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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형 Jan 18. 2024

[사업단상]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에 대하여

강한 리더십을 가지지 못한 대표는 과연 어떻게 조직을 이끌어야 할까?

'리더십' 


평생 자라오면서 수도 없이 들었던. 삶을 살면서 인간의 덕목 중 마치 으뜸인 것 같이 추앙받는 능력.


조직을 이끌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능력.


사업을 하기 전. 내가 어떠한 조직에서 리더를 해본 적이 있나를 돌이켜 본다면. 학창 시절 반장과 대학시절 조장. 공모전 팀장. 정도였을까.


초등학생 시절. 야인시대가 유행하던 시기에도. 나는 친구들과 역할놀이를 할 때 김두한이나 시라소니 같은 대장보다는 당시에 김두한의 오른팔 격이었던 문영철과 같은 역할을 맡았었고.


삼국지 게임을 하더라도 유비, 조조, 손권과 같은 대장보다는 조운이나 장료 같은 의리 있는 장수들을 좋아했다.


다만, 고등학교를 올라왔을 때쯤. 그래도 간간히 맡던 반장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 느낀 것은. 조직 생활에서 나의 장점은 조직 안에서 나눠지는 파벌에 관계없이 모든 그룹에 조금씩은 다 친하게 걸쳐져 있어서 조직 전체를 보는 눈이 있다는 점 그리고 서로 다른 그룹 간을 매개하거나 모든 그룹을 다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어느 조직에서도 나를 모르는 사람도 없었고. 모든 사람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낸다는 점이었다.


또 다른 점은 리더에도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앞 장을 서는 이끄는 리더가 있다면. 나는 구성원들 각자 하나하나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보조하고 케어를 하는 '부관' 같은 스타일의 리더라는 점을 깨달았다.


사실 부관 같은 스타일의 리더는 그다지 통상적인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리더는 카리스마가 있고 사람을 이끄는 매력 같은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부관 스타일의 리더는 가끔 도전을 받기도 하고. 사람을 강하게 몰아세우거나하는 그런 마초 같은 행동은 조금 어렵다.


나의 리더십은 어디서 왔을까라는 생각을 했을 때. 유전적인 이유와 후천적인 이유를 추측하였는데. 유전적인 이유는 아무래도 할아버지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싶은데.


동네 대소사를 맡아 새마을 지도자를 오랫동안 하셨고, 대우 연수원 근무시절. 임금체불 때문에 힘들어하던 상황에서 총대를 메고 대우 김우중 회장 사무실까지 쫓아갔던 일화만 보아도 할아버지의 불 같은 성격과 추진력이 아마 집안 내력으로 이어진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후천적인 이유는 책으로 읽게 된 내 기억 속에 가장 처음으로 기록된 리더십에 대한 내용 때문이라 추측한다.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선수의 열렬한 팬인 나는 홍명보 선수의 자서전 '영원한 리베로'를 정말 수십 번도 더 읽었는데. 그중 월드컵 기간별 있었던 일에 대해 회상하는 부분이 있다.


그중 98 월드컵 출전 당시 국가대표 팀의 상황을 기술한 부분이 있었는데. 당시 차범근 감독의 리더십에 대해 이렇게 쓰여있었다. (책을 보고 쓰는 건 아니어서 뉘앙스만 표현하자면)


"유럽에서 활동했던 차범근 감독님은 국가대표 팀을 유럽 팀처럼 운영하려고 하셨다. 마치 후배 선수들과 격 없이 친구처럼 지내는 그런 리더십이었다"


해당 페이지에는 이 글의 상단 사진처럼 선수들과 어깨동무하며 활짝 웃는 차범근 감독님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사실 초등학생 밖에 안된 나였지만. 선수들과 격 없이 지내는 차범근 감독의 리더십은 내 생각에 굉장히 멋있고 강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책을 보기 전에 이미 끝난 98년 월드컵을 실제로 보았던 사람으로서. 참담한 경기결과. 그리고 지금도 어렵고 낯선 감독 경질에 대한 뉴스가 아른 거리면서. 차범근의 리더십과 결과가 오버랩이 됐다.


왜. 차범근의 멋진 리더십이. 실패했을까?


물론 경기의 참패가 차범근의 리더십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그 당시 우리나라의 사회적 정서나 조직문화를 보았을 때. 


차범근의 리더십이 나빴다기보다는 너무 시대를 앞서 간 리더십이었지 않나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조직 문화에는 아직 입히기에 잘 맞지 않는 옷이었던 것이다.


핏하진 않지만 히딩크 감독이 우리나라에 그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4백 전술(수비수를 4명 쓰는 포메이션)을 활용하려고 했지만. 그 당시 홍명보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수비수들이 4백 전술에 대해 어려워했고. 결국에는 기존에 사용하던 3백으로 선회한 것과 같달까?


아무리 좋은 리더십과 조직문화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 있는 구성원들이 따라와 주기 힘들다면, 그건 성공하기 어렵다고 본다.


사람은 가축처럼 길들일 수 있는 존재인가?

최소한의 사고가 가능한 지능을 가진 생명체라면 본인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상대의 강압이나 폭력에 의한 일방적인 복종이 아니라면 상대를 봐가면서 속된 말로 '개긴다'


강경한 리더십이든 부드러운 리더십이든 결론적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조직 안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것이 결국에는 중요한 묘라고 생각한다.


9년간 사업을 하면서 부관 같은 나의 리더십은 참 많은 너울과 파도를 만났던 것 같다.

가족 같은 회사 같은 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항상 직원들을 인간 대 인간으로서 바라보기 위해 애썼고. 그 과정에 나를 사장이 아닌 너무 인간적으로 보는 직원들 덕분(?)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아직도 가슴에 사무치는 기억은 편입으로 들어간 경영대학에서 공부를 할 때쯤. 직원과 트러블이 나서 면담을 하는데. 


"경영학과 가서 경영 배울 시간에 리더십이나 더 키우십시오"라는 말에


'대체 지금까지 이 직원은 나를 뭘로 생각한 걸까'라는 생각과 동시에

'정말 내가 리더십이 없거나 혹은 나의 유함에 문제가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직원은 결과적으로 퇴사했다.)


다시 돌아와서 리더십이라는 건 무엇일까?

상대가 나에게 꼼짝 못 하도록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상대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일까?


정답이 있겠냐만...

좋은 리더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잘 맞는 직원이 와주는 것이


아마 리더십의 완성이지 않을까 싶다.


오늘도 우리 회사에 남아있는 잘 맞는 직원들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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