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생활 365일째의 기록.
- 본 포스팅은 DSH 정보전달성이 아닌 기록용 글입니다. 시험에 관련된 대략적 정보를 얻고 싶으신 분은 게시글 하단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
지난 7월 19일, 다른 사람들에게는 여느 월요일과 다름없었을 그 날 아침이었다. 나는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벽 내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고, 결국 1시간 일찍 학교에 도착하려던 계획은 시험 시작 시간에 딱 맞추어 도착하는 것으로 급 변경되었다. Hörsaalgebäude에 들어서자 마침 나랑 비슷한 시간에 도착한 반 친구들이 보였다. 인사를 나누는 것도 잠시, 바로 Ausweis 체크를 하고 홀에 입장했다. 휴대전화를 끄고 가방은 앞 쪽에 둔 뒤 빈자리에 앉자마자 듣기시험을 시작하겠다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홀을 울렸다. 듣기 지문의 제목을 듣자 지각할까봐 쿵쾅거리던 심장도 잠시, 거짓말처럼 마음이 차분해졌다. 2019년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무조건 통과해야 하는 첫 관문, 내 인생 첫 DSH의 시작이었다.
1. Sonst. Abschluss in Dtl. - Deutschkursus
시작은 EU가 아닌 국가에서 졸업한 사람들의 '기타 조건'으로 입학하게 된 2019년 2월 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년 2018년 8월, 아무런 보장도 없이 무작정 독일로 긴 여행을 시작했던 나의 목표는 한 학기 동안 어학준비를 하고난 뒤 2019년에 문학/비교학/번역학 중 가능한 전공을 시작해 부족한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11월에 친 TestDaF에서의 결과는 '모든 영역 4 이상'에 조금 미치지 못한 성적이었다. 많이 실망하고 자신감도 하락했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내가 자리를 잡은 도시인 쾰른(Köln)과 그 옆 도시, 본(Bonn)에 지원서를 넣었다. 결과는 쾰른대학교에서의 독일어 코스 선입학이었다.
2. SVK - Studiumvorbereitungskurs
제대로 어학 학기를 시작하기 전에 Einstufungstest를 친다. 레벨 테스트인데, 사실 그 과정이 조금 허술하기도 했다. OnDaF라고 해서 Lückentest를 컴퓨터실에서 진행하는데, 그 시험 자체가 제대로 된 독일어 실력을 증명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이다. 시험이 끝나고 나면 그 자리에서 레벨을 바로 확인할 수 있고, 그 결과에 따라 반이 배정된다. 이곳의 SVK의 분반은 A1, A2코스를 아예 제외하고 Stufe 3 - Stufe 4 - Stufe 5로 구별된다. 이 중 Stufe 5는 DSH-Vorbereitungskurs이다. 각 Stufe(레벨)별로 중간-기말고사를 진행하는데 Stufe 5의 Abschlussprüfung이 바로 DSH이다.
나는 지난 4월 SVK Stufe 4에서 어학을 시작했다. 계획대로라면, 그리고 마음 같아서는 Stufe 5에 바로 올라가서 학기말에 DSH를 치고 싶었다. 모든 게 빨리빨리 진행됐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Uni-DaF 사무실의 시스템을 듣고 조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학기중에 Stufe 4를 열심히 듣는 쪽으로 생각하게 됐다. Stufe 4를 이수할 뿐만 아니라 동일 코스의 Abschlussprüfung을 통과해야만 Stufe 5를 들을 권한과 DSH 시험을 응시할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다고 했다.
작년 11월 TestDaF의 성적이 왜 부족했는지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나오는 결론은 '내 독일어가 아직 부족해서'였다. 2014년 여름 ~ 2015년 여름 1년간의 독일 교환학생 생활에서 어찌어찌 B2코스를 끝낸 뒤 통과하고 한국에 가긴 했지만, 그 이후로 계속 불어를 하느라 아예 독어를 놓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2018년 여름에 막 도착했을 땐 불어가 독어보다 입에서 더 잘 나왔다. 물론 그 불어도 유창한 수준이라고 절대 말할 수 없지만.
그래서 한 학기 동안 당장 학기말에 DSH를 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수업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넣고 조금 더 나은 실력으로 DSH에 응시하자는 각오를 다졌다. 그렇게 Abschlussprüfung을 통과하면 여름 방학 동안에 제공되는 Intensiv-DSH Vorbereitungskurs를 듣고 DSH를 칠 수 있으니까.
3. Abschlussprüfung Bestanden
UzK DaF의 성적처리 시스템은 다소 복잡하다. SVK Stufe 4를 듣는 동안 Abschlussprüfung을 포함해 총 세 번의 시험을 치뤘다. 첫 번째로는 Hörverstehen & Vorgabenorientierte Textproduktion, 두 번째로는 Leseverstehn & Grammatik,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네 영역을 한 번에 치는 Abschlussprüfung이었다. 7월 첫째 주에 시험을 쳤고, 2주 반 뒤에 이메일로 Stufe 5 ; DSH-Vorbereitungskurs에 자동으로 등록되었다는 알림이 왔다. 합격/불합격 여부는 이 이메일보다는 직접 Office에 찾아가 묻는 게 더 정확하다. 못 받은 친구들도 준비코스에서 만나서 물어보니 합격 통지를 찾아가서 묻고 나서야 받았다고 한다.
4. SVK Stufe 5, Vorbereitungskurs für DSH-Prüfung
대학 DaF Zentrum에서 제공하는 마지막 레벨의 반이자, DSH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Stufe 5. 원래는 한 학기 동안 듣기도 하지만, 내가 참여한 코스는 7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3주간 이루어지는 Intensivkurs였다. 우니의 일처리는 상당히 느려서, 당장 사흘 뒤부터 코스에 출석하라는 통보를 메일로 받은 게 금요일이었다. 월요일에 출석해 보니 다행스럽게도 Stufe 4에서 우리 반을 한 학기동안 가르쳐줬던 선생님들이 오전반을 맡았다. 상당히 엄격하지만 전략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진 선생님이 2주를, 나머지 1주일을 조금 locker하고 설명을 잘 해 주시는 선생님이 진행해서 개인적으로 괜찮은 선생님 조합으로 들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두 선생님의 스타일을 알다 보니 어느 부분에서 강조하고, 어느 부분에 중요성을 두는지 파악하기가 쉬워 좋았다.
사실 3주간의 준비기간은 갓 Stufe 4를 끝내고 올라온 나에게 많이 부담스러웠다. 한 학기 내내 DSH만 보고 준비해도 모자랄 것 같았기에 3주 15회의 수업은 한없이 짧고 부족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 3주라는 짧은 시간 덕에 집중적으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빡시게 공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지막 관문, DSH 당일.
전날 일찍 자려고 했지만 너무 긴장되는 마음에 결국 12시까지 환경, 미디어, 건강 등 주제별로 정리해둔 단어장을 보고 나서야 겨우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요 근래 보이는 E-Scooter가 Umwelt 주제로 나올 것 같아서 문장도 몇 개 뽑아 연습해보기도 했다. 아침 10시가 시험 시작 시간이라 9시 20분경 집을 나섰다. KVB는 오늘도 문제였다. 버스를 타기만 하면 15분만에 학교에 도착할 수 있으나 그 '버스'를 타기까지가 매일같이 너무 다른 나라, 독일. 정시성은 정말 어디다 팔았는지 모를 시내버스 운영이니 9시에 나오지 않은 내가 잘못이지. 나는 버스를 40분이 되어서야 겨우 탈 수 있었다. 시험에 늦으면 어쩌지, 어떤 단어가 나오려나, 오늘 듣기 지문은 누가 읽어주게 될까, 문법은 공부한 부분에서 나오겠지, 온갖 세상의 수심을 짊어지고 올라탄 버스는 심지어 중간에 공사현장까지 마주해 10분을 더 늦게 갔다. 10시 정각에 부랴부랴 비슷하게 온 친구들과 신분증 검사를 하고 앉자마자 시작된 시험은 약 오후 3시에 끝났다.
우리 뇌는 정말로 멀티태스킹이 가능한가? 학교에서 아이들이 의무적으로 미디어 사용에 대한 과목을 들어야 하는가? 독일 숲 속의 털북숭이 거미들이 발생한 기후적 원인과 그들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은?
과학적인 내용부터 사회적으로 자주 대두되는 문제, 그리고 환경까지 두루 갖춘 시험문제들을 풀고 나니 온 몸에 힘이 빠지면서 정신적으로도 고갈되는 기분이었다. 월요일에 친 시험의 결과는 금요일 오전에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금요일까지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었다. 말하기 시험은 Schriftliche Prüfung을 통과한 사람만 응시가 가능하고 Mündliche Prüfung까지 통과해야 DSH-Ergebnis가 나온다.
금요일 오후, 말하기 시험에 응시할 준비를 하라는 시험감독 선생님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긴장감이 몰려와 또 죽을 맛이었다. 일부러 일찍 가서 확인했는데 기다리는 두 시간 동안 정말 심장이 쫄깃해지는 기분을 한가득 느꼈다. 나보다 앞 순서로 시험을 치고 나오는 친구들이 5분여간 교실 앞에서 대기하다가 다시 들어가서 합/불 여부를 바로 확인하고 나오는 과정을 보는 게 제일 기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두려웠다.
결과적으로는 DSH에 합격했다. 정답률 총 80%의 성적을 받고 DSH-2로 Bestanden했음을 알았을 때 나도 모르게 선생님들 앞에서 입을 딱 벌리고 좋아했다. 간절히 원하는 시험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또 한 번에 합격하는 게 이렇게 짜릿한 일임을 너무 오랜만에 느껴서일까, 가슴이 벅차서 건물을 빠져나오는 내내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족들에게 바로 전화해 기쁜 소식을 알리는데 그제야 날씨가 좋은 게 보이더라. 그날따라 따뜻하고 좋은 날씨에 집에 가는 길이 정말 행복했다. 한 학기 내내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견뎌내야만 했던 스트레스와 잦은 두통, 소화불량, 나도 모르게 신경질적으로 변해가는 성격을 마주할 때마다 씁쓸해지던 기분까지. 그 모든 게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8월 27일 화요일, 독일에 온 날은 2018년 8월 27일.
시험 결과가 바로 전달되었는지 International Office에서 바로 Zulassungsbescheid WS19/20을 보냈더라. 그래서 딱 1년이 되는 날 나는 목표한 비교학 석사 자리를 받았다.
긴 여행 365일차,
독일라잎, 쾰른라잎, 그리고 석사라잎까지-
이제 정말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