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서 만났던 북한 사람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느린 듯 빠르게 달렸다. 정차하는 도시마다 사람들이 타고 내리기를 반복했고 나는 덜컹이는 기차 안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내 자리는 일층이라서 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암묵적인 룰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2층 자리의 사람이 1층에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그렇게 내 자리에는 여러 사람의 흔적이 스쳐 갔다.
기차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기차 통로를 지나다가 익숙한 말소리가 들렸다. 분명 한국어로 말하는데 말투는 한국에서 잘 들을 수 없는 억양이었다. 가슴팍에 어디서 본듯한 초상화가 그려진 붉은색 배지를 달고 있는 사람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단번에 '아, 북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내 자리로 돌아와 앞자리의 한국인 언니에게 북한 사람들을 봤다며 말을 걸어도 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내 앞자리에 앉은 언니는 북한 아저씨가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고 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북한 아저씨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한창 여행을 하던 당시에는 북한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나도 되는지 몰랐다. 여행 중에 우연하게 만났으니 당연히 별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북한에서는 자유롭게 만나는 것을 금지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그 무렵 블로그에 썼던 여행 일기에는 북한 아저씨들을 만난 내용이 기록돼 있지 않다. 지나고 보니 내 생각을 생생하게 기록하지 못했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그래도 그날 함께 이야기하던 기억의 파편이 남아 있다. 조각으로 남은 기억을 조금씩 맞추며 글을 쓰는데 혹시나 내 기억이 왜곡돼서 이 글이 소설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니 편하게 읽어주시라.
북한 아저씨들은 러시아로 노동을 나왔다고 했다. 조심스러웠던 나와 언니랑은 다르게 아저씨들이 먼저 말을 걸어줘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서로에게 궁금한 점들을 묻고 이야기 나눴는데 내 나이를 묻더니 결혼도 하지 않고 이렇게 외국을 여행하는 거냐며 놀라던 아저씨의 모습이 떠오른다. 북한 아저씨들 중에 나름 젊은 축에 속했던 아저씨와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사실 아저씨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게 그의 나이는 30대였다. 겉모습을 보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되지만 그의 그을린 피부와 마른 몸, 그리고 깊게 팬 주름을 보고 나는 그가 걸어온 세월이 나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족들을 위해 계속해서 일해온 그의 세월을 나는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또한 북한에서는 군 복무를 10년 동안 한다고 직접 들으니 더욱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대 후 외국에 나와 일을 했다는 그는 러시아에 오기 전에 다른 나라에서도 일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로 일하러 온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게 외국으로 일하러 나오는 것도 북한에서는 꽤 잘 사는 축에 속하는 것이라고 했다. 시험을 봐서 해외 파견을 결정하는데 그 시험도 아무나 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아저씨들은 사진 찍는 것에는 호의적이지 않아서 함께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들의 얼굴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몇 년 지나지 않았는데 인간의 기억력이란 시간에 쉽게 흩어져 버린다.
아저씨들과는 북한에 있는 가족 이야기, 북한의 문화와 한국은 어떻게 다른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말이 통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친한 사이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아저씨는 러시아에서 2년 동안 일을 한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부터 러시아어를 공부했다며 공부하고 있는 작은 러시아어 사전도 보여줬다. 들뜬 목소리로 한국 영화도 봤다며 자신이 봤던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해줬다. 환하게 웃던 아저씨의 얼굴은 조금 경계를 하고 있던 내 마음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낯선 땅에서 한민족인 사람들을 만났다. 나는 갈 수 없는 북한, 그곳에 사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아저씨들은 주로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나도 기차에서 간편하게 라면을 먹었지만 아저씨들이 라면을 먹는 모습을 보며 외국으로 일하러 나온 사람들에 대한 대접이 시원치 않구나 하는 마음에 속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저씨들의 자리는 모두 2층 침대였고 연락 가능한 휴대폰도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스마트폰은 아니었으니 괜히 조심스러워서 정치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나 실제 북한 사람들의 생활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열악하겠구나 싶었다. 같이 밥도 먹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당시 어렸던 나는 기차에 있는 식당칸에 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저씨들은 나보다 먼저 기차에서 내렸다. 나의 여정에서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신기하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만날 수 없지만 말이 통하고 같은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내가 발 딛지 못하는 땅에 살고 있다는 것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통일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손에 잡히지 않는 이야기,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막연하게 통일이 되면 기차를 타고 유럽까지 가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그들을 만나고 나서야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 됐다. '언젠가 통일이 된다면...'이라는 말로 우리는 말끝을 흐리며 서로에게 안녕을 고했다.
그 당시에 가장 호의적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던 아저씨가 하트 모양의 빵을 선물로 줬다. 대동강 빵이라는 이름의 빵이었다. 설탕 뿌린 푸석한 옛날 빵의 맛이었는데 뭐라도 주고 싶어 하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 고마워서 맛있게 먹었다.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내가 더 좋았는데 나는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그저 아쉬웠다.
이제는 아저씨들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뒷모습을 담았던 사진으로 그들과의 만남을 추억한다. 부디 그들이 러시아에서의 근무를 무사히 끝마치고 지금은 북한에서 가족들과 함께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길 바란다. 우연히 기차에서 만난 북한 아저씨들을 내 평생에 다시 만날 일이 있겠냐마는 그저 그들이 잘 지내고 있었으면 좋겠다.
"아저씨! 잘 지내고 계시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만난 사람들 - 2 -'로 이어집니다.
* 2017-2018년에 떠난 여행의 기억을 더듬어 다시 기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