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오도 Oct 11. 2021

그 남자의 새빨간 거짓말

새 인생을 꿈꿀 권리

교도소에서 출소하자마자 C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내가 조사했던 사건의 진정인이었다. 그가 찾아왔던 날은 하필 내가 출장 중이었는데, C는 막무가내로 나를 불러 오라며 소란을 피웠다. 끝내는 복도의 소화기를 뜯어내서 바닥에 내팽개치고, 한참이나 고래고래 욕을 퍼붓고 갔다고 했다. “최 조사관 있었다면 큰일이 날 뻔했어요. 난리도 아니었어요. 우리가 대신 욕먹고 배불러서 점심도 못 먹었습니다.” 다음날 출근하자, 조사관들이 전날 사건을 무용담처럼 들려주었다. 그가 다시 찾아오면 절대 혼자 만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즈음 조사관들을 놀라게 하는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났었다. 조사관 보는데서 제초제를 마시고 자살을 시도한 진정인도 있었고, 조사실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려는 것을 조사관이 몸으로 막은 사건도 벌어졌다. 어떤 진정인은 화를 내는 정도를 넘어 위험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조사관들의 신경이 날카롭던 때이기도 했다. 나를 대신해 봉변을 당한 조사관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사실 C를 대면하지 못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C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나는 초보 조사관으로서 신고식을 호되게 치렀었다.


나는 C를 경기도의 한 구치소에서 처음 만났다. “저는 중국집 주방장입니다” 그는 마치 주방장이라는 직업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주방장’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며 말했다. C는 일하던 중에 손님에게 폭행을 당했는데, 수사 과정에서 가해자로 몰렸고, 구속까지 되면서 직장도, 인생도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무고를 증명할 증인들이 충분히 있음에도 경찰은 이를 무시했고, 국선 변호인과 판사도 항변을 들어주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는 평범한 자신의 삶이 잘못된 수사로 파국에 이른 과정과 중국집 주방장이 되기까지의 사연을 그야말로 ‘내러티브’를 살려서 들려줬다. 나는 “어쩌면, 세상에, 어머나”를 연발하며, 그의 이야기에 몰입했다. 가난한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채 서울로 상경, 이후의 수많은 고생담, 중국집 배달원에서 주방장이 되기까지의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눈물 없이 들을 수 없었다.


C의 주장과 같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는 부당 수사가 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전혀 없는 일이 아니었다. 의기가 충만한 초보 조사관이었던 나는 ‘이런 억울한 사건을 밝혀내라고 인권위 조사관이 된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계시받은 심정으로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과장과 선배 조사관들에게 사건의 경위와 인권침해의 심각성을 보고하고 지원을 요청했다. 중요 사건에 붙이는 빨간색 스티커를 사건기록 맨 위에 경건하게 딱 붙이면서 말이다.


지금도 생생한데, 영등포에 있는 그 문제의 중국집을 찾아갔던 날은 '찜통더위'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그런 한여름이었다. 선배 조사관과 나는 검은색 정장을 갖춰 입고 무거운 노트북과 휴대용 프린터까지 챙겨서 사건 현장으로 출동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문제가 생겼다. C가 자신의 일터라고 소개했던 ‘번듯한’ 중국집에서는 그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최 조사관, 분명 진정인이 말한 곳이 여기 맞아요? 이거 좀 이상한데.. ” 베테랑 조사관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갸웃했지만, 나는 분명 무슨 착오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C가 일했던 곳을 찾아내기 위해 영등포시장 일대 여러 중국집을 돌아다녔다. 절인 배추처럼 온몸이 땀에 푹 절여졌을 무렵 중국 식자재를 파는 곳에서 진정인을 안다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오 그러면 그렇지!’ 이제 사건의 팔 할은 풀렸다고 확신하던 찰나, 세상에, 식자재 가게 사장이 나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진술을 하는 것이 아닌가. C의 인상착의를 들은 사장은 인상부터 찌푸렸다. “글마가 지가 주방장이라 카던 가요? 주방장은 무신…. 그냥 심부름, 심부름이나 했지. 그런데 얼마나 술을 처마시는지…. 술만 마시면 사람이 돌변해서 개차반이 된다 아이요.” 베테랑 조사관이 사건 개요를 설명하자 사장은 자신도 그날 사건을 알고 있다며, 남자가 술 먹고 폭행 사건을 일으킨 것이 처음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때의 허탈감이란…. 우리는 가게에서 알려준, C가 일했다는 영등포 뒷골목의 작은 중국집도 찾아갔다. 그곳 사장의 말도 앞 가게 얘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40도 가까운 한 여름 땡볕 아래서도 식은땀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진정인의 허풍을 그대로 믿고 여기저기 중요 사건이라며 보고했고, 세상에서 두 번째라면 서러울 정도로 바쁘신 베테랑 조사관님을 모셔와 생고생을 시킨 것을 생각하니 식은땀으로 몸이 얼어붙을 것 같았다. 그냥 그대로 땅으로 꺼졌으면 싶었다. 아무리 초보 조사관이라고 해도 이런 실수는 용납될 수 없었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는데.. 조사관으로서의 나의 떡잎은 헛발질로 시작되었다. “선배님, 너무 죄송합니다. 제가 충분히 확인했어야 했는데…. 공연히 고생만 하셨어요.” 울 것 같은 얼굴로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조사관은 무엇보다 치우침이 없어야 해요. 인권위 업무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조사도 안 하고 진정인의 주장을 사실로 전제하는 것은 옮은 태도가 아니지요." 선배의 말이 모두 옳았다. 중요 사건이라고 떠벌리기 전에 관련 기록을 조금 더 꼼꼼히 살폈어야 했다. 실력도 없으면서 정의감에 불타서 헛발질을 했다는 사실이 창피했다. 화도 났다. 진정인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스스로에게, 그리고 강아지 같은 눈으로 나를 속인 진정인에게도. "최 조사관 그렇다고 너무 자책하지는 말아요. 과정이야 어쨌든, 진정인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만큼 오늘 현장조사가 다 헛고생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현장 조사 후 C의 진정 사건은 곧바로 종결되었다. 몇 계절이 지나 C를 잊고 있었는데, 어느덧 출소해서 나를 찾아왔던 것이었다. C가 나를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 놀라거나 무섭기보다는 어떻게 그런 새빨간 거짓말을 할 수 있냐고 오히려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늦은 오후, 그가 나를 다시 찾아왔다. 처음에 나는 C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구치소에서 면담할 때의 순한 얼굴은 사라지고 없었다. 강아지 같은 눈으로 유명 중국집 주방장이 되기까지의 인생사를 곡진하게 이야기하던 C의 모습이 아니었다. 땀에 찌든 티셔츠, 때 묻는 야구 모자 밑으로 심하게 충혈된 눈, 약간의 술 냄새까지 풍겼다. 다행히 얼마 전 찾아와서 소란을 피우던 모습과는 달리 온순한 태도로 할 말이 있으니 잠시 시간을 내달라고 부탁했다. 술을 마셨냐고 묻자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면서 지난밤에 조금 마셨고 아침부터 굶었다고 했다. C를 데리고 지하에 있는 굴국밥 집으로 갔다. 뜨거운 국밥 한 그릇을 앞에 놓고 조용히 물었다. “그때 저희가 영등포시장을 헤매면서…. 사실 확인을 다 했거든요.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죠? 하나부터 열까지 거짓말 아닌 것이 없었거든요.” C는 고개를 떨군 채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그게 아녜요.. 그런 게 아녜요..”라며 말을 흐리고, 뜨거운 국밥 한 그릇을 다 비우고 사라졌다. 이후에 C를 다시 만나지는 못했지만, 중국집 앞을 지나칠 때면 가끔 C의 그 ‘새빨간 거짓말’이 생각났다. 쉽게 들통날 뻔한 거짓말을 하고 출소 후에 나를 찾아왔던 이유가 궁금했다.


세월이 많이 흘러 나도 베테랑 조사관 소리를 듣게 되고, 많은 진정인의 비슷한 거짓말을 수없이 들은 후에, 그 새빨간 거짓말 속에 어떤 진실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인생을 꿈꾸며 산다. 부잣집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그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혹은 했다면, 나는 다른 삶 속에서, 더 괜찮은 사람으로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 말이다. C도 분명 가끔은 현재의 ‘밑바닥 인생’과는 다른, 괜찮은 인생을 살아 보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 다른 인생에서 C는 술 마시고 행패나 일삼는 허드레 심부름꾼이 아니라 근사한 중국집의 어엿한 주방장이 아니었을까? C는 내게 자신이 꿈꾸던 다른 인생 속 곡진한 이야기를 들려줬고 나는 그것을 믿었던 것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자신이 꿈꾸던 인생 이야기를 누군가 눈을 반짝이며 진지하게 들어주었을 때, 상상의 그 이야기를 멈추기가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그 이야기의 방향대로 삶이 나아가기를 인권의 이름에 기대어 희망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희망에 기대어 제대로 한번 살아 보고 싶은 진심을 조사관이 믿어 주길 바랐던 것일까? 국밥 한 그릇을 비운 남자가 벌게진 얼굴로 “그게 아녜요, 그게 아녜요…….”하던 말끝에 그런 마음이 들어 있었다고 믿어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인권위 조사관의 일이라면 사실 너머에 있는 다양한 무늬의 진실을 헤아려 보는 것이야말로 ‘인권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