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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신 Oct 18. 2021

빨래 이모작

적도의 햇살을 가진 발코니에서라면

싱가포르를 돌아다니다 보면 다양한 고층 아파트들이 이 좁은 나라에 어찌나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지 신기할 노릇이다. 

무주택자 자국민에게 안정적인 주거를 제공하기 위해 정부에서 운영하는 장기임대아파트인 HDB를 빼고 보통 일반 아파트(수영장이나 GYM을 비롯한 부대시설이 갖추어진 민영아파트 단지를 여기서는 콘도라고 부른다)는 보통 2-3동, 많아도 10동이 채 되지 않는 소규모 단지가 대부분이다. 

요즘은 개성 있는 페인팅이나 형태도 점점 나아지는 추세지만 전반적으로 닭장 같은 획일적인 복도식 HDB와는 달리 제각각 독특한 특색이 있는 콘도는 외형면에서도 금방 구분이 되는 편이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이러한 콘도들은 우리나라 아파트들과는 다르게 이국적인 면모가 돋보인다. 아니 아파트라면 우리나라도 둘째가라면 서러운데 왜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

바로 발코니의 유무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간극이었다. 물론 발코니가 없는 콘도도 꽤 있지만 외국인의 눈에는 언제나 새로운 것이 더 눈에 띄기 마련이다.

 

한국의 아파트에서 살 때는 발코니 확장공사를 한 집이거나 그렇지 않았던 집도 외부와 바로 연결되지 않고 창으로 모두 막혀있는 폐쇄형인 경우가 전부였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개방형 발코니는 4계절이 있는 우리나라와 맞지 않을 수 있다. 봄만 되면 기다렸다는 듯 뿌연 황사에, 이제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높아지는 미세먼지 지수로 밖에서 집에서는 문을 꽁꽁 닫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지금처럼 판을 치기 전에도 우리나라는 이미 마스크 쓰기 선도주자였다. 


그래서 호텔에서나 볼 수 있는 탁 트인 야외 발코니에 대한 로망이 있는 편이었다. 그래서 싱가포르에서 집을 구하러 다닐 때 일반적으로 구비되어 있는 발코니가 너무 신기했다. 


위드 코로나 체제로 가고 있는 싱가포르에서도 확진자수가 급증할 때는 불필요한 외출을 자제하라는 권고를 언제든 발령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 확산세가 공포스럽기만 했던 작년의 경우, 온라인 수업, 재택근무, 외식 금지 등은 그야말로 일상이었다. 수영장이나 테니스장 등의 콘도의 편의시설도 전혀 이용할 수 없고 어쩔 수 없이 집에서 격리 아닌 격리 생활을 해야 했다. 그때 이 발코니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아찔하기까지 하다. 

우리 집은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아웃도어 의자 세트와 테이블이 구비되어 있어 코로나로 나가지 못해도 바깥공기와 눈부신 햇살은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특히 남편은 밖에 나가지 않고도 담배를 피울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한다.(으이그...)


싱가포르 와서는 이 발코니 덕분에 빨래도 더욱 부지런히 하게 되었다. 여름이라 수건이며 옷가지, 하루 종일 외부에 있던 아이들의 교복과 모자까지 매일매일 빨랫감이 산더미.

보통 일주일에 두세 번은 아침, 오후로 나눠 빨래를 두 번씩 한다. 일종의 빨래 이모작이랄까. 발코니에 내리쬐는 쨍쨍한 햇살과 자연바람으로 아침의 빨래는 오후면 벌써 뽀송하게 말라있다. 

주말에는 이불과 쿠션, 베개들도 팡팡 두들겨 먼지를 털어내고 발코니 의자와 건조대에 널어놓아 강렬한 태양광 자연 소독을 하곤 한다. 땀은 좀 빼지만 그러고 나면 속이 다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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