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보낸 2017년의 여름
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러시아 여행을 시작했다. 그저 세계에서 가장 긴 철로를 달리는 기차에 대한 막연한 로망 때문이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모스크바까지 러시아 전역을 가로지르는 이 열차는 3일을 꼬박 달려 나를 블라디보스톡에서 이르쿠츠크까지 데려다줄 것이었다. 무더운 여름날, 배낭을 메고 기차에서 먹을 음식과 물을 바리바리 챙겨서 블라디보스톡 기차역으로 향했다.
나는 예매한 티켓을 교환하고 출발시간에 맞춰 기차에 올라탔다. 내 자리는 통로와 좌석이 모두 개방된 3등석의 1층 자리였다. 내 맞은편에는 이미 사람이 앉아 있었다. 한국인처럼 보여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을 걸었는데 한국 사람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여행 중에 한국인을 만나면 꽤나 기쁘다. 한국인이 앞에 앉아서 마음이 놓인다는 말을 하며 우리는 빠르게 친해졌다. 이르쿠츠크까지 가는 동안 내 옆자리에는 한국인 언니가 함께 했고 2층 침대에는 러시아인 학생과 군인이 거쳐갔다. 기차가 출발하자 나의 설레는 마음도 기차와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나의 첫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이 시작됐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호차별로 담당 직원이 있다. 기차에 있는 직원 사무실 겸 휴게실로 찾아가서 '스타칸!'이라고 외치면 컵을 받을 수 있다. 컵과 숟가락을 같이 주는데 기차를 타는 동안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제공해 주는 컵의 수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빨리 받는 게 좋다. 내가 기차를 타던 때에는 그랬는데 요즘도 계속 제공해 주는지 모르겠다. 기차에는 온수기가 있기 때문에 차나 커피 그리고 컵라면 등 온수가 필요할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내가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맛있게 먹었던 것이 바로 도시락 라면과 매시 포테이토였다. 뜨거운 물만 받으면 간편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모두 러시아 마트 어딜 가든 쉽게 구할 수 있는 간편식이다.
기차에서 마음껏 늦잠을 자려고 해도 덜컹이는 기차의 몸짓에, 떠오르는 태양에 자연스레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기차 안은 부지런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나는 몸을 일으켜 온수기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따뜻한 물을 컵에 담아 차를 우려내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기차에서의 하루를 시작한다. 기차에서 보내는 시간은 단조롭지만 새롭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거쳐가는 도시가 많은 만큼 며칠씩 기차에 머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잠깐 동안 머무르다 빠르게 목적지로 향하는 사람도 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기차의 시간을 채웠다. 기차에서의 시간은 정해진 것 없이 자유롭게 흘러갔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이르쿠츠크까지, 그리고 이르쿠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나는 두 번이나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실었다. 가만히 기차에서 보내는 시간은 때로 고요했지만 외롭지 않았다. 러시아 사람들이 무뚝뚝하다고 누가 그랬나. 내가 만난 러시아인들은 친절하고 뭐라도 더 챙겨주려 했다. 기차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돌아보니 아쉽다.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세상을 이렇게 바꿔놓을 줄 누가 알았을까. 돌아보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기차에 몸을 싣고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아직 그려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시끌벅적하고 때로는 고요한 시간,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보낸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기차에 적응을 했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기차에서 내렸다. 며칠 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아쉬운 작별을 고하기도 했고 정말 뜻밖의 사람들을 만나 소중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나의 시간은 가끔 꺼내볼 수 있는 추억으로 남았다. 러시아에서 보낸 여름날의 소중한 시간, 모든 추억이 그렇듯 돌아갈 수 없어서 더 소중하다. 우연하게 만난 사람들과 보낸 시간은 여행의 추억으로 남았다. 여행은 정말이지 우연의 연속이다. 자유롭게 여행하기가 힘들어진 요즘, 그래서 나는 지금 내 삶에서 그렇게나 우연을 바라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만난 사람들 1’로 돌아올게요.
*2017년-2018년에 떠난 여행의 기억을 더듬어 다시 기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