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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Oct 23. 2021

누군가의 제일 좋은 옷

편견

편견과 고정관념이야말로 인권침해의 시작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인권위 조사관이지만 막상 내 일이 되면 그 편견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음을 때때로 느낀다. ‘악성 민원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는 가능한 한 사무적인 태도를 보여 꼬투리를 잡히지 않는 게 중요한 ‘조사의 기술’ 중 하나라고 믿었던 나를 크게 한 방 먹인 이가 A였다.


A는 틈틈이 서울의 한 파출소를 감시(?)하여 진정서를 썼다. ‘경찰이 근무 중에 프로 야구 중계를 봤습니다. 순찰차를 아무 곳에나 세워 놓고 낮잠을 잤습니다. ‘ 어느 날은 이런 것도 있었다. ‘파출소장이 양치질을 하면서 양칫물을 도로에 뱉었습니다. ‘ A는 며칠이 멀다고 이런 내용이 가득한 진정서를 내게 보냈고 전화를 걸어 묻곤 했다. “이런 것도 인권침해 맞죠? 공무원이 이래도 되나요? 철저히 조사해 주십시오.”


‘베테랑’ 조사관인 나는 A의 스타일을 쉽게 간파했다. 그는 별거 아닌 일로 나를 직무유기나 직권 남용 같은 어마어마한 죄로 고소할 수 있는 ‘초고도 위험군’이었다. 그래서 그의 이상한 행동의 이유를 알려고 하기보다는 일부로 어려운 법률 용어를 들먹이며 사무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것이 A 같은 유형의 사람에게 적용해야 할 ‘조사의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A가 보내는 서류들로 사건 기록이 중년의 허리둘레처럼 늘어갈 무렵, 문제가 된 파출소를 찾아갔다. 경찰들은 나를 보자마자 끝없는 하소연을 했다. 왜 아니겠는가? 민원이 제기되면 사실 여부를 떠나 해명하고 보고해야 하는 것이 공무원들의 숙명이기 때문에 동병상련의 마음이 들었다. 30분쯤 지나 진정인이 파출소로 들어왔다. 조사실로 마련된 회의실에서 단둘이 마주 앉았을 때 남자는 자신을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조사를 나와 줘서 진심으로 고맙다고 인사했다. “오랜만에 인력 회사에서 연락이 왔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인권위 조사관님이 연락을 주셔서…. 제가 오늘 하루 일당을 포기하고 나왔네요. 제가 조사관님 만나려고 가장 좋은 옷도 입고 왔습니다.” 얼굴이 조금 상기된 채, 어깨를 한번 들썩이며 그는 말했다. 통이 넓은 회색 양복바지와 갈색 체크무늬 잠바는 한참 유행이 지나 보였고 5월 말 더워진 날씨에 입을만한 옷은 아니었다.


“동네에서 자주 불심검문을 당했는데 기분이 나쁘더라고요. 그날은 경찰관을 피해서 길을 건너다가 무단 횡단으로 잡혔어요. 아무리 사과해도 봐주지 않고 딱지를 떼는 겁니다. 하루 일해도 얼마 못 벌거든요. 저한테는 그게 큰돈인데 얼마나 억울한지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고….” 그러던 어느 날 A는 순찰차에서 낮잠을 자는 그 경찰관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고 했다. “법이 그렇게 무서운 거라면서요? 그런데 자기들은 아무 데나 불법 주차하고 근무시간에 막 자고 그래도 됩니까? 너희도 한번 당해봐라 이런 생각이 들지 않겠어요?” 경찰들의 일상을 감시해서 매일 민원을 내는 소모적인 행위는 낡은 양복 한 벌이 가진 옷 중 제일 좋은 A의 ‘인정투쟁’이었다, ‘악성 민원인’을 빠르게 간파하는 것이 베테랑 조사관이라고 믿던 나는 크게 당황했다.


핀란드를 비롯해 스웨덴, 덴마크,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스위스 등 소위 선진국의 여러 나라에서는 이미 오래전 '일수 벌금제'라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일수 벌금제는 벌금 행위자의 수입에 따라 벌금을 다르게 부과하는 제도이다. 일수 벌금제가 정착된 핀란드에서 그룹 회장이 시속 몇 킬로미터를 초과했다는 이유로 우리 돈 약 2억 원을 벌금으로 냈다는 일화는 꽤 유명하다. 같은 범죄 행위에 같은 처벌(형량)을 해야 한다는 법의 원칙을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 산다고 말하는 진정인의 몇만 원과 고액 연봉자, 혹은 나 같은 평범한 공무원의 몇만 원의 가치가 다름에도 누구나 같은 벌금을 내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불공정한 일이 아닐까? ‘악성 민원인’으로 낙인 된 남자의 이상한 행동 뒤에는 약자에게 더욱 엄격하고 불리하기만 한 법과 제도가 웅크리고 있었다.


“극악무도한 성범죄에 대해서도 집행유예가 있는데, 보통의 서민들의 가벼운 과속이나 주차 위반, 무단 횡단 같은 것에 대해서는 경고하거나 집행 유예하는 제도가 왜 없나요? 무단 횡단 한번 눈감아 줬다고 해서 법의 정의가 훼손됩니까? 가벼운 법 위반을 이유로 어떤 이의 하루치 일당을 국가가 빼앗는 것이 정당한 법 집행입니까?” 차라리 A가 이렇게 따져 물으며 목소리를 높였다면 같이 동조라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진정인은 ‘악성 민원인 자신의 말을 들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진정 취하서를 쓰고 조용히 파출소를 떠났다. 경찰들은 민원을 종결해  조사관의 ‘특별한 능력 칭찬했다, 사실 나는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기는커녕 A ‘하루 벌이 기회만 날리도록 만들었다. 조사관 경력이 쌓이고,  많은 사건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수록 사람에 대해 더욱   없게 되는  같다. 하루 벌이를 포기하고 ‘가장 좋은  입고 나온 A따뜻한 한마디 건네지 못한 것이 오랫동안 후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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