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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인시 Oct 09. 2021

방랑자의 커피

    

나는 평생을 방랑했다.


     평생을 방랑했다. 그때 내가 살던 곳은 잠깐이라도 플립플랍을(또는 맨발에 슬리퍼) 신고 나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일 년에 반은 지속되는 영하 삼사십 도의 추위 때문이다. 그 기숙사는 두 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건물과 건물 사이를 오가는 그 잠깐 새에 발이 얼어버린 학생이 있댔다. 그때는 늦여름쯤이었는데 믿기 어려워하는 학생들의 얼굴을 보며 기숙사 사감이 말하길, '한 달만 지나면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단단히 해두었다. 그렇게 매서운 추위로 눈보라가 치면 허리만큼 창백한 눈이 쌓였다. 눈밭이 달빛을 반사하는 밤에는 그 빛인지 날씨인지가 눈을 시리게 하여 눈물이 맺혔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낭만적이거나 쓸쓸해 보이는 광경이었다. 

    대부분의 미국 사립학교가 그렇듯 연말이 되면 겨울방학을 맞아 기숙사가 텅 빈다. 달빛을 반사하는 눈밭의 창백함이 유난히 쓸쓸해 보이는 때이다. 귀국일이 늦을 때면 나만 기숙사에 남는 날도 있었다. 음악을 틀고 짐을 싼다든가 하면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해도 있지만 눈보라 소리만 들리는 적막 속 밀려오는 막연한 외로움을 떨쳐낼 수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커피숍에 들르곤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커피숍에 가는 것이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곳에 가면 캐럴이 흐르고 사람들이 있어서였다.

     

나는 영국에서 인턴십을 거쳤는데,


    영국에서 인턴십을 했을 때였다. 중학교 이후로는 해외의 이곳저곳을 떠돌며 생활했으니 익숙해질 법도 한데, 낯선 영국은 설렘과 동시에 두려움도 주곤 했다. 그때는 미국 마저도—한국은 내게 두 번을 돌아가야 하는 곳이어서. 영국 인턴십 후 미국 학교로 한 번 돌아가고, 방학이 돼야 한국에 올 수 있으니—내 땅처럼 그리웠다.

본드 스트리트 출장이었다. 골목마다 처음 보는 것뿐이었다. 불현듯 부모님이 생각하며 울컥했다. 이 넓고 낯선 세상에서 모르는 얼굴들과 맨몸으로 부딪히며 숱한 사연이 있었을지언정 나쁘고 속상한 일은 조금도 나에게 알리지 않고서 입히고 먹여주신 부모님........ 그때였다. 아, 자주 들르던 바로 그곳이다! 저기에는 친숙한 것들이 있을 테다! 그때 스타벅스를 봤다. 아메리카노 밖에 마실 줄 몰라 그것을 주문했고, 과연 그것은 미국에서 처음 배웠던 커피, 스타벅스 커피 그 맛이더라. 울음이 차오를 때로 차올라 목구멍이 조이는 참이었다. 한 모금 마시자 쑥 내려갔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한 달만에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곳은 아주 바빴다. 시황과 이슈에 가장 빠르게 반응하고,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셨다. 업무강도가 매우 높은 그곳. 오래 떠나 있던 고국에 적응하는 것과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에 흥분해 있었다. 그래도 유난히 하기 싫은 일도 몇 개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엑셀 다루기였다. 엑셀에 재능이 없는 것 같다며 고민을 말하는 나에게 엑셀은 결국 선천적인 것이라며 동료들이 장난을 할 때면 비슷한 농담으로 되받아치며 함께 웃었어도 사실은 덜컥 겁이 났다. 그럴 때 내 자리로 돌아오면 책상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하면서 다 잊어버리곤 했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의 맛은 한국에서도 똑같았다.


   커피를 처음 배운 미국에서도, 낯설었던 영국에서도, 오랜 시간이 지나 돌아온 한국에서도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는 여전했다. 거기에 이 나라 저 나라로 흩어진 내 시간이 한데 모여있는 셈이다. 또 그 맛처럼, 나 역시도 어디서 커피를 마시든, 나다.


나는 어디 있든 나다.


 

     프리랜 싱을 시작하고는 조금 바뀌었다. 더 이상 스타벅스에 가지 않는다. 나이가 들고 한국에 오래 머물면서 정체성에 대한 혼란도 잦아들었거니와 학교나 직장 같은 외부요인에 덜 집착하게 되었다. 한편 그즈음 편의점에서 1+1 세일을 하던 병커피를 알게 되었다. 그 맛과 향에 반하여 이제는 그것만 먹게 되었다. 하루에 두 병 정도 마신다. 특히 아침에 산책에 나서기 전 이 커피를 마시면 빨리 나가고 싶어 진다. 한 모금을 삼키면 그 향이 온몸을 감돌고 잠 기운이 싹 가신다. 이 커피는 거의 까만색인데도 눈을 감고 한 모금 삼킬 때는 붉은 갈색이 앞에 보인다. 이 향의 빛깔일 테다.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십여 년간의 시간. 커피와 함께 기억하는 장소와 사람들, 그날들의 활력 같은 잠재된 기억들이 지금의 하루를 열고 지탱하는 기운이 되는 것은 아닐까. 

일어나 마신다. 집중력이 다 할 때면 커피를 마신다. 심심해서 마신다. 마신다.

  

    게토레이나 보리차일 수도 있는 기호음료인 커피에 이 글을 바치는 것은, 내가 변화무쌍한 환경에서 자라면서 불변의 무언가를 갈구하는 삶을 살아서다. 이십 대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무언지 고민하고 노력으로 취하고자 싸웠다. 큰 이름들. 정체성, 직업, 앞으로 이룰 가정 같은 대단한 것들. (지금에서야 저들이 불변의 것들은 아닌 것을 알았어도) 저들이 분명히 좋은 것들이다만, 바로 옆에 커피가 있다. 간편하고 어디에나 있다. 어린 나를 위로해주다가 지금은 나를 하루 종일 붙든다. 마신다. 평화다.  


평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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