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대추나무집

20110618 사진

by Chang



2011년 06월 18일 폰으로 찍었던 사진.



당시에 썼던 글


처음 가본 고당.

작은 새들이 고당 안을 날아다니길래 봤더니 제비였다. 처마 밑에 달린 제비집들. 제비들은 신이 난 건지 계속 이곳저곳으로 분주히 날아다녔다.


A와 커피를 마시며 수다 삼매경에 빠져들 무렵 제비들이 방 안으로 날아들었다. 녀석들은 당황했는지 방을 빠져나가겠다며 타닥타닥-요란스러운 날갯짓을 했다. 나는 연신 "제비다. 신기해. 오랜만이야"라는 말을 내뱉었다.

- 어릴 적 처마 밑에 있던 제비집을 어머니가 떼버린 후에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녀석들이라 매우 반가웠던 것 같다.


종종 내 어린 시절의 대부분의 기억이라고 할 수 있는 하얀 대추나무집이 생각난다. 당시 내 방은 2층이었고 공부를 하다가도 툭하면 창문 너머의 대추나무나 하늘을 보며 공상에 잠겨있었다. 어떤 날은 날이 너무 좋아서, 어떤 날은 대추나무의 잎사귀가 반짝거려서, 멍하니 창틀에 앉아 감상에 빠진 적이 많았다. 분명 어떤 날은 친구와 노는 것보다 창틀에 앉아 대추나무를 보던 내가 더 편하고 즐거웠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가끔은 대추나무와 인사를 하겠다며 내 어린 시절의 팔을 뻗어 겨우-겨우 나뭇가지를 손으로 낚아챘던 어렴풋한 기억도 난다. 그 기억이 참 좋았다. 미화된 기억일 수도 있지만. 창틀에 앉아 <빨간 머리 앤>의 앤처럼 공상에 빠져있던 내 어린 시절의 기억, 꽤 괜찮은 것 같다.




나한테는 대추나무집. 하지만 동네 사람들에게는 5월마다 장미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집이었다.


내 어린 시절의 대부분의 기억을 차지하는 곳. 잠시 새도 키우고, 진돗개와 하얀색 발바리를 키웠던 바로 그 집. 나는 그 2층 집을 좋아했다.


과거에 썼던 글처럼 창문을 열면 대추나무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기 때문이다. 팔을 뻗으면 가지가 잡혀서, 악수하듯 인사를 나룰 때도 있었다. 엄마는 그런 행동들이 위험하다고 매번 말렸지만, 책상에 앉아 공부가 하기 싫어질 때면 창문 밖 대추나무에게 말을 걸고 놀았다. 영원할 것 같은 순간들이었다.


서울로 이사 간 후 사회생활을 시작한 어른이 됐을 때 대추나무집이 궁금해 찾아간 적이 있었다. 당시 이사 가기 전 주택을 가게나 식당으로 개조하던 유행이 대추나무집에도 번졌던 건지, 내 추억의 집은 담도, 대문도 그리고 대추나무도 사라진 채 휑한 집만 남아있었다.


집에 붙어 있는 음식점 간판. 하지만 재개발을 앞두고 문을 닫았는지, 버려진 모양새였다. 지금은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당시엔 기억에 남아있던 내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현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을 살폈었다. 내가 한 낙서. 그게 남아있어서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지금은 재개발로 사라져 버린 대추나무집이다. 허물고 부시고 퍼낸 그 자리엔 아파트가 과거의 유산을 덮은 채 우뚝 솟아났을 거다. 과거는 덮어지고 미래는 끊임없이 현재가 되어간다.


번아웃은 극복 중일까.

어쩌면 나는 극복할 계기가 생기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엄마가 아프기 전에는 매해 몇 권의 책을 읽고, 몇 편의 영화를 볼 것인지를 정하거나 체크를 했다. 마지막 날에는 그 해의 열심히 산 점수를 스스로 매기기도 했다. 적어도 60점 밑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노력도 했다. 하지만 엄마의 병이 깊어지면서 점수는 매기지 않게 됐다. 2년 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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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시간을 늘려야 해서 브런치 연재 요일을 수/토로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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