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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망 Oct 13. 2019

10월의 둘째주, 개강

UzK M.A., Komparatistik

지극히 개인적 경험 및 느낌을 기록함


독일의 학기는 10월 초에 시작해 1월 말에 기말고사와 함께 끝난다. 대부분의 시험은 1월 말 종강과 함께 치뤄지지만, 때때로 Hausarbeit(에세이)나 모듈의 시험을 새 여름학기가 시작하기 전인 3월 초~중순에 치는 경우도 있다. 이번 겨울방학에 한국을 방문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서 시험의 일정이 너무나 중요했는데, 다행히 아직까지는 모든 Abschlussprüfung이 1월 30일 이전으로 잡혀 있다. 시험을 치는 건 시간표에 달려 있는데 나는 개강 첫 주까지 그 어떤 수업도 신청하지 않은(!) 상태였다. 우선 학과의 인원 수가 적어서 타 과처럼 모아 놓고 OT를 해 주는 게 없었다. 대신 개인적인 Beratung을 진행해준다고 명시되어 있었는데, 어떻게 신청하고 무엇을 얼마나 준비해 가서 언제 어떤 내용을 받을 수 있는 건지를 몰라서 어영부영 하다보니 다음 날이 개강날이었다. 만일 누군가 개강을 앞두고 이 내용을 읽는다면 무조건 어떤 내용이든 OT를 받으시라고 추천해주고 싶다ㅠ


Fachgebäude Komparatistik : 작다고 무시할 뻔 했으나 막상 들어가보니 고급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신식 건물이라 만족함




주말 ㅣ Wochenende

9월의 마지막 주에 과 단체 메일이 발송되었었다. 내용은 담당 교수와 도첸틴의 환영인사와 첫 주 Einführungswoche의 플란이었다. 첫째 주는 Basismodule의 하나인 Einführung in die Komparatistik 1 - 번역하자면 '비교학 소개/입문' 정도..? - 의 수업이 하루 7시간씩 꽉 차 있었는데, 보니까 Blockveranstaltung으로 이걸 이수하면 모듈 하나의 Vorlesung을 끝낼 수 있는 거였다. 주말 내내 이 수업을 따로 신청을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나처럼 에어스티(새내기) 모두가 자동으로 신청되어 바로 참여할 수 있는 건지 감이 오질 않아 결국 일요일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산으로 anmelden을 했다. 결론적으로는 신청 하는 게 맞았다. 독일 대학에는 다녀보질 않아 어떻게 진행되는지 몰랐던 나는 한 주 동안 너무 많이 헤맸고, 9월 초에 있던 문과대 전체 OT라도 들을 걸 그랬다는 후회가 살짝.. 아니 많이.. 들었다..ㅠㅠ 


월요일 l Montag

아침 11시에 수업이 시작이었다. 9시 30분쯤 집을 나서 ASTA에서 Hauptgebäude 앞에서 나눠주는 에어스티 보이텔 (새내기 주머니)을 받았다. 이는 새로 입학한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선물 주머니로, 매 해 학생회(ASTA)에서 제작한 에코백에 스폰을 받는 제품을 넣어 제공한다. 정말 쾰른답게 쾰쉬를 넣어주고 다른 쿠폰과 간단한 필기구, 메모지 등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발견한 건 프라이탁 카드지갑! 횡재했다는 마음으로 가방을 챙겨 Komparatistik 과 건물로 향했다. 독일 대학은 대부분 도시 내 곳곳에 건물이 흩어져 있어서 이렇게 자신의 수업에 맞는 곳을 찾아가야 한다. 전혀 학교같지 않은 건물도 자세히 보면 바깥에 학교 건물임을 나타내는 팻말이 붙어있기도 하고 그렇다.

세미나룸에 들어가니 대여섯 명쯤 앉아있었다. 유창하게 들려오는 독일어들에 어느새 나도 모르게 기가 죽어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겉모습이 다른 외국인(?)은 나 뿐이었고, 하나둘 자리를 채운 학생들은 약 스무 명쯤 되어 보였다. 다들 첫 만남때 하는 자기소개를 무려 파트너와 서로를 소개해주자고 하는 바람에 생각이 저 멀리 Konjunktiv 1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내 파트너는 정말 미안하게도 나를 통해 단 다섯 문장으로 표현되었고 내 얼굴은 시뻘개져 있었다. 이 때부터 집에 가서 침대에 눕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화요일 l Dienstag

이틀째인데 종강을 생각했다. 동기들을 보니 다들 수강신청에 대해 말이 많아서 수강신청을 지금 빨리 해야 하는구나 싶었다. 첫 학기부터 무리해서 듣는 것보단 그래도 조금 널널하게 생각하자 다짐하고 18학점 정도를 생각했다. 원래 30학점쯤 듣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시험들을 다 감당할 자신이 솔직히 없었다. 이번 학기에는 Vorlesung위주로 듣고 다음 학기엔 Seminar에 참석해 시험을 치루는 걸로 혼자 결심을 했다. 19세기 독일문학과 프루스트에 대한 수업을 넣고 Übung을 하나 넣었다. 아마도 토론 헬게이트가 열릴 것 같다. 창 밖을 바라보며 구름의 모양을 관찰하는 시간이 늘어날 것 같다고 막연히 느꼈다.


수요일 ㅣ Mittwoch

비교학 입문 주간은 우리 과에 대한 전반적인 맵핑을 해 주는 것이 목표로, 여러 단과대에서 각자가 제공하는 수업을 소개하고 어떤 시스템인지 알려주는 시간을 가졌다. 가령 독문학과에서는 어떤 수업과 세미나를 제공하는지, 로망스 인스티튜트에서는 어떤 수업과 그에 걸맞는 언어 수업을 제공하는지 등을 소개해주는 자리였다. 오늘은 고대 독일어로 번역된 Chanson de Roland 을 배우며 생각했다. 독일 친구들이 한국에 공부하러 가서 청산별곡과 사미인곡을 배운다면 이런 기분일까...? 그래도 전반적으로 여러가지 수업을 포괄적으로 들으며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대충 감이라도 잡을 수 있는 시간이어서 좋았다. 특히 로망스어 세미나에서 제공한 raumlichkeit와 zeitlichkeit에 대한 주제는 평소에 흥미를 가지고 있던 내용이어서 더 재밌게 잘 들은 것 같다. 물론 듣기만 잘 듣고 100퍼센트 이해하지는 못했다. 


목요일 ㅣ Donnerstag

첫 주의 마지막 수업 날이었다. 첫 시간을 China Study로 시작했는데 한자로 쓰여진 사람 인, 하늘 천을 맞추며 최고 엘리트로 1분 30초 정도 등극했다. 어쩌면 중국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독일 대학교에서 대한민국과도 연관지을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들었으나 내용은, 뭐 그닥. 좋긴 했다. 이곳 학생들에게는 전혀 새롭고 신기하게 느껴져서 솔깃한 내용이 있을 수 있겠으나 정말 당연하게도 너무 중국 - 독일 중심이었고 그나마 일본이 가끔 언급되며 한국은 거의 언급될 이유가 없는 위치였다. 중국은 Roman보다 Media의 파급력이 큰 나라라는 설명, 그들에게 Roman은 작은 이야기(소설; kleine Geschichte)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다. 소설이 정말 그 독일인 교수님이 말한 대로 중국어에서 작은 이야기를 뜻하는 것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정말 그 뜻 그대로 물리적으로, 내용적으로 '작은' 이야기를 의미하는 것인가에 대해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그 다음 시간은 북유럽 문학 세미나였는데 전후문학에 대한 관심이 생각보다 되게 커서 조금 놀랐다. 한 주를 참여하면서 독일과 대한민국 문학/문화에 대한 비교를 하게 된다면 아무래도 전쟁, 통일 그리고 분단에서 키워드를 찾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주부터는 내가 신청한 독일 문학, 프랑스 문학 각각 하나씩 Vorlesung 두 개와 비교학 Übung 하나를 수강하러 다닌다. 지금 프랑스어 Aufbaumodule에 이번 학기에 개설이 안 되는 선수과목이 있어서 나중에 이수해야하는 두 번째 모듈을 먼저 들어도 되겠냐고 문의하고 답을 기다리는 상태이다. 시간표가 픽스되지 않아서 시간표가 아주 많이 휑하긴 한데, 아무튼 괜찮다고 하면 두 번째 모듈의 네 과목이 더 추가될 예정이다. 아마 이번 학기에는 두 개의 시험을 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이렇게 나의 총합 열 번째 개강은 어리버리 + 두려움 + 부끄러움 + 걱정 + 독일어 능력치 하락 + 한국어 그리워 + 집에 가고싶다 + 종강하고 싶다 는 모든 것이 뒤섞인 채로 찾아왔다. 스무 살 때 처음 대학을 왔을 때보다도 더 영문을 알 수 없는 개강이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개강을 한 건지 나는 어디인지 누구인지 제대로 듣고 해나가고 있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두번째 주를 지내면 조금 더 Klar 해지지 않을까 생각하며 첫 주의 느낌을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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