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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Sep 03. 2021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만난 사람들 2


 나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이르쿠츠크, 그리고 이르쿠츠크에서 모스크바로 이동할 때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며 만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바로 내 앞자리였던 한국인 언니였다. 언니의 목적지도 이르쿠츠크여서 우리는 이르쿠츠크까지 가는 동안 함께 기차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우리 자리는 1층이었고 2층 자리는 러시아인이 탔다. 한 명은 군인이었고 한 명은 대학생이었다. 당시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러시아 대학생과는 말이 잘 통하지 않았지만 영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친해졌다. 우리는 같이 게임도 하고 서로 러시아어도 배우면서 기차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금방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나는 당시에 '달무티'라는 보드게임을 가져갔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는 시간이 길다 보니 사람들과 만나서 시간을 보낼 때 카드 게임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함께 게임은 할 수 있으니까. 같은 자리에 앉은 친구들과 함께 달무티를 하며 친해졌다. 그렇게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내는데 뒷자리의 꼬마가 게임을 하는 모습이 즐거워 보였는지 관심을 보였다. 우리는 그녀를 초대했고 같이 놀며 시간을 보냈다.



 자유로운 기차의 시간, 누군가는 기타를 가져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모르는 노래였지만 그 순간 여행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이 나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여행을 떠났다는 그 자체로 나는 변화하고 있었다.






 기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익숙해지면 종종 함께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마주치기도 한다. 기차도 사람이 오고 가는 곳이라 작은 사회와 다를 바 없다. 하루는 어떤 러시아인 아저씨가 자꾸만 말을 걸었다. 친절한 러시아인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에 경계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갈수록 이상한 질문을 하며 치근덕 거리길래 그가 하는 말을 무시했던 적도 있다. 그 당시 영어로 소통하던 러시아 대학생 친구가 번역을 해줬는데 자기도 이상한 사람이라며 답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어딜 가든 이상한 사람들을 있기 마련이다. 그가 좋지 않은 마음으로 물어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굳이 말을 하지 않는 편이다. 특히나 싸한 느낌을 받는다면 대체로 그 느낌을 맞으니까 내가 느끼는 감정을 무시하지 말자.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에 처음부터 경계의 날을 세워서 불안하게 다닐 필요는 없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도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이다. 내가 마음을 열면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친해질 수 있다. 이르쿠츠크에 도착하는 날, 첫날부터 기차에서 함께했던 친구가 먼저 내렸다. 방학이라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간다는 그녀는 러시아어를 모르는 나와 언니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줬다. 그리고 그녀의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았다. 함께 기차를 타는 동안 좋았다는 말과 함께 (그녀는 동생에게 영어로 된 글을 보내 프린트해달라고 미리 부탁을 했다.) 바이칼 호수에서만 잡힌다는 물고기 '오물(omul)'과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것들, 자석까지 선물을 주고 떠났다. 함께 지낸 언니는 눈물을 글썽였고 나는 정말 감동을 받았었다. 잠깐의 인연이지만 누군가와의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생각을 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소식을 보는 그녀는 학교를 졸업하고 승무원이 되었다. 안부를 주고받지는 않지만 나는 가끔 그녀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통해 잘 살고 있구나 생각하며 그때 그녀가 보내준 따뜻한 마음을 떠올린다.





기차는 조금 더 달려서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는 동안 내 앞자리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언니는 나와 숙소가 달랐지만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녀는 멋지게 옷을 차려 입고 나에게 맛있는 저녁을 사주었다. 여행 중에 만난 인연에 감사하며 나는 언니가 잘 지내고 있길 바란다. 여행의 인연은 여행지에 남겨두기도 하고 계속해서 이어지기도 한다. 예전에는 모든 인연을 내 곁에 두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때의 소중한 기억을 추억으로 간직하는 것이고 또 언젠가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런 기억들이 있다. 살아가면서 때때로 나에게 힘을 주는 추억들 말이다. 소중한 날의 기억은 내가 힘들 때 나에게 살아갈 힘을 준다. 나를 과거의 기억에서만 살지 않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 과거의 기억을 바탕으로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니 언뜻 무슨 말인가 싶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의 뜻을 알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때로 혹은 자주 아무것도 잡히지 않은 미래를 불안해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지난 과거의 추억에 머물러 있곤 한다. '그때 참 좋았지.'라면서 말이다. 한때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내 과거의 모든 게 좋았던 것은 아닌데 자꾸만 좋았던 기억들만 떠올라서 그 추억들 속에 빠져 현재를 살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 그럼에도 과거에 살아서는 안된다. 오늘을 살되 추억할 것들이 많은 삶, 내가 꿈꾸는 삶이다. 추억을 떠올리며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면 분명 불행한 삶은 아닐 것이다.



 오늘의 나는 미래의 나를 위한 추억을 만들고 있다.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을 나의 오늘, 힘들었지만 추억으로 기억되는 순간이 있다면 그래서 인생은 살만한 것이 된다. 지금 내가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내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마음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계속해서 여행만 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제는 피하지 않으려고 한다. 도피하려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일상을 열심히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나의 바닥을 단단하게 다져야겠다. 뿌리를 단단하게 내린 나무는 가지가 부러질지언정 뿌리째로 뽑히지 않는다. 나는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고 오늘을 살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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