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함: 말할 수 없는무언가1
SNS에서 피드를 올리다 2020년의 기부의 손길이 많이 줄었다는 이야기들을 보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거리의 자영업자들이 폐업을 하거나 어쩔 수 없이 대부업체에 손길을 벌려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든 것이 올해가 아니었던가? 이렇게 다른 이들에게 마음을 나누기엔 2020년은 황폐함이 넘쳐나는 시기였으니 말이다. 한 편으로는 아, 세상이 이렇게 어려운가? 작은 것도 나누기 어려운가 탄식을 하지만, 그래도 그 어려움이 불가항력적인 것이기에 마음이 숙연 해지 진다.
그러다가도 아직까지는 돌아다닐 수 있는 백화점 같은 데서 시각장애인의 눈이 되는 안내견에 대한 출입에 대해 명시하고 환영한다는 팻말을 보면 세상이 참 약자 친화적인 사회로 변하게 되었다고 느끼기도 한다.
나는 그런 상황이 참 오묘했다. 요즘은 뉴스에 불합리한 상황이 올라오면 소문은 전국으로 급속도로 퍼지고 그것에 대해 개선하기를 요구하고, 기업과 사회는 적극 그러한 요구를 받아들여 예전에는 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이뤄졌던 것이 일주일 만에 개선되기도 한다. 10년 전만 해도 이런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고, 작은 변화 하나를 요구하는 것도 기업의 편의와 기업을 이용하는 이용객 혹은 클라이언트들의 입장에서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사회 전체의 윤리와 도덕을 중시해야지만 그 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에는 정당한 권리를 요구함에도 그것이 바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들도 많다. 그러다 보니 더욱 오묘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뉴스를 보다 보면 이 추운 겨울에도 천막에서 농성하며 법의 통과를 요구하는 이들이 있고, 그 법이 통과되더라도 처음 요구하는 것에 비해서 한참 후퇴한 내용으로 통과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마냥 세상이 좋아졌다고 이야기하기에는 무언가 꺼림칙하다.
이러한 오묘한 상황을 깊게 생각해보면 변화가 이뤄지는 부분은 개인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들에서 먼저 일어나는 것 같다. 쉽게 접하는 부분들에서 기업들도 오히려 더 쉽게 비판을 수용하고 사과한다. 그리고 천막을 치고 농성하는 영역은 변화가 느리고 쉽게 바뀌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그 이유는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하고 체감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더 세상은 어둡기 만하고 춥다.
그럼에도 인정해야 하는 건 세상은 좋아졌고, 더 수용적으로 변한 건 분명하다는 점이다. 한 줄 서기 혹은 순서 지키기 같은 것도 우리나라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사람들이 보고 듣는 것이 많아지면서 시민들의 에티켓은 이제는 사회에서 당연한 것이 되었고, 중국에서 일어난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모습들을 보면서 기겁을 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안타까움이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해결되지 못한 부조리가 많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금방 잊어버리거나 그런 문제를 우리가 왜 신경 써야 하는 거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은 세상이 따뜻해지기를 바랄 것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어려운 상황인지 몰라서 목소리를 내거나 힘을 보태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따뜻한 소식을 들으면 “아직 세상은 따뜻하네”라고 이야기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요즘 그런 고민을 하게 된다. “정말로 세상은 따뜻해졌을까?” 이 오묘하게 따뜻함과 차가움이 공존하는 사회를 보고 있으면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든다. 그래도 나는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으려고 한다. 분명 따뜻해진 부분이 있으니깐. 그런 작은 변화에 감사함을 표해야지 다른 부분에서도 그런 마음이 퍼져나가면서 더 따뜻한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분명 세상은 그래도 0.1도라도 따뜻하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는다.
2020.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