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
성희롱 사건의 피진정인은 사회·경제적, 문화적으로 ‘잘 나가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위계관계에서 벌어지는 성희롱 사건의 특성상 당연한 일인데, 이런 권력의 차이는 사건이 신고된 후에도 여러 맥락에서 피해자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피진정인이 평소 평판까지 좋은 사람이라면 피해자는 더욱더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성희롱 사건은 직접 증거보다는 간접 증거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사실관계를 파악할 때 당사자들의 주변 인물, 관계자들의 진술이 중요한 참고가 된다. 그런데 피진정인이 평소 좋은 상사, 매력 넘치는 동료, 따뜻한 선배로 인정받는 사람일수록 주변에 “그 사람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가해자 편에 서려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그리스 신화의 수많은 신들조차 우연이든, 필연이든 한순간의 실수나 과실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데 과연 절대적으로 그럴 수 없는 인간이란 가능한 것일까? 사실 사건의 진실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의심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던가?
어느 회사에서 벌어진 성희롱 사건을 조사할 때였다. 이십 대 후반인 신입사원이 저녁 회식 후 과장과 노래방에 갔다가 성폭력(강제추행)을 당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 과장이 앞에서 말한 좋은 선배, 다정한 상사, 매력 넘치는 인재라는 평판이 자자한 인물이었다. 사건의 정황이나 강제 추행 과정에서 찢어진 피해자의 옷가지, 사건 직후에 과장이 피해자에게 했던 사과 내용 등 당일 강제추행이 있었다고 믿을 많은 증거가 조사과정에서 드러났다. 그런데 조사가 진행될수록 피해자의 주장을 의심하게 하는 주변 동료들의 진술과 탄원이 제기되었다. 특히, 자타가 인정하는 피해자와 가장 가까운 동료조차 그녀가 망상증 환자일 수 있다고 주장해서 나를 큰 혼란에 빠뜨렸다. “평소에 그녀가 과장님을 좋아했어요.” “최근에 결혼했는데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아서 이혼하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소심하고 내성적이라 회사 생활에 적응을 잘하지 못했는데 과장님이 배려를 많이 해줬어요.” “우울증이 있다는 소문이 사실인 것 같아요. 혹시 망상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과장님이 그런 분이 정말 아니거든요.”
피해자가 우울증 증세가 있었고, 남편과 갈등이 심했다는 것, 그녀의 성격이 소심하거나 심지어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설령 전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날 저녁 노래방에서 과장이 피해자에게 했던 행위가 없었다는 것의 증명과는 관계가 없다. 마찬가지로 과장이 명문대학 출신이고, 유능하며 여자 직원들에게 매너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도 피해자가 망상증 환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과장을 좋아했던 많은 직원은 그가 보여 온 모습에만 기대어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 주변에 흔하게 발생하는 사건들이 절대적으로 그럴 사람이 아닌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충분히 알려줌에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었던 사람들을 계속 믿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직접 증거가 없는 가운데, 피해자에 대한 이러한 주변인들의 진술은 당연히 결정적으로 피해자에게 불리하다. 인권위 조사 이후에 수사나 재판 절차로 넘어갈 경우는 더욱 그럴 것이다. 피해자가 불면증으로 정신과 약을 먹었을 뿐이지 망상장애와는 아무 연관이 없음에도 피해자가 정신과에 다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피해자가 짝사랑하던 과장에 대한 망상에 사로잡혀 벌인 일이라고 믿는 동료들이 늘어갔다. 사건 초기에 과장이 피해자에게 보냈던 문자에서 추론되는 정황이 아니었다면, 조사관인 나조차 사실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을지도 모르겠다.
성희롱 사건에서 당사자를 대면시켜 조사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할 결정이다. 비좁은 조사실 대신 큰 회의실에 칸막이 몇 개를 가져다 가벽을 세워 당사자가 서로 볼 수 없는 가운데 대화를 할 수 있는 임시 조사실을 꾸몄다. 5시간이 넘는 대질조사 과정에서 다행히 피진정인이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했다. 사실의 자백은 형사 고소를 두려워한 피진정인의 ‘합리적’ 선택일 수 있지만, 당시 상황이 피해자에게 훨씬 불리했던 것을 고려하며 피진정인의 자백이 단지 처벌을 피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장은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지만 평소 동료들이 그를 좋아했던 어떤 면모까지 전부 저버리지는 못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피해 합의금을 주고 가해자가 회사를 떠나는 것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물론 이러한 합의 내용은 어떤 일이 있어도 공개하지 않기로 약속되었다. 사건의 사실은 밝혀졌지만, 비공개 원칙에 따라 진실은 비밀의 무덤에 묻혔다. 그리하여,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회사 동료들의 가해자에 대한 ‘신화’는 여전히 계속될 가능성은 없지 않다.
문제가 된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채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은 진실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성희롱 가해자에게만 적용되는 문제가 아니라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에 관한 판단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날마다 수십 개 혹은 수백 개의 얼굴을 바꾸며 살아가지 않나? 그것은 가식적이란 말과는 다른 것 같다. 선 자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어쩌면 마땅하게 어떤 면모를 감추거나 드러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니까. 그리고 인간이란 원래 모순덩어리 아니던가? 내가 수많은 나의 얼굴 중에 어떤 하나를 상황별로 타인들에게 드러내듯 가해자도, 물론 피해자도, 수많은 얼굴 중의 하나를 상황에 따라 드러낼 수 있다. 어떤 면모에 기대서 누군가를 절대 그럴지 않을 사람, 또는 그럴 것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적어도 인권을 다루는 일에서 만큼은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