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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Oct 23. 2021

하얀손 검은손

조사관님 그것 좀 대신 써주면 안 됩니까?

교도소에 있는 진정인을 만날 때마다 그들의 손을 유심히 보는 버릇이 있다. 교도소 밖에서 삶이 제각각 다르고, 누구는 언급하기도 끔찍한 죄를 지었고, 누구는 얼마 안 되는 벌금을 못 내서 수인이 되었을지라도 그들의 손은 이상할 정도로 닮았다. 노동하지 않으며 햇볕을 충분히 받지 못한 손은 손등의 혈관이 푸르게 드러날 정도로 희고, 손톱은 깨끗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흔히 ‘더러운 손을 가졌다’고 하는데, 막상 교도소에서 목격한 수인들의 손은 그런 은유와는 딴판이었다. 수인들의 손을 마주할 때마다 희게 변한 그들의 손처럼 그들의 범죄도 하얗게 정화되길 바라는 마음이 들곤 했다.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많은 전과 이력을 가지고 있던 노인의 손도 희고 깨끗했다. 십 대 때 처음 절도로 구속된 것을 시작으로 비슷한 범죄로 6개월 혹은 1년씩, 잠깐의 휴지기(?)를 두고 연결되는 전과 기록은 거의 서른 번이 다 되었다. 구속되어 있던 전체 기간을 가늠해 보니 노인은 성인이 된 후 사실상 인생의 대부분을 교도소에서 살았다. 아주 오래전, 신영복 선생님이 대전교도소에 있을 때 자신도 함께 있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며 웃던 노인. 머리카락은 하얗게 셌고 치아 상태가 좋지 않은, 자기 나이보다 훨씬 더 노인처럼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손만큼은 희고 깨끗했다. 그의 요청 내용은 사건으로 접수하기에는 너무 간단한 민원 사항이라서 ‘보고전’(수용자들이 교도소에 제출하는 민원서) 을 교도관에게 제출만 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 가능한 한 알아듣기 쉬운 용어로 보고전 제출 방법 등을 설명해 주고 민원으로 종결시켰다. 그의 화려한(?) 경력을 생각할 때 그런 절차를 알지 못할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조사관을 만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고 생각했다. 설명을 마친 후 인권위에 진정할 의사가 없다는 확인서를 써달라고 했을 때 노인의 눈동자가 몹시 불안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조사관님이 그것을 좀 대신 써주면 안 됩니까?” 민원이 종결되어 사건 접수를 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조사관이 임의로 진정을 접수해 주지 않았다고 억지 주장을 하는 경우가 있다. 악의로 그러는 일도 있지만 조사관의 말을 오해해서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나는 노인에게 가능한 한 직접 취하서를 쓰고 서명해야 하는 이유를 말했지만, 노인은 막무가내로 대신 써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어 물었다.


“선생님, 혹시 글 쓸 줄 모르세요?” (이 질문이 얼마나 무례한 것인지는 나중에 깨달았다) 한참을 망설이던 노인은 부끄럽지만, 글을 읽고 쓸 줄을 모른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생을 교도소에서 보냈더라도 글을 배울 기회가 전혀 없지는 않았을 텐데…. 교도소 밖에서도 물론이지만 구속되어 갇힌 상태로 수사와 재판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글을 알지 못하는 것은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자기 방어에 너무나 치명적인 일이다. 수사와 재판은 법의 세계이고 그 법은 모두 문자로 되어 있다. 문자를 알지 못하면 도로표지판을 읽지 못하면서 운전을 하는 것과 같다. 원하는 목적지에 무사히 도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선 변호사 제도가 있다고 해도 그 수많은 조사 서류와 공소장, 판결문을 그에게 일일이 해석해서 읽어주었리 없다. 글을 쓸 줄 모르면, 판사에게 반성문 한 장 제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피해자와 합의를 하거나 선처를 부탁하며 사과를 하는 일도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문자 밖의 사람은 문자로 되어 있는 법의 세계에서 훨씬 더 가혹한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 노인의 화려한 경력(?)이 혹 글을 모르는 것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때서야 나는 그가 별거 아닌 문제로 인권위 ‘면전 신청’을 한 이유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인권위법은 문자로 진정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면전 진정 제도’를 두어 조사관을 직접 불러서 진정을 할 수 있도록 열어 놓고 있다. 많은 경우 면전 진정 제도는 진정서를 쓰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 잠깐이라도 조사관을 만나 ‘바람을 쐬러 나오고 싶어서’ 제기하는 경우가 많아 나는 이 제도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그런데 진짜 글을 쓸 줄 몰라 면전에서 말할 수밖에 없는 진정인을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제라도 글을 좀 배워 볼 생각은 없으세요?” 조심스럽게 묻는 내게 노인은 말했다. “글씨를 배워볼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이제라도 좀 배워볼게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몇 번이나 노인은 머리를 숙이고 사과를 했다. 글을 모르는 게 왜 내게 사과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교도소에서 일생을 보내는 동안 글을 모른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사과를 해야 했을지 상상하니 아득하기만 했다. 글을 꼭 배우시길 바란다는 말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노인과 면담을 마친 뒤 교도관을 만났다. 노인이 글을 모른다는 것을 교도관은 알고 있었다. 교도관은 글을 몰라도 교도소에서는 괜찮다고, 교도소에서 도와주고, 동료 수용자들도 옆에서 다 도와준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진실이길 진심으로 바랐다. 글을 모르는 것이 무슨 죄라도 되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던 그가 이후에 글을 배울 기회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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