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탐독하여 현재를 살아가기
이 글은 10년 전에 작성한 일기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아직 모두가 편히 잠든 일요일 아침. 난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내 방에서 글을 쓴다. 그저 글을 쓰는 게 좋아서인 것도 있지만 나의 마음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글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또 쓴다. 배고픔에 쩔어있던 날도, 절박하고 간절한 심정을 느끼는 날도 글을 썼다. 주말에 그렇게 여유롭고 평화로워서 여행을 가기에 딱 좋은 날씨임에도 나들이를 나가기 보다는 방구석에서 글만 썼다. 나는 내 갈 길을 갔다. 글만이 나의 진정한 벗이었으니까.
자기 관리를 못해서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매번 반복되는 악순환에 스스로를 자책했던 내가 글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기 시작했다. 글을 통해 스스로 정의한 나란 존재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로 표현할 수 있다. 부족하고 안 될지언정 멈추지 않고 달려가는 녀석, 죽지 않고 살아있는 녀석, 꿈을 이루지 못할 바에 죽을 각오까지 하는 녀석, 밤을 잘 새지는 못하지만 아침형인 녀석... 이 몇 가지 문장들이 지금의 나를 대변한다. 지금을 사는 것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글과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내게 글은 마음이라는 강을 정화시켜주는 녀석이다.
10년 전에 나는 집에만 있는 것을 좋아했다. 젊은 날의 자화상을 여러 점 그린다고 한다면 밖보다 안에 있었던 날들이 훨씬 많았을지도 모른다. 보통 20대 때는 이 친구 저 친구 만나면서 술도 마시고, 연애도 하고, PC방에서 밤도 새고 그러는데 나는 그런 경험이 많이 없었다. 복학을 하고 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특별히 장르를 구분해가면서 글을 쓰려고 하지는 않았다. 자유로운 글쓰기를 통해 나를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하는 훈련을 했다. 하지만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과 글쓰기를 잘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었다. 10년 전에 쓴 글들을 보면 정말이지 이게 내가 쓴 글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앞뒤가 맞지 않고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도 어려운 글들이 많다. 정성들여서 쓴 글이 아닌 감정이 글의 질서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쓴 글인 것 마냥 여기저기 휘갈긴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글쓰기만 좋아하고 글을 제대로 쓰지 못했는데 10년 후 지금을 보니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틈날 때마다 필사를 한다. 필사를 하면 문장력이 좋아진다. 이건 필사를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내 생각대로 작성하는 문장과 다르게 객관적이면서도 현설적이고 깊이 있는 문장들을 필사하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한때 고전에 빠져 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필사를 정말 많이 했다. 필사는 단순히 똑같이 쓰는 것이 아니다. 책의 글들은 대부분 인쇄된 것이지만 필사를 하면 직접 글을 쓰면서 문장을 음미할 수 있다. 10년 전에 나는 필사광이었고 독서광이었다. 적어도 내 인생을 돌아봤을 때 10년 전보다 책을 많이 읽었던 순간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릴 적 동화책이나 역사책을 많이 읽기는 했지만 그 당시 읽었던 책의 수보다 훨씬 많았으니 말이다. 매주 도서관을 방문하여 책을 대여했으며 늘 쇼핑백과 캐비닛을 들고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가치관과 사상이 정립된다. 나는 그 당시에 닥치는 대로 거의 이잡듯이 읽었고 수많은 글들을 베끼면서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학문 분야들의 내용을 접했다. 지금 그렇게 하라고 한다면 도저히 못할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군 복무 당시에 처음으로 접했던 철학으로 인해 책과 글에 빠지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일까? 일부러 어려운 글을 쓰려고 한 것도 아닌데 나중에 글을 보니 이게 무슨 내용이지 하는 글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래도 그런 시행착오가 있었기 때문에 글의 명확성이 조금이나마 나아진 것이 아닐까?
길을 잃었을 때, 마음이 심란할 때, 삶에 대한 의욕을 완전히 잃었을 때, 글은 내게 힘을 주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글벗이 가장 소중한 벗이다. 생각의 통로를 열어주고 고통을 덜어주는 글벗이 없었다면 과연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아직까지도 내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근데 글을 못 쓴다고 해서 글을 쓰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나에게는 두 가지 생명이 있다. 바로 물과 글이다. 물은 육신의 생명이지만 글은 마음의 생명이다. 마음 속을 물처럼 흐르는 보이지 않는 글이 나에게 감동을 주고 위안을 준다. 외로움을 없애주고 희망을 안겨다준다. 나에게 글은 벗 이상의 존재다. 글이 없었다면 고난을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한때는 흰 종이가 보이면 온 세상을 글로 채색하고 싶다는 표현을 여기저기 써놓기도 했다. 글을 향한 내 마음은 10년 전이나 10년 후나 달라지지 않았다. 난 여전히 글이 좋다. 그래서 자유롭게 글을 쓴다. 숨을 쉬고 있는 이상 글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글벗도 언제나 나와 함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