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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Oct 23. 2021

신이 아닌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

이주자

낯선 외국의 도시, 말이 통하지 않는 곳, 갑자기 어딘가로 끌려가 갇히게 된다면? 거기 있는 누구도 나를 끌고 온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고 내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이름이 붙여지고 정신병 약을 매일 먹어야 한다면? 그런 상태가 1년, 2년, 3년 그리고 4년, 5년, 6년이 지났지만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면? 공포 영화 같은 이런 상황에 갇히게 된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제발 악몽에서 깨어나게 해 달라고, 알고 있는 모든 신들에게 기도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더 있을까?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이런 ‘믿거나 말거나’ 한 사건이 찬드라에게 있었다. 1992년 2월, 네팔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찬드라는 광진구에 한 섬유공장에서 보조미싱사로 일하던 중이었다. 그녀는 공장 근처 분식점에서 라면 한 그릇을 먹은 뒤 지갑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누구든 찬드라가 섬유공장으로 연락할 수 있도록만 했다면 가볍게 끝날 에피소드였지만, 그녀는 순식간에 ‘이상한 말’을 하는 부랑자로 구분되어 부녀자 보호소를 거쳐 정신병원에 감금된다. 그리고 그후 찬드라는 정신병원에서 ‘선미야’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6년 3개월 26일 동안 감금되어 있었다. 그의 이름이 ‘선미야’가 아닌 찬드라이고 ‘이상한 말’은 네팔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까지 6년 3개월 26일이나 걸린 것이다. 찬드라는 한국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피해소송에 어렵게 이겼지만, 배상액은 고작 2,860만 원에 불과했다.


찬드라의 사연을 영화(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2003년, 인권위 제작)로 만든 박찬욱 감독은 이 이야기를 통해 인권침해에 고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잔인한 고문을 하거나, 진실을 조작해 무고한 유학생을 간첩으로 만드는 것 같은 고의와 악의가 있는 인권침해 사건들도 많지만, 그런 고의나 악의만이 인권침해 피해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사실 갈수록 무관심과 관행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인권침해가 더 늘어나고 있다. 찬드라의 인권침해 사건에 ‘참여’했던 경찰, 부녀보호소 직원, 정신병원의 의사와 간호사 누구도 의도를 가지고 악행을 하지 않았고 그냥 조금씩 무심했고 무책임했을 뿐이었다.


찬드라의 외모가 한국인처럼 보였고, 한국말을 못 했고, 행색이 초라했다는 것은 인권보호의 이유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가해의 좋은 변명거리가 되었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 촬영 중에 사비를 들여 찬드라의 고향을 찾아갔었다. “당신이 찬드라입니까?”라는 호명에 찬드라가 환한 미소로 응답하던 순간을 박찬욱 감독은 네팔의 아름다운 산을 배경으로 스크린 가득 담아냈다. 한국 사회의 편견과 차별 속에서 ‘있으나 없는 것처럼’ 취급되었던 찬드라가 네팔의 거대한 산만큼이나 분명한 존재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2014년 여름에 만났던 나이지리아인 M도 찬드라처럼 갑자기 체포되어 열흘 동안 구치소에 감금되었다 풀려났다. M과 함께 일했던 K가 고물상 절도로 경찰 조사를 받던 중에 M인 척 행동하며 경찰을 속였다. K는 자신의 신분증을 대신해 M의 외국인등록증 사본을 제출했는데 경찰은 쉽게 그를 M으로 믿었다. K는 경찰 조사 후 도주해 버렸고 이후 M의 이름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도주한 K 대신 M이 구속되게 된 것이다. M은 경찰과 교도관에게 조금 아는 한국말로 사정도 하고 악을 쓰며 항의를 했다고 했다. 외국인은 자국 대사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형사소송법에 규정되어 있지만, 누구도 이런 권리를 알려주거나 대사관에 통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정당한 항의를 소란 행위로 간주하여서 징계했다. 구치소는 그를 자해 위험이 있는 위험한 인물로 규정하여 양팔과 다리를 포박하고 얼굴에는 투구 모양의 장비를 씌워 징계를 주었다. M의 구치소 기록에는 ‘모든 것은 제 잘못입니다. 다시는 소란을 부리지 않겠습니다.’라는 영어 반성문이 첨부되어 있었다. M은 이러다 아무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었고 그날 이후 억울하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이지리아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는 M은 자신의 상황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K의 거짓말로 시작된 사건이지만 M에서 구속영장을 집행했던 경찰, 검사, 교도관 그 누구라도 편견 없이 M의 말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고물상 절도범이 M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금세 밝혀졌을 것이다. 외국인등록증의 사진만 보아도 M과 K는 피부색 외에는 닮은 구석이 없었다. 조사 중에 이 점을 지적하자 담당 경찰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흑인들은 다 똑같이 생겨서….”라고 말했다. 구속영장 집행을 결정한 당직 검사는 인권위로 이런 취지의 답변서를 보냈다.‘당직 검사는 통상 구속되는 피의자를 일일이 대면해서 확인하지 않습니다. 서류상 결정한 것이 위법한 것은 아닙니니다”


K가 최초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을 때 통역을 했던 통역사가 M과 K가 다른 사람임을 법정에서 진술하지 않았다면 M은 절도범으로 확정되어 억울한 징역을 살고 강제 출국 되었을지도 모른다.


M을 만나 조사할 때 그가 길고 검은 손가락으로 내 얼굴을 가리키며 말하는 태도가 무척이나 거슬렸던 기억이 난다. 솔직하게 말하면 손가락질을 하다가 금세 주먹질을 할 것 같아 무서웠다. 그러나 ‘손가락질’을 흥분하고 화내는 것으로 생각한 것은 나의 문화적 편견임을 대화 과정에서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의 외모에 대한 선입견과 문화적 편견이 내 안에서도 작동하고 있었다. 사실 M이 화를 내고 흥분한다 해도 할 말이 없었다. 찬드라의 경우처럼 그의 사건도 가해자가 불분명한 인권침해 사건이 되었고 그는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잘못된 구금에 대해 얼마 안 되는 국가보상금으로 사과를 대신했을 뿐이었다.


M 마지막으로 만났을  그가 했던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 말을  들어줘서 고마워. 신이 당신들과 함께하길 빌게.” 눈물이 그렁그렁한,  쌍꺼풀  그의  눈을 보면서 나는 ‘천부인권이란 말을 떠올렸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하늘로부터 존엄을 부여받은 존재라는  말은 세계인권선언문의 1조의 정신이기도 하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가장 흔하고 쉬운 말이지만,  번도 제대로 지켜진 적이 없는 인류의 약속이 아닐까. 한국의 많은 이주 노동자들존엄하고 평등천부인권을 갖고 있기는커녕 인류애라는 온기에서조차 소외되는 존재인  같다. 2021 9월에도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격리되어 있던 모로코 출신의 난민 신청자가 ‘새우꺾기’( 수갑을 채워 손목을 포박하고,  뒤로  발을 묶어 사지를 연결하여 포박하면 등이 새우등처럼 꺾인다고 해서 이렇게 불린다) 상태로 독방에 격리되었던 CCTV 영상이 공개되었다. 보호소 측은 해당 외국인이 난동을 피우고 자해를 했기 때문에 불가피한 ‘보호조처였다고 설명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비슷한 사례들은 너무나 쉽게 발견된다. M은 내게 신의 가호를 빌어 줬지만, 우리 곁의 또 다른 찬드라를 돌볼 책임은 멀리 있는 신이 아니라 여기 있는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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