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포트폴리오를 버리기로 했는가
앞선 프롤로그를 못 보고 오셨다면 보고 오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취업이나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포트폴리오'는 애증의 존재입니다.
수많은 레퍼런스를 찾아보며 '나다운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가도, 막상 만들다 보면 뭔가 부족해 보이고, 그 부족함을 채우다 보면 또 과해보이는.... 정말 어려운 녀석이죠.
특히 더 버거운 건, 지원하는 기업마다 포트폴리오를 수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취준생일 땐 시간이 많아 '몸으로 때우면' 됐지만, 현업에서 일하면서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이 작업은 시간도, 에너지도, 감정도 너무 많이 소모되는 일입니다.
그렇게 힘들게 만든 포트폴리오가 결국 5분도 안 보고 판단되거나, 아무 피드백 없이 불합격 처리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어쩌면 여러분도, 그런 씁쓸한 경험을 한두 번쯤은 해보셨을 겹니다.
그래서 저는, '리소스가 낭비되고, 자존감도 떨어지게 만드는' 포트폴리오를 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신, 회사에 나를 맞추는 구조가 아니라, 회사가 나를 '발견하게 만드는 구조'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직은 '더 나은 커리어를 위한 선택'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 선택은 대부분 '을의 자세'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불균형은 포트폴리오에도 고스란히 반영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가치를 가진 사람인지'를 보여주기보다, '기업이 좋아할 만한 방식으로 맞춰내는 작업'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죠.
저 역시 수많은 시간 동안 포트폴리오를 고치고 또 고쳤습니다. 글꼴, 성과 지표, 레이아웃, 톤 앤 매너까지... 디자이너도 아닌데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려는 마음으로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지원하는 회사마다 맞춤형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었죠.
하지만 그렇게 맞추면 맞출수록, 나는 점점 '나 같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이 느낌은 면접 자리에서 더 또렷해졌습니다. 면접에서 커리어를 설명하고 있음에도, "왜 자꾸 나와 멀어지는 느낌이 들지?"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회사가 나를 고르기도 전에, 나는 이미 나를 잃은 채 구직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걸.
구직은 분명 쌍방 선택의 구조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선택의 기회를 일방적으로만 제공받는 구조 속에 있습니다.
물론 정말 가고 싶은 조직에 직접 지원하는 상황이라면 을의 입장에서 준비하는 것이 당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제안을 받는 상황에서도 같은 구조가 반복된다는 점입니다.
한창 잘 다니고 있던 와중에, 기업 측에서 먼저 "한 번 이야기해보지 않겠냐"며 제안한 경우였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커피챗이나 면접 자리에 가보면 '준비는 나만 해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습니다.
더 나아가, 제안을 받은 상황인데도 타이트한 일정에 맞춰 포트폴리오나 각종 자료를 제출하도록 요청받고, 빠른 응답을 종용받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특히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빠르게 자료를 제출했는데, 말없이 탈락처리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죠.
급한 건 제안받은 내가 아니라, 사람을 구하고 있는 회사일 텐데... 왜 내가 이렇게 압박을 받아야 하지?
더 이상, 불쾌함과 힘듦만 가득 찬 구직 활동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스스로 판을 바꾸어 나에게 유리한 구조로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구직 과정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데도, 효과는 미미한 일이 뭘까 곰곰이 고민해 봤습니다. 결론은 포트폴리오 제작과 수정 작업이었습니다.
지원 기업마다 내부 사정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포트폴리오를 맞춰 고치는 일은, 시간도 에너지지만, 정신적으로 너무 소모적인 작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과감하게 포트폴리오 업데이트를 멈췄습니다.
실제 원티드나 리멤버에 등록된 저의 포트폴리오는 3년 전 이후로 한 번도 업데이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고민했습니다. "나다운 커리어를 만들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답은 의외로 명확했죠.
보여주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보이게 만드는 구조가 필요하다.
그래서 저는, 조금 느리더라도 꾸준히 저를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들을 여러 채널에 쌓기 시작했습니다.
브런치에 저의 생각과 가치관을 담은 글을 쓰기 시작했고,
링크드인 팔로우를 조금씩 늘려갔으며,
개인 웹사이트엔 저를 소개하는 자료를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이 채널들은 각자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유기적인 발견 퍼널'로 연결되도록 설계했습니다.
브런치 : 나의 생각과 가치관을 콘텐츠로 정리하는 공간
링크드인 : 인재 키워드 기반 검색에 노출되도록 키워드를 설계한 공간
개인 웹사이트 : 부족한 자료를 보완하고, 브런치/링크드인으로 유입을 확장하는 공간
원티드/리멤버 등 구직 플랫폼 : 최소한의 정보만 남겨두고, 다른 채널로 유입되는 입구 역할
이 모든 과정은 '포트폴리오를 없애겠다'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회사가 나를 먼저 발견하게 만드는 구조'를 만드는 실험이었습니다.
그 결과, 저는 이제 포트폴리오가 아닌 퍼널을 갖고 있습니다. '보여주는 문서'가 아니라, 발견되는 흐름을 설계한 셈이죠.
이 방법이 효과 있었나고요? 예전엔 1년에 5건도 받기 어려웠던 이직 제안이 지금은 연간 50건 이상, 커피챗 요청까지 포함하면 100건이 훌쩍 넘습니다.
포트폴리오를 버린 건 무책임한 게 선택이 아니라, 저만의 방식으로 판을 다시 짜기 위한 전략적인 결정이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제가 어떻게 '나를 알리는 구조'를 만들었는지 구체적인 퍼널 설계 과정을 구체적으로 소개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