보다, 살아남는 데 진심인 개복치입니다.


바닥부터 구르며, 사업을 말아먹고, 다시 일어서길 반복한 사회생활 10년 차, 생존형 직장인


Profile

- 스타트업 개복치팀의 개복치 팀장

- 들으면 오~ 할 만한 군생활 경력 보유

- 롤 최고티어 상위 0.1%까지 찍어본 경력 보유

- 침수 피해 4회 '살아있는 재난 블랙박스'

- 비둘기 자택 침공 저지 경력 보유

- 고기 좀 팔아 본 경험 보유(진짜 정육점)

- 창업 두 번 말아먹고 나름 괜찮았다 생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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