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 우리의 필연적 숙명

아련함: 말할 수 없는무언가1

by 오래된 독서가


‘뚜벅이’라는 말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보행자’라는 이름을 대체하고 있다. 자가용 없는 사람들의 슬픈 자화상이라고 해야 할까? 나도 그런 뚜벅이 중의 하나다.


생각해보면 굉장히 많이 걸었던 것 같다. 20대 초반에는 친한 형들과 함께 종종 걸었고, 교회를 끝나고 혼자 새벽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갔다. 걸으면서 발이 아파 힘들었던 적도 있었지만, 좋았던 적이 더 많았다. 걸으면서 혼자만의 생각들을 정리하거나, 정적 속에서 라디오 대신 듣던 팟캐스트가 주던 운치를 잊을 수가 없다.


여행을 다니면서 인문학 이야기를 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현했던 유명 건축가는 우리나라는 너무 운전자 중심으로 도시가 설계되어 있다고 했다. 보행자들이 안전하고 편하게 도보로 갈 수 있는 도시로 바뀌어야 한다 말했다. 우리가 사는 도시는 한 건물에 상업시설들이 밀집해 있다 보니, 특정 지역만 집값이 올라가는 게 바로 그런 이유라고 했다. 만약에 걸을 수 있는 거리를 조성한다면 자연스럽게 거리에 다양한 상점들이 보이게 되고, 집값이 집중화되는 현상도 줄어들 거라고 했다.


그의 그런 주장은 내게 무척이나 신선했다. 한 번도 걷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걷는 것을 통해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구나!” 새로운 눈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걷는 것을 좋아한다. 요즘도 자주 걷는 것을 SNS에 인증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나 그건 공원 같이 걷기 좋은 한정된 곳만의 이야기란 생각이 든다.


내가 20대 초반에 걸을 때의 기억이 좋긴 했지만, 일반 시내를 걸어서 지나가는 것은 참 불편한 일이었다. 조용한 거리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오토바이가 지나가거나, 취객 옆을 지나가야 할 때는 뚜벅뚜벅 걷던 운치도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특정 공간에서만 걷는다. 걷기 좋은 등산 로거나, 공원 같은 곳에서 말이다. 확실히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 그 건축가의 말을 귀담아 새겨들을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요즘도 나는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걷는다. 뚜벅이로 걷다 보면 차가 있을 때는 가기 어려운 공간에도 쉽게 갈 수 있고, 건강을 유지한다는 느낌도 가질 수 있다. 게다가 감정을 달래는 가상의 공간도 마련해준다. 여러모로 걷는 것은 삶에 많은 윤택을 가져온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종종 걷게 되지 않을까?


2020. 0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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