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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 없는 여유는 달콤하다

푸켓 신혼여행 일기 2

by 해브빈 Feb 10. 2025

택시를 타고 리조트로 향하는 30분 동안, 지구 반대편까지는 아니더라도 곳에 여행을 실감이 났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의 마음은 왠지 너그러울 것 같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이곳에서도 각자 나름의 고민과 문제가 있겠지만, 그런 풍경조차 사랑하는 사람들이겠지.


잠깐 머물다 가는 붕 뜬 마음은 아쉬울 것 같았다. 짧은 시간이라도 일상을 천천히 즐기며, 마음 한켠에 묵직한 여유를 담아 가고 싶었다.



리조트 체크인 시간 전이여서 짐만 맡겨두고 주변을 산책했다. 한국에서는 '개 조심' 문구가 여기서는 으르렁 소리가 연상되는 사진과 함께 'Beware Stray Dog'라고 쓰여있다. 떠돌이 개가 갑자기 막다른 골목에서 튀어나올까 봐 두리번거렸다.


여유를 갖기로 한 마음도 잠시, 오후가 되자 날씨는 더 더웠다. 나는 분명한 J형은 맞는데, 철두철미하지는 못해서 종종 계획을 바꿨다. 예를 들어 '바닷가 파라솔 아래 누워서 책 읽기' 같은 계획은 더운 날씨 때문에 금방 포기했다. 그래서 구글맵에 저장해 둔 리스트에서 지금 갈 만한 곳을 찾아 피신하다시피 실내로 이동했다. 우리의 여유는 다른 곳에서 찾기로.


아쉽게도 처음 들렀던 마사지 숍에서 여유를 찾은 사람은 남편뿐이었다. 건식 마사지를 받았는데 너무 아팠다. 아프다고 살짝 티 낼 뿐이었지 적극적으로 말도 못해서 그냥 시간이 빨리 흐르길 바랐다. 태국어로 '아프다'는 표현을 미리 알아둘걸 그랬다. 알았어도 그 말을 내뱉을 수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Sweet Chilli Restaurant & Bar


이날 내게 처음 여유를 준 곳은 기대하지 않고 들어간 로컬 식당이었다. 리조트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도보로 이동하기에 편해서 이곳에서 점심을 때우자는 마음이었다. 바깥이 훤히 보이는 테라스형 식당이었는데 이곳에서는 미지근한 선풍기 바람에 익숙해져야 한다. 생각해 보면 정신없이 뜨거운 여름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었다. 매장에 들어서자 직원분들이 환한 표정으로 맞이해 주셔서 기분 좋은 식사가 될 것 같았다. 사람이 주는 인상만으로도 공간에 애정이 생기는 것 같다. 우리가 주문한 메뉴는 간장 베이스의 고기 볶음면, 게살 볶음밥, 소스를 곁들인 버터 새우구이. 적당한 감칠맛과 고소함이 어우러지는 맛이 시원한 맥주와도 잘 어울렸다.




Mandarava Resort and Spa, Karon Beach


식사가 끝나자 숙소 체크인 시간이었다. 신혼여행 첫 리조트를 이곳으로 정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남편과 나는 화려한 번화가보다는 조용하지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을 더 선호한다. 만다라바 리조트는 시선을 돌리는 곳마다 자연이 있는 요새 같은 공간이다. 차분하게 머물면서 식사, 물놀이, 운동 등을 즐길 수 있는데 각각의 장소는 작은 숲이나 공원으로 연결된 느낌을 준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휴양하러 오는 곳임에도 각자의 정원에 머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곳곳에 배치된 휴식 공간은 오픈된 느낌을 주면서, 적절한 거리감 덕분에 편안한 시간을 보장해 주는 리조트였다. 물놀이하고 싶을 때 풀장으로 뛰어들었고, 운동하고 싶을 땐 헬스장으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을 때 오히려 더 여유롭다.



Friendly Restaurant


만다라바 리조트 근처 프렌들리 레스토랑은 이름처럼 친근한 대화가 오가는 곳이다. 바비큐와 랍스터구이 메뉴로 남편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곳인데, 맛과 분위기 모두 기대 이상이었다. 매장 안쪽엔 라이브 연주 무대가 가 있어서 내심 어떤 노래가 흘러나올지 기대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맥주를 한잔 시켰는데 나도 모르게 진지한 고민 얘기를 툭 털어놨다. 들뜬 기분이 가라앉으려나 걱정했는데 남편은 진지하게 내 얘기를 들었다.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못난 마음을 내보였던 것 같은데 어떻게든 예쁜 구석을 찾아주려는 마음이 고마웠다.




몇 년 만의 해외여행이자, 첫 신혼여행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일정에 얽매이는 대신,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루를 보냈다. 거창한 계획 없이도 기대 이상의 순간들은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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