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도키아에서 열기구 투어를 했을 때
터키 여행을 하고 있었을 때 있었던 일이다. 터키 여행을 하게 되면 꼭 가고 싶었던 곳이 카파도키아였다. 가지안테프에서 카파도키아로 가는 야간 버스를 탔다. 새벽에 도착할 예정이라 버스에서 눈을 붙였다. 잠을 자다가 일어났는데 주변이 온통 깜깜했지만 가로등 사이로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세상이 맞나 싶을 정도의 낯선 모습에 나는 조금 더 설렜다.
아직 동이 트기도 전인 이른 새벽, 나는 카파도키아에 도착했다. 예약해 둔 숙소가 있었지만 이른 시간이라 버스정류장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숙소에 가기로 했다. 배낭을 메고 앉을 곳을 찾고 있는데 불이 켜진 여행사에서 한 아저씨가 나왔다. 해가 뜰 때까지 안에서 기다리라고 하면서 아저씨는 차를 한 잔 내주었다.
친절한 아저씨에게 마음이 풀렸는지 아저씨가 벌룬 투어 이야기를 하자 나는 관심을 보이며 오늘 열기구를 탈 수 있는지 물었다. 아저씨는 가능하다고 했다. 열기구 투어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내일도 뜰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며 투어를 갈 거라면 오늘 가라고 했다. 나는 처음에 비용이 비싸서 열기구 투어를 하지 않고 그냥 열기구 뜨는 시간에 맞춰서 구경만 하자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금 바로 예약할 수 있는지 물었고 주인아저씨는 원하는 금액을 말해보라고 했다.
나는 터키 돈으로 200리라 정도의 가격을 불렀고 아저씨는 당연히 안된다고 말했다. 당시에 나는 가난한 배낭여행자였기 때문에 약 15만 원 정도의 열기구의 가격은 나에게 큰 부담이 됐다. 그래서 최대한 가격을 깎으며 80달러 정도가 아니면 열기구를 탈 수 없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아저씨가 최대한 깎아주겠다며 긴 협상을 마친 끝에 75달러를 카드 결제하고 아저씨 몫의 수수료로 20리라를 지불했다.
꽤나 싼 금액으로 당일 벌룬 투어를 예약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아저씨는 여러 곳에 전화를 하더니 한 투어 회사에 자리가 있다며 곧 나를 픽업하러 온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투어 회사에 배낭을 맡겨두고 픽업 차량에 몸을 실었다.
차를 타고 얼마나 달렸을까 거대한 바위 사이의 벌판에 도착해 열기구를 띄우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처음 타보는 열기구였다. 처음이었기 때문일까 열기구를 타고 해발 1,000m까지 올라가는데 실감이 나지 않았다. 눈앞에는 비현실적인 풍경이 있었고 주변에는 많은 열기구들이 떠 있었다.
즐겁게 투어를 마치고 버스터미널에 돌아왔다. 나는 투어 회사에 놓고 갔던 배낭을 찾으러 갔다. 이른 새벽 나에게 투어 티켓을 판매했던 아저씨가 있었다. 아저씨 덕분에 열기구 투어를 잘하고 왔다며 인사를 전했다. 나는 배낭을 메고 예약한 숙소로 향했고 이틀 동안 카파도키아에 머물렀다.
카파도키아의 첫 숙소에서 베드버그를 만나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다음 날에 다른 숙소로 옮겼다. 첫날에 열기구 투어를 했으니 다른 투어는 하지 않고 그냥 카파도키아를 돌아다니며 구경만 하기로 했다. 지금 돌아보면 신비한 고대 동굴 도시인 카파도키아 곳곳을 둘러보지 못한 게 아쉽지만 그 당시에는 빨리 카파도키아를 떠나고 싶었다. 나는 카파도키아를 떠나 몇 곳의 도시를 여행했고 그렇게 터키를 떠나는 날이 되었다.
터키 다음 여행지는 스페인이었다. 가을이 지나기 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어서 일정에 맞추어 비행기 티켓을 예약해둔 상태였다. 그렇게 터키를 떠나는 날이 가까워졌을 때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내가 카파도키아에서 열기구 투어를 할 때 했던 카드결제가 잘못됐다는 연락이었다. 사실 내 연락처를 알려준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연락했을까 의심이 들어 처음에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티켓을 구매했던 아저씨가 아니라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내 아이디를 어떻게 알았는지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 나에게 어떻게 연락했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나는 터키에서 유심을 구입하지 않아서 번호도 없었는데 말이다.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던 사람이 내 이름과 내가 구매한 정보 등에 대해 알고 있어서 사기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잘못했다는 내용의 메시지로 계속 연락이 왔다. 순간 기분이 나빠져서 나는 그 당시에 지불할 금액을 모두 결제했고 혹시나 결제가 잘못된 거라면 실수가 있었다고 먼저 말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답장을 보냈다. 나는 굳이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데 다시 결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나는 터키 여행을 마쳐가는 시점이었고 나에게 연락을 준 사람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결제를 할 마음도 없었다. 그때는 그랬다. 그렇게 몇 번 연락을 주고받다가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았고 나는 터키를 떠났다.
당시에 나는 카드 결제를 할 때 체크카드를 사용하고 있었다. 해외에서 체크카드로 결제를 하면 결제 대금만큼의 금액은 제외한 잔액에서 출금할 수 있었다. 며칠이 지난 뒤에 환전된 금액으로 카드 대금이 빠져나갔다. 연락을 받고 찜찜해서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결제를 할 때 내가 실수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려니 넘겼다. 그리고 얼마 후에 카드 결제 대금이 찍혔는데 75달러가 아니라 7.5달러였나 0.75달러였나 정말 엄청나게 적은 금액이 결제가 됐다는 걸 알게 됐다.
결제된 금액을 보고 나서야 이른 새벽 나에게 친절하게 차를 마시라고 해줬던 여행사 아저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순간 나는 부끄러워졌다. 아저씨가 결제할 때 잘못한 걸까 생각하며 혹시나 아저씨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을까 자꾸만 이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메시지를 받았을 때 제대로 확인해보고 결제를 할 수 있게 다른 방법을 알아봤어야 했나 그런 생각부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제가 잘못돼서 돈을 거의 지불하지 않고 열기구 투어를 했던 게 여행 중의 해프닝이 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최대한 투어 가격을 깎던 내 모습과 투어 회사 아저씨의 친절함이 함께 떠올랐기 때문이다.
평소에 잊고 살지만 여행을 하면서 부끄러웠던 순간을 떠올리라고 하면 이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래서 나에게 카파도키아는 그리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여행지가 아니다. 나는 아마도 이 75달러의 부끄러운 기억을 계속 간직한 채 살아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