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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 길을 찾아보자-10] 개념

과거를 탐독하여 현재를 살아가기

by Be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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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의 나 그리고 10년 후의 나

이 글은 10년 전에 작성한 일기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2015. 05. 21 ==

개념을 알고 문제를 푸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몇 가지 의문점이 든다. 그렇게 했을 때 과연 흥미와 성취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나는 궁금하다. 개념을 알고 문제를 풀 수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알고 사용하는 수많은 개념들이 과연 우리가 가치 있다고 느낄 만큼 매력이 있을까? 행여나 알고 있는 개념들 중에 잘못된 것이 있지 않을까? 어느 분야에나 개념은 존재하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여러 문제가 해결된다. 개념들끼리 모여 또 다른 개념이 만들어지고 그것들만의 파생상품이 생기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새로운 개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이며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생활 속에서 매우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난 여기서 어떤 특정 행동을 유발하는 뭔가가 개념을 만드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마인드 자체를 오로지 개념으로 가득 채우게 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모든 활동을 중단시키고 그것만 하게 만든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항상 우리를 지배하고 있따는 것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예측 불가능하고 무한한지를 설명해주는 예가 아닐까 싶다. 여기서 그 뭔가는 무엇인가? 특정 행동을 유발하는 그 뭔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즉, 개념은 학습으로 얻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통해 자연적으로 정립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 정립된 개념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개념, 내가 살면서 학습으로, 무의식적으로 터득한 개념은 삶을 살아가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책상에서 공부했던 개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토록 개념이라는 단어에 빠져서 사색의 바다를 헤엄치는 이유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잠깐의 여유로움이 철학적인 늪으로 나를 빠뜨린 건 아닌지도 모르겠다.



== 2025. 03. 19 ==

철학을 심취했던 10년 전의 나. 그때 나는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에 하나 둘 의심을 품기 시작했고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 질문을 통한 사색을 하는 것에 빠져 있었다. 내가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한 적이 언제였는지를 돌이켜본다면 아마 수능 공부할 때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 수학 공부할 때 개념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개념을 제대로 알면 문제를 풀 수 있지만 개념이 제대로 서지 않으면 문제 난이도와 상관없이 길을 잃을 수 있다는 것. 자연계나 공대 쪽에서 배우는 내용들은 특히 개념이 중요하다. 기초 개념을 가볍게 생각해서 문제를 틀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쉽게 고쳐지지가 않았다. 이런 시행착오를 통해 느낀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 한 번 정립된 개념은 인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가져다준다. 둘째, 잘못된 개념을 고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 학습하는 개념과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필수로 알아야 하는 개념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사실 표현이 다를 뿐이지 세상은 개념으로 구성된 곳이다. 개념을 활용하여 사상을 만들고,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을 만든다.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철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개념의 중요성을 알았다. 물음표와 느낌표가 한데 모여서 만들어진 단어와 문장들. 그렇게 구성된 것들이 하나의 단어와 이론으로 귀결되어 보편적이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전달될 때 개념은 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변모한다. 정적인 존재가 동적인 존재로 바뀌는 것이다.




그렇다면 꼭 공부를 많이 해야 개념을 제대로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펜으로, 붓으로 이해한 개념도 있지만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개념도 있다. 굳이 이론으로 공부하지 않았다고 해서 개념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현장에서 체험한 개념은 잘 잊혀지지 않는다. 고생을 통해 알게 된 개념들은 1년 후에도, 2년 후에도 기억이 난다. 이렇듯 책과 강의를 통해 공부한 개념이 있으면 현장에서 몸으로 터득한 개념도 존재한다. 어떤 방식으로 터득한 개념이 좋고 나쁘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알게 된 개념을 인생에서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다.




나는 한때 실용적 개념과 추상적 개념의 경계가 있는지에 대해 무척이나 궁금했다. 무엇이 실용적이고 추상적이라는 것인지 도저히 생각을 하고 또 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적용 가능하면 실용적 개념이고 적용하기 어렵거나 명확하게 이해가 안 되면 추상적 개념인가 하면서 나름의 결론을 내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아닌 것 같다. 실용적 개념과 추상적 개념의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존재할 수도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실용적 개념도 추상적 개념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세상에 자동차가 존재하지 않는데 자동차와 관련된 전문서적에서 설명하는 개념을 실제로 적용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해당 전문서적에서 설명하는 개념들은 실용적 개념이 아니다. 개념으로서의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추상적 개념일까? 나는 추상적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자동차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실체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존재한다면 이해는 어렵겠지만 머릿속으로 어느 정도 생각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실용적 개념과 추상적 개념. 사실 이 둘은 경계가 있기 보다는 서로가 필연성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불확실한 것들, 구체적이지 않은 것들을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천천히 틀이 존재하는 것으로 만들어지는 과정. 그 과정이 개념이란 단어의 명확성을 일깨워준다.

10년 전의 나는 단어에 대한 의미, 문장에 대한 의미, 언어에 대한 고찰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하나 둘 의심하는 시도를 많이 했다. 주변에서는 너무 엇나가면 안 된다고도 얘기했지만 처음 가보는 길이어서 그런지 꽤나 신박했다. 개념에 대해서, 현상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공부할 때와 일할 때 다양한 개념을 학습한다. 그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적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개념의 본질에 대해 깊게 공부하는 사람도 있다. 철학, 수학, 물리학은 개념을 깊게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기 아주 좋은 학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학문들을 지루하고, 복잡하고, 어렵다고 하지만 10년 전의 나는 이 학문들에 대한 관심이 꽤나 있었다. 지금이야 그 열정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철학, 수학, 물리학을 싫어한 적은 없었다. 아니 요즘 들어 다시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어떻게 보면 지금 내 인생은 개념에서는 벗어나기 힘든 인생이 되었다. 개발자로 살아가고 있는 이상 개념에 대한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 요즘은 시간날 때마다 알고리즘 공부도 하고 있는데 진짜 개념, 개념, 또 개념이다. 추상적 개념이 아닌 실용적 개념으로 정립하기 위해 날마다 날마다 공부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개념을 공부하는 과정은 저마다 다양하다. 글로, 키보드로 그리고 몸으로 개념을 터득한다. 개념을 얻는 과정은 다르지만 정립된 개념은 매순간 누군가에게 전달된다. 말로, 글로, 그림으로, 조각으로, 건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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