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Sep 24. 2021

여행이 끝난 후에 나는

어쩌다 보니 서른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여행을 다녀왔다. 성인이 되면 배낭을 메고 자유롭게 세계를 여행하고 싶었다. 여행을 어린 날의 꿈으로만 남겨두지 않기 위해 2017년 7월에 한국을 떠나 2018년 4월에 돌아왔다.






 나는 사소한 선택을 할 때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점심 메뉴를 고른다거나 옷을 살 때 비교하고 고르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런데 오히려 많이 고민하고 결정해야 할 일은 별 고민 없이 선택한다. 세계 여행이 그랬다. 모아둔 돈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여행할 준비가 돼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여행을 떠나겠다 마음먹었고 그 선택을 실행에 옮겼다. 혼자서 해외를 여행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고 무서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첫 월급 100만 원으로 시작해 120만 원에서 끝난 내 첫 직장, 나는 2년 동안 모은 700만 원을 들고 여행을 떠났다. 돈이 다 떨어지면 한국에 돌아온다는 생각으로 배낭을 쌌다.




조지아를 여행하고 있을 때




 6개월을 생각했던 여행은 9개월을 채우고 나서야 끝이 났다. 여행 후의 나는 전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조금은 더 단단한 사람이 돼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여행을 떠났다는 그 자체만으로 ‘나’라는 사람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많은 것을 경험하는 것과 그 경험을 통해 내적 성숙을 이룬다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여행 후에도 나는 방황을 거듭했고 안정적인 직장도 없이 시간을 보냈다. 어린 날의 나는 돈 주고도 사지 못할 경험이라며 여행 후의 나를 위로했다. 그렇지만 여행 후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냉정한 현실이었다. 27살의 나는 여행 후에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며 살았다.



 여행 후 3개월을 집에서 놀다가 여행 중에 만났던 언니의 지인이 소개해준 계약직 일자리에 취직을 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꿈꾸던 서울 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새로운 일을 배우고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일하면서 나는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늘 회피하려고 했던 본성이 내 발목을 잡았다. 흥미 있는 분야의 일을 배우면서도 나의 실력을 쌓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지 않았고 그래서 어중간한 상태에 머물렀다. 스타트업이라 부르던 나의 여행 후 첫 직장은 지자체 사업을 연장하지 못해 망했다. 일 년을 채우지 못한 채 계약기간이 끝났다. 그렇게 퇴사를 했고 단기 아르바이트를 했다. 실업 급여를 받으며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을 때 국비지원 취업 연계 활동을 시작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취업을 위해 한 가지 분야에 대한 공부를 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아 편안함을 추구하며 돈을 벌자는 마음이 앞섰다.



 그저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충동적으로 아빠가 추천한 일자리에서 일을 시작했다. 급하게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소위 다단계라 불리는 화장품 회사 연수원에 취직했다. 화장품을 다단계 방식으로 판매하는 사원들이 연수원에 교육을 받으러 오면 관리하고 안내하는 직원으로 근무를 했다. 호텔 프런트 일과 비슷하면서 다른 업무였다. 난생처음 하는 교대 업무였는데 생각해보니 나는 아르바이트를 제외하면 늘 9 to 6 근무를 했다. 내가 이전에 일했던 직장들과 마찬가지로 일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근무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서 힘든 부분이 있었다. 회사가 시골에 위치하고 있어서 회사 근처에 집이 없으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새로운 직장의 작은 세계 속에서 점차 익숙함을 느끼고 있던 시기에 코로나19가 세상을 덮쳤다.



 최대한 버텼는데 계속해서 나빠지는 회사 사정으로 인해 퇴사를 당했다. 나는 입사할  정규직이 아니라 파견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정규직으로 일을 시작해보기도 전에 권고사직을 받았다. 일하면서 돈은 조금 모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본가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나는 코로나 공포증이 꽤나 심했다. 그래서 나에게는 안전한 곳이라 생각했던 본가에서 지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지금에야 말하지만 역시 돈이 많이 들어도 혼자 사는   편하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했고 성인이  후에는 계속 자취를 했다. 그래서 집에서 장기간 거주하는  꽤나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이었는데 그건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집에서 눈치를 보며 지내다 보니  자신과의 관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이는 자연스레 연인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당시에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서야 공부 핑계로 자취를 시작했다. 공부는 집에서 하는 게 아니다. 더욱이 주변에 도서관 조차 없는 시골이라면, 밖에 나가면 할 일이 산더미인 시골은 집에서 가만히 공부하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그렇게 나는 백수가 되어 취업준비생, 학생의 삶을 살게 됐다. 퇴사 후 2020년 5월부터 지금까지 취직을 하지 않은 채로 살고 있다. 공인중개사 공부를 시작했고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사이버대학에 입학했다. 이 모든 것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시작한 공부다. 올해까지 공부하면 사이버대학을 졸업하고, 공인중개사 2차 시험에 합격하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방황한 세월이 길어 한 가지에 정착하지 못하고 늘 떠도는 생활을 했다. 일자리도 마찬가지, 여행 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2년을 근무한 게 가장 긴 사회생활이다. 이마저도 4대 보험이 되지 않는 일자리였고 미래가 보이지 않아 차라리 여행을 떠나자는 생각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에서 돌아와 어쩌다 보니 서른 살이 됐다. 여행 후에 모아둔 돈은 생활비로 쓰고, 여행할 때 쓰고, 데이트할 때 쓰고, 필요한 걸 사고, 덕질하느라 다 써버렸다. 22살에 만나기 시작했던 연인과 30살이 되던 해에 헤어졌다. 2021년, 서른이 된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가장 소중한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 내가 아닌 다른 것에 의지해서 나의 삶을 살아가려 했다. 그렇게나 부르짖었던 독립과 자유였는데 결국 내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은 고작 얼마 되지 않는 나의 편협한 생각이었다. 아까운 나의 시간을 미련 때문에 그냥 흘려보냈고 그러다 정말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달리기를 시작했다. 무기력한 날과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상을 반복했다. 그래도 생각이 많아지면 달리기를 했고 밖으로 나가 걸었다. 그리고 천천히 나의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아빠는 나에게 벌어 놓은 돈도 없고 능력도 없으면서 늘 내 멋대로 하려고 한다 말했다. 지금까지 허송세월 했으면 됐지 왜 자꾸 어렵게 가려하냐고 말이다. 맞다, 나는 지금까지 쥐뿔도 없으면서 현실 직시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저 꿈만 꾸고 생각만 많은 이상주의자. 성공의 잣대로 보면 나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 그래도 서른 살의 내가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싶지 않다. 내 능력으로 사회적인 성공을 이룬 적은 없지만 시간이 지나 나에게 남은 것은 실패가 아니라 경험이다. 내가 경험한 것들은 내게 피가 되고 살이 됐다. 물론 아주 늦게, 그것도 너무나 뼈 아픈 경험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 가치관이라고 생각하던 것들을 다시 정립하고 또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생각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비우는 것은 아직도 어려운 일이지만 부딪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내 것이 아닌 것에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 생각하며 살았다. 과정이 힘들어도 내가 얻은 것의 힘은 세다. 서른 살, 나는 이제 시작이다. 나이가 들고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나는 현실을 살면서 꿈을 꾸고 싶다. 내가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과정이 인생이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아마 평생의 숙제일 것이다.



 여행이 끝난 후에 나는 아직도 방황하고 있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의 존재 이유는 내가 정하기 나름이다. 오늘을 성실하게 보내고 내일을 맞이하는 것,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길이 보이지 않아도 오늘을 성실하게 쌓아 가다 보면 그것만으로 괜찮은 인생이 될 것이다. 나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 잘 써야 한다는 생각의 부담을 덜어내고 꾸준히 쓰는 게 나의 목표다. 전업 작가가 되지 않더라도 글은 쓸 수 있다. 돈을 벌기 위한 일,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 먹고살기 위한 일의 가치를 나는 서른이 돼서야 깨달았다. 여행이 끝난 후에 나는 어쩌다 보니 서른이 됐고 언젠가 다시 여행을 떠나기 위해 오늘을 살고 있다.

이전 07화 75달러, 부끄러운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