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그리고 키보드의 향연
내일, 설레는 내일인가 아니면 피하고 싶은 내일인가
내일이 기다려지는 삶을
한 번이라도 살아본 적이 있었나.
보통 좋은 일이 있거나 귀인을 만날 때
내일이 기다려진다.
지금까지 살면서 기다려지는 내일이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첫 등교, 첫 만남, 첫 출근.
설렘이 가득한 내일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설렘보다는 불안함과 지루함
피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내일만 늘어났다.
감정이 잔잔한 호수와도 같다면
그토록 원하는 설레는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까?
무엇 때문에 설레는 내일이 있을까?
지금, 그리고 현재
바로 오늘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설레는 내일이 더 많아지는 것이 아닐까?
매사에 감사하며 살아갔고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했고
멀쩡한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보냈던 날들은 어떤가?
병치레를 하고 건강을 회복한 다음 날은 어떤가?
설레고 기다려지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계속 아프기만 하면
설레는 내일이 아니라 인생을 마무리하는
오늘이 될 수도 있다.
설레는 내일을 보내려면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할까?
기다려지는 내일을 보내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할까?
자기만족이 설레는 내일을 보내기 위한
지름길이었으면 좋겠지만
변하는 상황 가운데서 내 손에 쥔 주도권은
작고작은 모래알과도 같은 것이 아니던가.
지금까지 살면서 내일이 기다려진 날들이
얼마나 있었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을 살아가면서
잠시라도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뭔가가 내 삶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게 감정일지, 사람일지, 사물일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천천히 돌아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왜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는지 말이다.
난 기다려지는 내일, 설레는 내일을
생각할 수 있는 오늘을 보내고 싶다.
욕망은 끝이 없지만 행복은 가까이 있다.
만족의 범위를 최적화하고 매순간을
소중하고 감사하게 보낸다면
설레는 내일이 떠오르는 오늘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지치고 지쳐서 번아웃의 빈도가 높아졌다면
설레는 내일을 맞이할 수 없다.
자기만족이란 늪에 빠져 많은 조건을 고려하면
설레는 내일을 맞이할 수 없다.
뭔가를 계획했지만 미루기만 한다면
설레는 내일을 맞이할 수 없다.
인생의 방향에 있어 타의의 비중이 높다면
설레는 내일을 맞이할 수 없다.
설레는 내일을 살아가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행복도, 감사함도 잊어버리는 인생에
익숙해져 세상의 아름다움과 기적을 모르고
살아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