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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신 Sep 16. 2021

비자발적 미니멀리스트 되기

텅 빈공간 채우기, 하지만 이건 내 집이 아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먼저 도착한 남편의 널브러진 짐들이었다. (예약 시 착오가 생겨 남편이 9시간 먼저 싱가포르에 입국, 시작부터 뭔가 싸하다)

오전부터 아이 둘 챙기면서 각각 2개씩 엄청난 짐을 메고 끌고 이제 막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심사를 거쳐 택시를 타고 여기까지 오는데 익숙한 것은 하나도 없어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데 그 꼴을 보자마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짐들 사이를 어떻게든 헤집어서 자리를 확보한 후 우리가 가져온 거대한 캐리어와 짐들을 구겨 내려놓았다.

그가 잘한 일이라고는 미리 빵빵하게 켜 둔 에어컨 정도? 한밤에도 습하고 무더운 날씨와 무거운 짐들에 지친 우리 셋은 쾌적한 공기를 느끼자마자 그제야 살았다란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것도 잠시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던 찌들 대로 찌든 몸을 빨리 씻어 내고만 싶었다. 하지만 당장 샤워 후 입을 옷가지와 간단한 로션 등을 가방에서 꺼내는 게 급선무였다. 그대로 주저앉아 옷을 찾아 캐리어를 파내고 나니 아까 널브러짐의 딱 2배가 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그야말로 짐들 사이의 발 디딜 틈을 찾아 폴짝폴짝 뛰어 건너 다녀야 했다.

퍼온 이미지지만 딱 이런 분위기

오자마자 어수선한 집안을 맞닥뜨린 난 얼굴을 찌푸리며 이미 남편에게 한 소리를 던진 상태였다. 이미 짜증지수가 폭발한 상태여서 내 정신이 아니었다. 물론 남편도 억울한 듯 항변했다. 캐리어에서 옷과 수건을 꺼내고 당장 필요한 물이며 생필품을 사러 마트에 다녀오느라 한가롭게 짐 정리할 시간이 없었다며.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 있을 때 그가 퇴근할 시간대는 아이들이 학원에서 오는 시간과 저녁준비하는 시간대가 맞물려 항상 어수선하고 정신이 없었다. 그런 것이 대해 말 한마디 안 하는 무던한 남편이 새삼 고마워졌다. 물론 깔끔해도 전혀 동요가 없는 그이지만.

   

샤워 후 몸이 나른해진 나는 손끝 하나 움직이기 싫었다. 물론 남편도 오자마자 현지 에이전트와 집 계약 마무리하랴, 낯선 마트를 찾아가며 생필품 몇 가지 사느라 나름 정신없었으리라. 난 머리만 대충 말리고 그대로 침대에 기어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싱가포르 입성 첫날이 무심코 지나갔다.



싱가포르행을 결정했을 때 회사에서 모든 것이 지원되는 주재원 신분이 아닌 모든 것을 자비로 해야 하는 유학 신분이라 짐은 우선 최소화해야 했다. 해외이사 대신 당장 입을 옷가지와 간단한 생필품으로 캐리어를 채웠다. 필요한 짐들은 나중에 남편(혹은 친구, 가족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퍼 나를 계획이었다. 한국을 떠나기 2년 전 이사를 한 터라 아직 따끈따끈한 가전제품 및 아끼는 소파며 가구들은 양가에 적절히 배치(라고 쓰고 무상교체라 읽는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계획과는 달리 상황은 아주 엉뚱하게 전개되어 버렸다.

작년 초 한 순간에 전 세계에 무섭게 퍼진 코로나 때문에 싱가포르에 온 지 4개월, 이제 조금 적응할 때 즈음 외식 금지, 모임 금지(심지어 가족 간의 같이 외부 운동도 금지)에다 장보기 같은 최소한의 활동만을 허용해주는 이른바 락다운이 걸려버린 것이다.

그래서 한국 왕래는 물론이거니와 싱가포르 인근(차를 타고 다닐 수 있는 말레이시아 등)조차 국경이 모두 닫혀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서서히 못다 가져온 한국의 물품은 잊혀 가고 하나부터 열까지 여기세어 조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살 수는 없는 노릇. 집도 한국에 비해 매우 협소해졌을 뿐만 아니라(하아...돈을 이렇게나 내고 겨우 이렇게 살아야 하다니...), 이곳에서 한없이 머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즉 돌아갈 때도 올 때와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생필품만을 챙겨서 돌아가야 한단 이야기다.

한국에서의 화려한 맥시멀 리스트의 삶을 버리고 비자발적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밖에 없었다. 꼭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 몇 년 쓰고 버려도 아깝지 않을 가성비템 위주로 비어있는 집을 채워나갔다. 여기에 맘카페, 한인카페 등을 통해 중고거래도 하고 무료드림도 받는 생활이랄까.


나름 이런 생활도 새로운 매력이 있었다. 물건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물건을 또 사고 후회하던 그때가 언제였나 싶다. 심지어 싱가포르는 여름옷만 있으면 되니 옷의 부피도 확실히 줄었다. 락다운이 되니 외출할 일도 없어서(아직 만날 사람도 없고) 한국에서 가져온 옷만으로도 충분히 살 만했고 무엇을 걸치든 남을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도 옷 욕심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었다.


나는 이렇게 싱가포르에 잘 적응되어 가고 있었다.




이미지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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