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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봄 Sep 14. 2023

조용히 따로 연락 주세요

선생님, 혹시 책 냈어요?

지난주 유치원 회식이었다. 오후에 근무하는 방과 후 교사라 출근 전 점심식사를 한다. 이탈리안 음식을 먹고 출근시간까지 30분 정도 남았다. 선생님들과 유치원 근처 카페에 갔다. 각자 주문을 마치고 음료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내 옆에 앉으며 한 분이 말했다.


"선생님, 혹시 책 냈어요?"


나는 대답 대신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나 선생님들 전화번호가 없어서 저장하다가 선생님 카톡이 뜨길래 프로필 사진을 넘겨봤더니... 왜 이렇게 꽃사진이 많나 했는데... 나 스토커는 아니에요!!!"

손을 저어가며 어색한 미소를 보내셨다. 순간 같이 있던 7명의 눈이 나를 향했다. 카페 안 에어컨 바람을 고 오랜만에 등에서 땀이 났다.

"아.. 네...."

어설픈 나의 답변이 궁금을 자아냈나 보다. 

"제목이 뭐예요?"

"쓰는데 얼마나 걸리셨어요?"

당황스러움과 반가움 사이에서 어찌해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내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이 상황을 모면시켜야 할거 같았다.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는 지금, 나는 한때 작가임을 인정하기가 어려웠을까.

나는 멀쑥한 표정으로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향해 말했다.


"아.. 저.. 궁금하신 분은 조용히 따로 연락 주세요."


나의 한마디로 어색해진 분위기. 어쩌지. 음료는 왜 이리 안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작년 짝꿍 선생님은 유치원 아이들 이야기로 분위기를 전환했다. 


집에 돌아와 복기왕이 되었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글 쓰는 사람으로 당당하지 못했다. 왜 말을 못 하나. 사실을 사실대로 말도 못 하나. 작은따옴표가 시작됐다. 했던 말을 쓰고 반성하고 다짐하는 나라는 사람에게 같은 상황이 오면 이렇게 해라고 가르치듯 쏘아붙였다.


"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해요. 부족하지만 책 출간 했어요."


부족하지만에 괄호를 넣을까 말까 글을 쓰면서도 고민했다.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니 공식처럼 암기해야겠다. 공기처럼 함께 했던 쓰는 사람의 자부심은 우연한 상황에서 증발해 버렸다. 그날 카페에서 마신 커피는 쌉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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