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지키려는 엄마의 노력은 놀라웠다
"모든 임신은 자연스러운 생리적 현상임과 동시 병리적 현상이기도 합니다."
저의 아이 분만을 집도하신 오수영 교수님의 책 <<태어나 줘서 고마워>>에 나온 문장입니다. 말 그대로 임신은 여성에게 꽤 어려운 과정입니다. 임신을 하면 호르몬의 변화가 생겨서 경험하지 못했던 수많은 증상들을 겪게 됩니다. 태중에서 크고 있는 아이를 가장 잘 느끼고 있기 때문에 매사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생전 경험하지 못했던 증상들을 겪으면서도 약 하나 편히 쓸 수 없는 산모의 마음을 남성인 제가 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임신은 사랑과 희생, 그리고 가족의 유대감을 새롭게 정의해 준 특별한 여정이었습니다.
제 아내는 1형 당뇨를 가지고 있습니다. 췌장이 인슐린을 분비하지 않기 때문에 늘 혈당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저희 부부에게 임신과 출산의 여정은 조금 더 특별하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뇨는 자칫하면 임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우리 부부는 철저한 계획과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임신 사실을 안 이후부터 출산하는 그날까지 정말 철저하게 식단 관리를 했습니다. 매 끼니 저울로 식사량을 측정하고 식사에 따른 혈당 변화를 연속혈당측정기를 통해 확인하면서 본인의 하루를 철두철미하게 관리했습니다. 놀랍게도 우리 아이는 엄마의 이런 노력에 화답하듯 순조로운 임신 과정을 선물했습니다. 저희는 농담 삼아 "아이 덕분에 엄마가 편안하다"며 웃곤 했습니다. 이런 사소한 행운이 당시에는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임신 주수에 따라 다양한 유전자 검사를 해야 했습니다. 매 검사 때마다 작은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혹시라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쉽게 떨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매번 결과가 좋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그때마다 한숨 돌리고 안도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마치 무거운 짐을 하나씩 내려놓는 기분이었습니다. 이 아이의 강한 생명력이 우리 부부에게 고스란히 전해졌고 그 생명력이 우리 가족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임신 20주가 지나면서 아내는 태동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생명이 그 안에서 자라는 것을 느낄 때마다 저희는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특히 밤이면 함께 손을 얹고 태동을 느끼며 나누던 대화들은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었습니다. 그 작은 움직임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행복을 안겨줬는지 모릅니다. 아내의 혈당도 완벽하게 관리되면서 정기 검진 때마다 "아기가 효도를 제대로 하고 있어요."라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런 칭찬 한 마디에 피어 나오는 미소는 아내와 저에게 힘이 되었습니다. 임신 중에는 작은 행복도 큰 기쁨이 됩니다. 아기의 발길질을 느낄 때마다 미소 짓게 되고, 초음파 사진 한 장에도 설렘이 가득했습니다. 이런 소소한 순간들이 모여 우리 가족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갔습니다.
임신 후기는 아기가 곧 태어난다는 기대감과 함께 새로운 준비가 필요로 했습니다. 아기의 방을 꾸미고, 이름을 고민하며 하루하루가 설렜습니다. 동시에 출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준비하고, 서로를 다독이며 그 두려움을 이겨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기가 태어나는 날, 우리는 새로운 세상의 문턱에 서 있었습니다. 그 순간의 감동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품에 안겨진 작은 생명은 우리가 겪었던 모든 과정의 결실이었고, 이 아이는 앞으로 우리에게 더 깊은 사랑과 책임을 부여할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임신과 출산은 단순한 생리적 과정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 성장하고, 가족이 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아이를 통해 배우고, 서로에게 기대면서 우리는 더욱 강해졌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같은 고민을 가진 부부들이 있다면 그 여정이 결코 혼자가 아님을 느끼고, 그 속에서 얻게 될 풍부한 감정과 배움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함께였기에 그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불확실함 속에서 서로를 믿고 지탱해 준 덕분에, 우리는 더 강해졌고, 더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이, 출산을 앞둔 부부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고된 여정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순간들이 쌓이고, 그 끝에서 만날 새로운 가족의 기적을 기다리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