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코치님이 엄청 무서워요.” 반질반질 조약돌처럼 생긴 초등학교 4학년 운동부 학생들의 이야기다. “아마 신고하면 어른들은 우리가 운동하다 다쳤다고 말할 걸요. 그리고 또 증거도 없잖아요.” 조사하면 사실을 밝힐 수 있다는 나의 말에 왁자지껄하던 교실 안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아이들은 ‘조사’라는 말에 겁을 먹었는지 그것 보라고, 말하면 안 된다 하지 않았냐는 눈길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간식으로 가져간 초코 빵과 음료수를 먹으며, 경계심을 풀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동안 운동하면서 맞았던 것, 원정 경기 가서 보았던 다른 운동부들이 맞았던 이야기를 경쟁하듯 풀어놓았다.
인권위 조사 중에 별별 사건의 피해자를 만나봤지만, 운동부 아이들처럼 맑은 얼굴로, 욕먹고 맞았던 이야기를 천진하게 말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모욕과 폭력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아이들은 ‘웬만한’ 것은 다 괜찮다고 했다.
“있잖아요. 저는 2년 전에 진짜 힘들었어요. 그때 형아들한테 엄청 맞았거든요. 커터 칼을 들고 죽인다고 하고, 운동부 샤워실로 데려가서 막 때렸어요. 그냥 말 안 듣는다고 때렸어요. 어른들한테 말하면 옥상에서 밀어버린다고 했어요.” “코치님이 욕은 좀 하시지만, 아주 많이 때리는 것 아니에요. 우리 코치님이 잘 가르치시긴 한 대요. 귀 잡아당기고, 귀 밑에 머리카락 잡아당겨서 머리카락이 막 뽑혔어요. 그리고 핸드폰으로 이마를 때려요. 와 정말! 엄청 아파요. 머리에 혹이 생겨요 와 진짜...” “당연히 엄마한테 얘기했죠. 근데 부모님들 있을 때도 맞은 적이 있어요. 엄마는 아무 말도 안 해요. 왜 그런지는 몰라요” 자기들끼리 결의에 차서 이런 말도 주고받았다. “에이씨, 옥상에서 밀어 버리지 못하게 먼저 뛰어내릴걸 그랬어.” “야, 그럼 너 죽잖아” “그런가?”
운동선수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군대에서 축구했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군대나 축구 이야기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감싸는 폭력적 공기가 참을 수 없다. 내가 들은 군대 이야기의 대개는 먹다가, 자다가, 보초 서다가, 때로는 샤워 중에, 심지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던 중에 일어난 폭력 이야기의 변주였다. 군대에서의 축구(혹은 족구)는 그런 폭력과 공격성을 ‘공식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로서의 놀이로 보였고, 그러다 보니 언제나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졌다고 단체 기합을 받거나 맞는 이야기로 연결되곤 했다.
몇 년 동안 수많은 운동선수들을 인터뷰했는데, 늘 이와 비슷했다. 국가대표 선수,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 중간에 진로를 변경한 전직 선수, 중고등 학생 선수와 대학생, 직장 운동선수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언제나 폭력의 공기가 드리워져 있었다. 법률적으로 보면 당장에 구속해서 중벌에 처해야 할 만큼 끔찍한 폭력의 피해 경험임에도 다 ‘옛날이야기’라고 결론 맺는 것을 들으며 진저리를 친 적이 여러 번이었다. 너무나 만연해서 당연시 해지는 폭력, 덕분에 생긴 오기, 덕분에 생긴 메달, 덕분에 들어 간 대학, 덕분에 된 국가대표 같은 폭력을 미화하거나 합리화하는 여러 논리들. 스포츠 분야 폭력은 이제 ‘옛이야기’라고 말하는 근거 없는 믿음이 운동장을 당당하게 가로지르는 듯했다. 그때마다 나는 조용히 웅얼거렸다. ‘옛날 일이면 다 괜찮은 것일까?’
인권위 조사관으로 일 하면서 고문 사건, 자살 사건, 성폭력 등 차마 글로 표현하기도 힘든 사건들을 여럿 다뤘지만, 스포츠 분야 인권침해 사건만큼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불행한 일이지만, 인권은 언제나 피해자들을 밟고 앞으로 나아간다. 큰 사건이 터진 후에 뒤늦게 여기저기서 대책들이 줄줄이 발표되고, 대부분은 헛발질이 많지만, 어떤 대책은 나름의 힘을 발휘하여 시간과 함께 그 분야 인권을 개선하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그 작은 변화가 사람들을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의 원천이 된다. 그런데 그 숱한 사건 사고와 죽음을 걸면서까지 용기 낸 선수들의 고발에도 불구하고 스포츠 분야의 변화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 원인이야 다양하겠지만, 이 분야 실태를 알면 알수록 폭력에 끝없이 관대한 스포츠계의 문화가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직 국가대표 선수를 인터뷰했을 때였다. 삼십 대인 그는 이십 대까지 지도자로부터 당한 폭력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들려줬다. 봉걸레 자루 몇 개가 부러질 정도로 맞고 잘 걷지도 못하는 것이 그냥 일상이었다며 웃었다. 세월이 지나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당시에는 정말 괴롭지 않았냐고 물었을 때, 그는 더 크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몸이 좋아서 그냥 다 견딜 만했어요. 가장 많이 때렸던 지도자님을 지금도 명절마다 찾아뵙는걸요?” 유사한 이야기는 스포츠 분야 인권침해 조사를 하면서 수없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마에 나이키 상표 자국이 선명했죠. 슬리퍼 바닥에 로고가 새겨져 있어서, 슬리퍼로 맞으면 그렇게 자국이 나요” 이런 구술 뒤에는 “다 옛날 얘기죠. 요즘은 손끝 하나 못 건드립니다.”라는 말이 뒤따랐다.
성인 선수들만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2020년도에 체육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심층 인터뷰했을 때도 소년들은 비슷한 말을 했다 “옛날에 정말 많이 맞았어요. 맞는 건 싫지만 맞으면... 성적이 좋아지니까.. 그런데 지금은 괜찮아요. 갑자기 다 좋아졌어요.” 이제는 좋아졌다는 선수들의 말이 사실이길 누구보다 바라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언제나 불안하기만 하다. 폭력을 ‘어쩔 수 없던 불가피한 것’으로 인식하는 한 그것은 잠복기의 바이러스처럼 면역이 떨어지면 언제고 되살아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
2019년도 어떤 종목의 성인 운동선수 30명을 대상으로 포토에세이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포토에세이 인터뷰는 이름 그대로 참가자들이 찍은 사진을 매개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다. 참가자들에게 스물일곱 컷을 찍을 수 있는 일회용 카메라를 나눠준 후 폭력 경험과 연관 있다고 느껴지는 사물이나 순간을 일주일 동안 찍어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일회용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은 임의로 사진을 삭제하거나 편집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이 분야 연구자에 의하면 스물일곱 장의 사진 중에는 적어도 한두 장에 솔직한 진심이 담긴다고 했다. 과연 인화된 수백 장의 사진 더미 속에서 진심이 느껴지는 사진들은 금세 눈에 띄었다. 야구 방망이, 자물통, 초시계, 락커룸, 텅 빈 운동장, 커튼으로 가려진 방, 아파트의 버려진 자전거들.... 폭력의 경험들을 조용히, 진지하게 응시했던 순간이 사진기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폭력의 도구가 되었던 사물들이 찍혀 있기도 했고, 폭력을 당할 때의 심리 상태나 과도한 훈련으로 소진된 몸과 마음을 상징하는 사진들이 많았다. 감금 당해 폭행당했던 기억을 대신해 자물통을 찍어 왔던 선수는 이렇게 말했다. “코치가 나를.. 밖에서 아무도 못 들어오게.. 폭력은.. 마음에 짐이고, 가시처럼 박혀 있어요.. 맞기 싫고 무서우니까 힘들어도 참게 되고.. 어릴 때는 (그 덕분에) 실력 향상이 되는 것 같아요.”
지난 십여 년 사이 사회 평균의 폭력에 대한 감수성은 눈에 띄게 높아졌다. 병사들의 인권을 제기하면 ‘인권 때문에 군기가 빠진다.’ 거나, 스포츠 폭력은 ‘금메달을 따기 위해 불가피’ 하다는 논리로 버젓이 폭력을 옹호하지는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D.P.’가 화제가 되는 것을 보면서, 뒤늦게 우리는, 우리가 과거에 경험한 것이 얼마나 야만적인 폭력이었는지, 새삼 다 같이 깨닫고, 화들짝 놀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드라마의 각본을 쓴 김보통 작가는 자신의 SNS를 통해 “‘D.P.’는 ‘이제는 좋아졌다’는 망각의 유령과 싸우기 위해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병영에서, 훈련장에서, 그 어디든, 어떤 이유로든 폭력은 그저 폭력일 뿐이다. 폭력이 미화되지 않고, 옛날이야기로 묻히지 않는, 안전한 운동장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누구나 두려움 없이, 마음껏, 즐겁게 운동할 수 있을 때까지, 폭력의 경험들이, 고통스럽더라도, 더 정면으로 응시되고, 더 진지하게 말해졌으면 좋겠다. 나는 조사관으로서 더 많은 선수들을 인터뷰하고, 그 말들을 구슬처럼 꿰어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 우리가 진정 응원하는 것은 폭력으로 얼룩진 메달이 아니라 운동장에 서 있는 사람임을 알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