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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망 Oct 27. 2019

삶, 삶, 삶 (1)

독일에서 집을 구하는 기나긴 시간에 대한 글


바야흐로 지난 겨울이었다. 대학으로부터 입학 조건으로 독일어 코스에 대한 입학허가를 받았을 때부터 이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현재 사는 곳은 운터미테로 플랫메이트 - 그러니까 Mitbewohner가 있는지라, 긴 시간을 잘 지내려면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외국인으로서, 학생으로서의 선택지는 일반적인 순서대로라면 기숙사, WG 그리고 개인이 찾는 Wohnung이 있었다. 당시의 나는 이 어학 코스를 얼마나 할지, 하고 나서 학과 입학 허가가 곧바로 나올지, 만일 나오지 않거나 어학을 끝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부담되지 않는 가격에 학생 신분이면 들어갈 수 있는 기숙사가 나에게는 가장 이상적이었다.  



자발적 주거공동체로의 첫걸음


직접 겪어본 바, 이 대도시의 기숙사 시스템은 참 기가 찰 지경이다. 교환학생은 매년 매 학기 파견되고 나처럼 유학을 오는 외국인 학생들도 다수인데 비해 제공되는 기숙사 방은 턱없이 부족하다. 심지어 교환학생은 학교끼리 협정을 맺어 매년 몇 명이 오는지 미리 정보가 공유되는 상황인데도 기숙사 방을 받기 힘들다고 했다. 물론 나는 교환학생은 아니지만. 대학별로 기숙사를 관리하는 게 아니라 모든 고등교육기관들의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기숙사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기관(Studierendenwerk)이 있다. 인터넷 사이트로 신상명세를 기입해 신청 포맷을 보내면 해당되는 조건의 기숙사 방이 나왔을 때 순차적으로 연락을 준다. 나는 지난 겨울 - 2월 - 에 공식 학생 신분이 되었기에 그 때 처음 신청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10월 말까지 오는 연락이라곤 '아직도 방을 원한다면 하단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 라는 내용 뿐이다. 


직접 찾아가면 방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높아지기는 한다. 3월즈음 한 번 찾아가보았고, 굉장히 불친절하고 깐깐한 담당자를 만났다. 독일어로 설명하다가 더듬기라도 하면 확 인상을 쓰고 네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역정을 내더라. 이해를 못 한 게 아니고 안 하려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름을 묻고 생년월일을 묻더니 클릭을 몇 번 하고 뭔가를 바로 뽑아서 내밀었다. 동의하면 사인을 하던가, 압자겐(거절)을 하던가, 라면서. 내가 신청한 내역은 분명 1인실이었으나 당당하게 WG를 주더라. 심지어 다른 행정구역 - 그러니까 위치상으로는 가까우나 도시가 다른 - 에 있는 기숙사였다. 비자를 받고 연장을 하려면 또 다른 관할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서류를 준비하고 그 관할 외국인청으로 가야 했다. 애초에 내가 원한 방도 아니었고 마음에 드는 방도 아니었다. 나는 이 도시 구역 내에 머물고 싶다고 하고 거절한 뒤 건물을 나섰다. 


같이 찾아간 친구와 담당자의 불쾌한 태도에 대해 한바탕 하고 난 뒤 여전히 꿀꿀한 도시의 날씨 속에서 조금 걸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어차피 선택지가 WG라면, 그리고 250~300유로를 낼 거라면 차라리 아는 사이끼리 편하게 Wohnung을 찾아서 WG를 하면 어때? 날씨는 아직 잿빛이고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으나 우리의 주거공동체 협정은 그렇게 빠르고도 평화롭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것이 모든 것의 시발점이었다. 


정착을 위한 몸부림


앞서 말한 '모든 것'에는 긍정, 부정이 동시에 포함된다. 그로부터 한 학기 동안 어학을 하는 동안에는 정신도 없고 확신도 없어 이사계획을 조금 미뤄두었다. 친구 H도 대학 학기중이라 둘 다 바쁘고 따로 신경 쓸 각자의 일이 있었다. 그렇게 어학을 잘 끝내고 석사 입학을 앞두고 있을 시즌인 8월 즈음 H와 다시 대화를 나누었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의견을 나눈 뒤 집을 같이 찾아보기로 결정했다. 그때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당연했다. 우리 둘 사이에 이야기하고 결정하는 거야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었으니까.


석사를 할 동안 살아야 하는 집이었으므로, 집을 찾을 때의 기준은 이하 다섯 가지를 꼼꼼히 고려했다.

1. 집다운 집일 것 - 동네의 안전이 최우선으로 꼽았다. 언제든 쉴 수 있는 집에 오는 게 힘들지 않도록.

2. 대중교통 편을 볼 것 - 둘 다 운전과는 거리가 멀고 특히 나는 겁이 많아 자전거도 잘 못 탄다.

3. 마트, 대중교통 정류장 중 적어도 하나는 가까울 것 - 둘 중 하나는 포기가 되도 둘 다는 절대 안 된다는 의견.

4. Anmelden, 즉 거주등록이 될 것 - 비자를 위해서는 두 사람 다 거주등록이 필수사항이므로 무조건 고려.

5. Warmmiete 예산  - 이건 당연한 사항


독일과 집구하기라는 키워드를 넣어 검색하면 워홀로 와서 WG에 들어간 이야기, 가족 단위로 와서 큰 돈을 들여 하우스에 간 이야기, 직장인으로서 보눙을 구한 이야기, 등등등등 많은 분들이 소중한 경험을 나누어 준 결과가 나왔으나 우리가 참조할만한 내용은 다소 부족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집 구할 때 필요한 용어도 용어지만, 우리와 비슷한 상황과 조건에서 집 구해 본 내용이었다. 그래야 희망이 있고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찾기가 너무 힘들었고 이는 내가 외국인으로서, 그리고 일정한 소득이 없는 평범한 학생으로서 안멜덴이 되는 비교적 오래 살 집을 구하면서 겪은 내용을 주관적으로나마 글로 남겨두고 싶게 한 계기가 되었다. 


시련이 폭풍처럼 닥쳐와


8월 초. 익히 알고 있을 그런 부동산 사이트와 주거 관련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우리 입맛에 맞는 집을 골라 이메일을 몇 통 보내보았다. 아무도 답을 주지 않았다. 우리는 아주 조금 다급해졌다.


8월 말. 8월 중순에는 내가 DSH를 준비하느라 조금 소홀했다. H 혼자 고군분투했으나 소득은 없었다. 이제 집의 상태나 조건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되지 못했다. 가격의 상한선을 정해두고 그 선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집 - 대신 동네가 안전한지의 여부를 우선순위로 두었다 - 에 메일을 썼다. 서너 통의 답장이 왔으나 99% 확률로 leider가 들어가는 내용이었다. 이미 다른 사람에게 집을 주기로 했어, 미안. 을 몇 번 보니 오기가 생겼다. 우리는 이메일 내용을 보충해보기로 했다. 기초내용을 토대로 복붙을 하고 또 하며 이름이나 위치를 잘못 쓰지는 않았는지 검사하는 데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9월 초. 리뉴얼한 내용의 이메일을 가지고 틈만 나면 메일을 보냈다. Besichtigung(집 방문 약속)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기쁜 마음으로 방문을 가면 우리를 제외하고 최소 열 명은 와 있었다. 집이 너무 마음에 드네요- 하고 호들갑을 떨 새도 없이 방문은 끝났고 우리가 개인적으로 집 계약과 관련된 서류를 낸 건 몇 주 뒤 거절 의사와 함께 돌아왔다. 


9월 말. 

이제 Besichtigung을 가야 받아서 내거나 그 이후에 이메일로 첨부해 집주인에게 보내는 Selbstauskunft(세입자가 직접 작성하는 신상 명세서)를 미리 노멀한 포맷으로 만들어 일일이 이메일을 보낼 때마다 알맞게 수정해서 보냈다. 방문 약속에 대한 답장 성공률이 조금씩 높아졌다. 일주일에 서너번씩 방문을 하러 다녔다. 그러나 마지막에 번번히 거절의사가 메일로 도착했다. 


한 번은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우리에게 집을 주고 싶으니 집주인과 약속을 잡자는 Vormieterin (이전 세입자)가 있었다. 행복에 겨운 마음으로 월요일에 답장을 했으나 금요일까지 2통의 이메일을 보내도 답이 없었고 나는 고 계집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해두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가 뜬다 : 이 말인즉슨 답장이 온 게 없는데 다 Deaktiviert된 것. 방문 기회조차 없었던 집들이다.


앞서 보냈던 메일들의 집들은 어쨌다 저쨌다 답장도 없이 Deaktiviert (비활성화 - 부동산/혹은 임대업자가 뒤에 들어올 사람을 정한 경우 부동산 광고를 비활성화시킨다)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언제부터인지 이 시기의 나는 포털사이트의 오늘의 운세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10월 이번 달에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는 이달의 운세를 보았다. 그 기세를 몰아 직접 만들어 기입한 정성스러운(!) Selbstauskunft를 보고 감동한 건지 방문 약속은 꾸준히 잡혔다. 하지만 여전히 성공률은 0퍼센트였다. 주중에는 메일을 쏘고 주말 즈음 방문해 어떻게든 그 집에 살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치는 생활이 계속되고 있었다. 나나 H나 둘 다 지쳐 나가떨어지기 직전이었다. 


당장 다음 주가 개강이던 때에도 여전히 우리의 주거공간은 감감무소식이어서 정말 진지하게 다른 대안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돌아오는 건 거절뿐. 사유를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외국인이라 거절당하는 것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아 좌절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나는 아무 기대치도 없이, 그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10월 3일 어느 부동산 공고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복사 + 붙여넣기 후 세부사항을 손 본 이메일을 넣게 되는데... 다음날 웬 이름모를 전화가 걸려왔다가 부재중을 남겨놓은 것을 보았다. 직감적으로 부동산일 것만 같아 확인해보니 보이스메시지를 남겨 두었더라. 통화 음질로 녹음된 부동산 아저씨의 말이 굉장히 빠르고 정신없어서 세 번의 동일 내용 확인 끝에 Besichtigung이 잡혔음을 알았다. 이 때조차 나는 그저 아저씨가 친절한 편이라고만 느꼈지 기대감은 한 톨도 없었다. 심지어 Besichtigung을 가는 날 10분이나 지각을 해 버렸다. 그 결과는?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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