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초반부터 아이들과 생각보다 잘 적응한 5학년 딸아이와 달리 2학년에 올라간 아들은 아직 어려서인지 아이들과 어떻게 어울려야 할 지조차 잘 몰랐다. 처음 겪어보는 낯선 외국인들의 문화도 큰 아이는 신선한 문화충격으로 즐긴 것과 달리 둘째는 마냥 어색해하기만 했다. 오히려 어려서 훨씬 잘 적응할 거라는 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이건 나이의 문제가 아니고 분명 성향의 차이였다.
둘째는 한국에서 공립학교 1학년을 마치고 싱가포르에 왔다. 나이에 맞지 않게 교실에서도 잘 까불지 않고 진중하게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해 내는 과묵한 모범생 편에 속하는 타입이었다. 가뜩이나 말도 잘 안 하는 녀석이 영어를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알아듣느다 해도 적재적소에 뭐라 말해야 할지도 몰라서 꽤나 답답했을 거다. 그야말로 반 벙어리신세였을게 안 봐도 뻔하다.
가끔 점심시간에 누나가 운동장에서 동생을 목격한 바에 의하면 삼삼오오 모여있는 아이들과 혼자 떨어져 뭘 해야 할지 모른 채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며... 아이고. 안타깝지만 이겨내야지 어쩌겠는가.
영어가 안 되는 아이라도 아무 말이나 쉽게 던지고 활달한 장난기 있는 아이였다면 외국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게 훨씬 수월했을지도 모르겠다. 말수도 없는 데다 그렇다고 먼저 적극적으로 놀자고 다가가는 타입도 아니어서 아마 더 힘들었을게다. 물론 같이 어울려 노는 것도 좋아했지만 혼자 있는 시간도 즐겼던 아이였고, 그나마 학교에서 돌아올 때 표정이 밝아서 다행이면 다행이랄까.
급한 대로 친구에게 다가가는 몇 가지 영어 표현을 알려주기도 했지만 부모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아이가 자연스럽게 친구를 만들기를 원했다.
본인도 나름 고충이 있었겠지만 나는 전혀 슬프거나 불쌍하다는 내색 없이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그게 당연한 거라고 괜찮다고 이해하고 다독여줬다. 엄마도 역시 강해져야 한다.
그랬던 둘째가 누나보다도 먼저 플레이 데이트(친구가 집에 초대하면 부모 허락 하에 3~6시간 정도 놀다 오는 문화, 한 마디로 친구 집에 놀러 가는 것) 신청을 받아왔다!! 거짓말처럼 입학한 지 딱 6개월째 되던 날이었다.
아들은 상기된 목소리로 "S가 나보고 자기 집에서 플레이 데이트하재! 엄마 번호 알려줬으니 연락 올 거야."
나도 놀라서 반신반의했는데, 정말 다음날 S의 엄마가 나의 번호로 연락을 보내왔다. 다른 친구 없이 우리 아이 단독으로 초대되어 무려 5시간 정도 놀고 왔다. (물론 픽드랍은 엄마가 직접 해야 하는 게 보통)
우선 집의 형태부터 다른 2층 단독주택에 사는 그 호주 친구 집에서 커다란 애완견과도 놀고, 트램펄린, 수영 , 게임 그리고 피자로 저녁까지 먹고 나름 외국 문화를 몸소 체험하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왔다.
그렇게 한 번 플레이 데이트의 물꼬를 트자 다른 아이들의 초대도 서서히 이어졌다. 그렇게 서로 번갈아가면서 초대를 주고받으며 알차게 노는 시간을 보내며 아이는 서서히 적응해 나갔다.
역시 아이들은 놀면서 친해진다는 소리가 진리인가 보다. 1년 반이 지난 지금은 언제 그런 걱정을 한 적이나 있었냐는 듯 반 친구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잘 지내고 제법 인기도 많은 모양이다.
우리 아이의 첫 플레이 데이트 주자였던 친구 S는 아쉽게 지난해 말 호주도 돌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를 콕 집어 무려 '우정의 표시'로 그가 키우던 햄스터를 주고 싶다고 하여 귀하게(?) 받아 키우기도 했다.(지금은 수명을 다해 하늘나라에 갔지만...)
아직도 가끔 생각나는 은혜로운 친구 S야, 우리 아들의 첫 플레이 데이트 상대가 되어 주어 너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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