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이신 Sep 16. 2021

도시락으로의 회귀

새벽 도시락 싸는 엄마는 위대하다

요즘엔 한식을 넘어 별의별 세계 요리의 향연장이 되고 있다는 한국 학교의 우수한 급식문화. 급식 자랑샷으로 올라오는 사진들을 보면 정말 먹는 것만큼은 학교가, 더욱 정확히는 급식실이 엄마들 대신 열일하고 있는 중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아이들도 한국의 초등학교에서 좋았던 기억으로 항상 빠지지 않는 게 바로 이 급식이었다. 특히 수요일은 4-5교시 수업만 하는 데다 자장면, 오므라이스, 돈가스, 우동 등 일반 백반에서 벗어난 별미가 나오는 날이라서 은근 기대하고 등교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그렇게 한국에서는 애들 소풍 도시락조차 한번 안 싸 봤던 내가 우리 엄마세대에나 하던 새벽 도시락을 열심히 만들고 있는 중이다.

물론 학교에 캐더링 서비스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 메뉴가 너무 뻔했다. 피자, 샐러드, 샌드위치, 누들, 파스타, 치킨 등 한국인 엄마가 보기에는 영양상, 입맛상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게다가 이런 성의 없는 것들(?)이 한 끼에 거의 10 불선, 두 명에 한 달이면 400불이라니! 몸 편하자고 쓴다면야 아깝지 않을 돈이지만 우리 아이들이 이런 메뉴를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다는 게 문제다.

싱가포르에 와서 접하는 음식은 훨씬 다양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입맛은 빵보다는 밥, 파스타보다는 라면, 외식은 한식 고깃집을 더 선호하는 굳건한 한식 체질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이들도 학교에서 시켜 먹는 점심이 궁금하긴 하지만 딱 거기까지. 입맛은 못 속인다. 연속으로 샌드위치나 빵 종류를 싸주면 어김없이 "엄마 내일은 밥 싸줘!"하고 요구하는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외국 아이들이 점심에 뭘 싸오냐고 물어보면 정말 별다를 게 없더란다. 그냥 햄이나 치즈 한 조각만 넣은 샌드위치, 과일 혹은 파스타 이 정도이고 그것도 메뉴가 일주일 내내 같은 아이들도 천지란다. 아니 그것만으로 허기가 찰까 싶지만 그마저도 다 안 먹고 버리는 아이들도 있단다.

반면 우리 아이들의 런치박스를 보며 맛있겠다며 부러워하는 친구들도 꽤나 많다는 것! 심지어 불고기 덮밥을 본 담임선생님은 ‘그거 진짜 맛있겠다’며 군침을 흘렸다는 후문도...


보통 아이들 점심 메뉴로는 국물이 새지 않고, 냄새가 심하지 않고, 식어도 변하지 않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종류로 싸주고 있다. 이제는 잘 먹는 도시락 메뉴 루틴이 정해져 있어서 조금 수월해졌다. 특히 새벽 도시락행이라면 볶음밥류를 전날 미리 준비해서 냉동한 후 새벽에 데우기만 한다든지 간편한 샌드위치류 등으로 힘과 정성을 배분한다.


자주 싸주는 메뉴 리스트

1. 불고기덮밥 / 제육볶음 덮밥

2. 김치볶음밥 / 새우볶음밥

3. 유부초밥+닭꼬치 혹은 팝콘치킨

4. 샌드위치

(한국식 버전 : 스팸+계란+치즈+딸기잼/ 외국식 버전 : 얇은 햄 여러 장+치즈+양상추+허니머스터드)

5. 치킨과 야채를 듬뿍 넣은 케밥

6. 스팸 무스비 / 주먹밥 / 삼각김밥


이밖에 'monch & crunch'라고 점심시간 되기 전 10시 30분쯤 가볍게 간식을 먹는 시간이 있다. 간식이라고 빵이나 과자류 말고 야채스틱이나 간단한 과일 등을 먹는데 한국에서 온 우리에게는 이게 참 생소하게 다가왔다. 과일도 야채도 안 좋아하는 아이들이기 때문이리라. 그나마 먹는 종류가 딸내미는 씨 없는 포도, 사과 아들램은 샐러리(불호가 많은 채소인데 아주 잘 먹음, 반면 과일은 손도 안 댐) 정도이다.   

하지만 당근이나 오이 등을 마치 참깨스틱과자처럼 와그작와그작 맛있게도 먹는 외국 아이들에게 감화되었는지 딸내미는 이제 당근 스틱도 잘 먹게 되었다. 볶음밥에서도 당근을 별로 안 좋아하던 그녀였지만 생당근을 그냥 먹다니 놀랄 노자다.

아이들이 집에서 떠나는 시각은 보통 아침 7시 30분이기 때문에 나는 그보다 일찍 일어나 도시락 2개를 준비하고 아침을 차려내느라 7시 전에는 일어난다. 요즘에는 딸아이가 학교 수영팀에서 활동 중이라 일주일에 2번은 새벽 5시 30분에 등교한다. 그럴 때는 나는 5시에 일어나서...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졸지에 미라클 모닝을 몸소 실천하는 중이다.


물론 내 소중한 아이들에게 무엇을 아끼지 않으랴 싶지만은 엄마의 정신건강과 체력이 우선이다. 영양과 정성을 어느 정도 들이되 내가 너무 지치지 않을 정도로만 신경 쓰고 있다. 그것만으로 난 충분히 위대한 엄마다. 새벽에 도시락 싸주는 엄마!!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전 15화 습관 탄성의 법칙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