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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망 Sep 02. 2019

사보험에서 공보험으로

학생 신분을 위한 비싼 한 걸음

이제 일교차가 꽤 커지고 저녁 즈음이 되면 쌀쌀한 공기가 느껴지기도 하는 게 여름의 끝자락인가보다. 작년 이맘때가 그대로 기억나는 날씨와 그 익숙한 공기 내음에 괜시리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고 아련해지기도 하는 청춘이건만, 오늘은 아침부터 공보험으로 보험을 전환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돈 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청춘이다. 


작년에 무비자 체류 허용 기간 3개월이 끝나갈 시기에 맞춰 들었던 사보험 MAWISTA는 대학 입학 조건으로는 부족하다고 연락이 왔다. 처음에 DSH 합격 서류와 Versicherungsbescheinigung을 이메일로 보내면 오피스에 방문할 필요 없이 자기가 처리해주겠다는 담당자의 메일을 받고 혹여나 하는 마음으로 마비스타 베샤이니궁을 보내 보았다. 그랬더니 콕 찝어서 마비스타 대신에 TK나 AOK 혹은 DOK 등의 공보험, 즉 'gesetzliche Versicherung' 서류를 입학신청서류와 함께 보내달라는 메일을 보내주었다. 뭐, 못 먹는 감 찔러나 본 걸로... 머쓱타드.


출처 : Google


독일의 공보험은 우리나라의 의료보험과 비슷한 개념으로, 국가에서 가입자를 지원해주는 것이 공보험이다. 보험료가 일반 학생용 사보험(마비스타 기준)에 비해 두세배 가량 비싼 것이 가장 큰 단점이다. TK의 경우 2019년 10월 1일부터 보험료가 약 105유로로 인상되었으며 타 공보험사도 비슷한 금액이 인상되었다. 마비스타 Student Classic Plus 에서 약 35유로를 매달 내던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인 보험료지만, 입학 절차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바꾸어야만 했다. 


이렇게 비싼데도 불구하고 공보험은 독일에 사는 '아무나' 가입할 수는 없는 보험이다. 아니면 그런 보험이라 보험값(?)을 하는 건진 모르겠다. 공보험 가입 자격은 독일 내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신분임을 동시에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독일 내 직장인 신분을 가지고 있거나, 정부나 교육기관의 초청으로 독일에 유학을 오게 된 신분이거나, 대학생(교환학생 포함)이라면 자신의 학생 신분을 증명할 서류(Zulassung; [쭐라숭] 입학허가서, Immatrikulationsbescheinigung; [이마트리쿨라치온스베샤이니궁] 학생 등록증명서)를 가지고 있다면 보험 가입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외의 독일 체류 사유가 명확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사람은 공보험 가입이 힘들 수 있다.


아무튼, 짧고 부족한 공보험에 대한 설명은 여기까지 하겠다. 아침 일찍 가서 빠르게 업무를 끝내려던 야심찬 계획은 아니니 다를까 늦잠 덕에 깨져버렸다. 느릿느릿 일어나 씻고 점심을 먹은 뒤 출발하니 13시. 생각보다 대기줄이 길었지만 또 생각보다 빨리 업무처리를 하는지 줄이 빨리 줄어들었다.


담당자는 엄청 친절하진 않았지만 딱 필요한 만큼 친절했다. 내 다 부서진 독일어...도 잘 알아듣고 설명해줬고. 내가 2014년에 레겐스부르크에서 가입해뒀던 데이터가 남아있어서 별도의 Vertrag을 처음부터 작성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담당자가 서류를 다 인쇄해서 자기가 직접 기입하고 나는 기입사항을 확인한 뒤 시키는 대로 빈 칸에 서명만 했다. 거주지등록증(Meldebestätigung; [멜데배슈태티궁])을 챙겨갔지만 쳐다보지도 않았고... 여권이나 비자카드가 있으면 보여달라고 해서 여권을 보여줬는데, 저렇게 묻는 걸 보니 비자카드만 들고가도 상관이 없는 것 같았다. 입학허가서(Zulassung)도 확인을 따로 하지 않는 게 내가 봤을 때 학교 측이랑 연결된 뭔가(?)가 있지 싶다. 내 Studiumfach를 물어보고 Vertrag 작성 완료. 그 다음으로는 자동이체를 위한 IBAN Nummer를 적고 끝. 준비해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 건 여권사진이 유일했다. 보험카드를 발급해줄 건데 직접 이미지를 업로드할래요, 아니면 종이로 증명서만 드릴까요? 하길래 여권 사진 가져왔다고 줬더니 아주 좋다고 하며 그 자리에서 또 카드 발급 증명서에 서명. 그리고 정말 끝났다. 얼마나 빨랐나면 독일에서 느낀 초스피드 행정 중 첫 번째가 안멜둥(물론 번호표 뽑고 대기하는 시간 말고, 베암터/베암틴 만난 뒤의 과정...)이었고 두 번째가 요 테카였다. 15분이 채 안 걸린 것 같다... 질문이 있냐는 말에 딱히 없는데요, 하니까 보험 Inhalt를 담은 서류철에 명함을 끼워주고 안녕히 가시란다. 


날도 좋고 보험 전환도 빠르게 끝났고 기분 좋게 단골 커피집 별다방에 와서 글을 작성 중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돈 빼가는 건 쉽게쉽게 잘 해 주는 것 같단 말이지.


학기 시작인 10월 1일부터 보험이 적용되고 Immatrikulationsbescheinigung을 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기억해두고 까먹지 말아야지. 한달에 12만원돈이 보험료로 나가게 생겼으니 이쯤 되면 1주일에 한번 정기검진을 받으러 다녀야 하나 싶다. 아플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이 정도 범위의 보험에 가입했으면 감기 예방접종이랑 간단한 접종류는 꼬박꼬박 찾아 맞고 스케일링도 꾸준히 받으러 다녀야 하지 않을까... 흑.




DSH 대비 수업 중에 주제로 '보험료의 꾸준한 인상'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었다. 자꾸 보험료가 올라가는데 원인은 아픈 사람이 많아서 올라가는 거였다. 보험회사가 커버해야 할 범위의 사람들이 자꾸 늘어나니까 보험료는 매년 인상되고 안 아픈 사람의 부담도 커진다는 것이다. 특히 학생들의 경우 가족 단위이면 한 사람만 보험비를 내면 되지만, 개인의 경우 각자 매달 100유로 이상의 보험료를 내야 하는 것이라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보험료 인상을 부추기는 대표적인 질병으로 선생님은 암 그리고 비만을 꼽았다. 특히 비만으로 인한 합병증과 건강 문제는 국가적 차원에서도 관리할 만큼 심각한 문제라고. 여기서 곁가지 치기로 나오는 주제가 '너무 싼 독일의 고기 물가'와 '채식주의자'에 대한 것들이었다. 


이렇게 연결지어 생각하다 보니 내가 얼마나 협소한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지가 뼈저리게 다가왔다. '보험료 인상'이라는 주제를 누군가 내게 던져주면 나는 정말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을 거다. 그냥 보험료가 올라가나 보다...하고 말지. '비만'에 대해 개인적, 사회적 문제점을 말해보라고 해도 그냥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유를 웅얼거렸을 것이고, 사회적 문제가 뭔지는 감도 잡지 못 했겠지. 


고작 보험 하나 전환하러 다녀오면서 버스 안에서부터 과연 질병의 발생률이 명확히 감소했을 때 보험료도 같이 저렴해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의 경우라면 정말 힘들 것 같다. 호황기 때 짜장면 값 오른 게 불경기라고 내려가지는 않잖아...? 너무 국가적인 문제를 짜장면과 결부시켰나 싶지만. 어쩌면 독일은 공보험도 경쟁체제라서 너도나도 5유로쯤은 깎아주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이번 주 들어 날씨가 정말 좋다. 준비 과정의 막바지에 다다르니 기분이 좋기도 하면서 섭섭하기도 하다. 이제 내 인생에 (아마) 두 번 다시 없을 어학 기간을 마무리하려 하니 그런가 보다. 애초에 한 학기만 어학을 하겠다던 야무진 계획은 다프에서 미끄러지면서 삐끗했지만, 한 학기만에 DSH를 합격하면 마스터를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달려온 또다른 5개월이 보람차다. 힘들 걸 알고 온 독일에서 생각보다 행복한 이방인으로 잘 지내고 있어 스스로가 기특하기도 하고, 엄마 아빠랑 동생이랑 고양이가 보고 싶어서 괜히 단톡방에 깔짝거리기도 해 보고, 그렇다. 이제 Einschreibung을 끝내면 정말 학생이다. 보험비로 105유로씩 내는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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