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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 Oct 29. 2020

나는 나를 사랑한다.


2019년 12월 8일     


늘어지게 자고 먹고 계획을 뒷전으로 이러다보면 뭔가 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찾아오겠지. 제발 이 슬럼프가 빨리 지나가기를. 나는 나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이 모든 건 금방, 빠르게 지나갈 거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지금의 상황은 나를 사랑하라고 주어진 상황이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2019년 12월 16일     


산티아고에서 별 한 것도 없이 십여일 동안 지내고 있다. 여행도 운동처럼 게으름을 이겨내고 움직여야 하는 걸까. 점점 귀찮아지고 매일 피곤함, 무기력과 싸워야한다. 그런데 이 귀찮음인지 가라앉기만 하는 이 기분이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내일이면 마지막이다. 마지막 밤, 장기여행이 쉽지만은 않은 거구나. 방랑자같은 삶을 충분히 살아와서 그런지 이곳에서 까지 옮겨다니는 삶이 사실 크게 새롭거나 행복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어떻게 해야할지 나는 정말 아직도 모르겠는 걸. 그냥 여행을 포기할까 싶다가도 그건 아니다 싶다. 이루고 싶은 게 많은데 어째야 하는 걸까. 고민이 너무 많다.         

 

2020년 1월 17-24일     


산안드레스 아일랜드. 음식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거 빼면 아주 좋은 여행을 하고 있다. 나는 소화를 잘 못하는 편이다. 장이 예민한 편인 거 같다. 아무튼 내 소화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걸 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먹고 싶은 건 늘 넘쳐나고 그 유혹을 잘 이기지 못한다. 공항에서 버거킹을 본 순간 배도 안 고픈데 그냥 사먹어버렸다.      


산 안드레스. 나에게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술값이 싼 거 빼면 크게 매력적이 걸 모르겠는 섬이었다. 날씨가 하도 지랄맞아서 난 그곳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그곳에서 마주한 인연들도 크게 기억에 남지 않는다. 분명 좋은 시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오래 남지가 않는다. 이게 내가 여행할 떄 남들 다 하는 액티비티 혹은 명소에 질린 이유다. 그 풍경이 아름다워 보였다면 아마도 함께 한 사람과의 시간이 매우 소중하게 여겨서 그렇게 느껴졌던 거일거다. 이제 알겠다.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조금은 알겠다. 그런데 여전히 쉽지는 않다. 고민하고 갈망하고 흔들리고 그런데 이제는 덜 그렇다. 그 전보다는 덜하다. 간단하게 가볍게 생각하고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일기장에 매일 '나는 나를 사랑한다'고 적으려 한다. 나를 정말 사랑할거다. 물론 여전히 어렵기는 하지만 매일 이렇게 나에게 말해주면 분명 나는 사랑스러워질거다. 첫날은 아무것도 못하고 꼼짝 누워만 있었다. 그동안 먹은 것과 햄버거가 합쳐져 급체로 이어졌다. 토를 좀 하고 나니 나은 거 같아 다른 숙소를 예약하러 나왔다. 기존 숙소가 더 좋았지만 자리가 없었던 탓에 선택권이 없었다. 다음날 어이없게 자리가 생기긴 했지만. 이미 예약한 두 번째 숙소는 환불도 안되고 융통성 없었던 덕에 두 번째로 예약한 숙소에서 머물러야 했다. 덕분에 즐거운 시간도 보냈지만 그 전 숙소에서 지독하게 혼자이고 외로워도 됐을 시간이었을 거 같다. 돌이켜 봤을 때 별로 남는 추억이 없기에.. 그래도 섬을 떠나기 이틀 전 볼리비아 라파즈에서 만났던 젊은 부부를 우연처럼 또 만났다. 친절한 사람들이라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다시 보니 더 좋았다. 나도 나중에 그들처럼 여행할 수 있을까. 좋은 사람을 만나서 그렇게. 아마도 사는 동안 함께 여행을 많이 했던 부부들이라면 늙어서도 대화할 게 참 많을 거 같다. 근심걱정 할 시간보다 추억할 게 많을테니. 하루는 골프카를 빌려 섬 전체를 돌아보고 하루는 다른 섬을 다녀왔지만 별 큰 감흥은 없었다. 그저 마지막 카르타헤나로 돌아가면 더없이 후회없는 하루를 보내겠다고 스스로 약속했을 뿐.


작은 일에도 몰려오는 우울감과 무기력감에 대해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감조차 서지 않았다. 그런데 세상은 그런 내게 큰 결과만을 바라는 느낌이었다. 나는 정말 힘들었다.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의 우울감은 초등학생 고학년부터 지속되었으나 외면한 채 살아왔고 그 결과 이십 대 중반이 넘어서서도 스스로를 나약한 사람이라 여겼다. 이런 상태가 악화되어 감당이 되지 않는 선에 이르렀을 때야 그나마 가까운 고모에게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고모는 정신과에 가보자고 말했다. 그리고 그제야 우울증을 진단 받았던 거다.     


어쩌면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 대다수는 ‘내가 유난일까’라는 생각에 정신과로 발걸음을 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국은 우울증의 지수에 비해 정신과를 찾는 비율이 낮다고 한다. 우리는 어쩌면 사회의 시선에 못 이겨 정신과마저 찾지 못하는 사람들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스스로를 다독여주기로 했다. 스스로를 사랑하기로 했다. 나를 위해 살자고 다짐했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살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이왕 사는 거 잘 살아보자고 다짐했다.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믿고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나의 주변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나 자신이 인간이라는 존재로 살아가면서 행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보며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렵지 않을 거다.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거다. 아마도 기나긴 시간 동안 세상을 방황하던 나 자신이 그리고 그 길이 내게 가르쳐 준 건 정의내릴 수 없는 사랑이 아닐까 생각한다.      


스스로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을 때까지는 나는 나약한 사람인줄만 알았다. 그래서 힘들었다. 작은 일에도 몰려오는 우울감과 무기력감에 대해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감조차 서지 않았다. 그런데 세상은 그런 내게 큰 결과만을 바라는 느낌이었다. 나는 정말 힘들었다.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의 우울감은 초등학생 고학년부터 지속되었으나 외면한 채 살아왔고 그 결과 이십 대 중반이 넘어서서도 스스로를 나약한 사람이라 여겼다. 이런 상태가 악화되어 감당이 되지 않는 선에 이르렀을 때야 그나마 가까운 고모에게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고모는 정신과에 가보자고 말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우울증을 진단 받았던 거다.     


정신과를 방문하기 전, 우울증에 관련된 많은 다큐멘터리와 서적을 찾아보았다. 혹시 내가 유난인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말이다. 하지만 모든 다큐멘터리에서 말하는 우울증의 증상과 나의 증상은 크게 다른 것들이 없었고 내가 유난을 떠는 것 역시 아니라는 것을 인식한 후에야 비로소 정신과로 향할 수 있었다. 어쩌면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 대다수는 내가 유난일까라는 생각에 정신과로 발걸음을 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쩌면 사회의 시선에 못 이겨 정신과 마저 찾지 못하는 사람들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물론 아직도 가끔은 뜬금없이 울컥하여 우는 날과 무기력, 불면증에 시달리는 날이 종종 있지만 그래도 병을 인식한 상태에서의 이런 과정은 지극히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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