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충, 세계를 잇다.2>
애정이 헤픈(?) 사람답게, 난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 또한 어마어마하게ㅎㅎ 많다.
특별히 ⭐️ 백개 드리고 싶은 유튜버들도 있는데 그중 한 분이 바로 최재천 교수님이시다. ^^ 동물학을 전공하신, 생물학자이신데(동물학이 생물학으로 통합) 이분이 하신 말씀 중 특별히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존재라 해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 존재에 대해 자세히 알아가다 보면 정이 든다. 사랑이 깃들게 된다.
우리의 누에도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났고, 자라나는 만큼 사랑스러워졌다.
실을 뽑기 시작한 누에이다. 이제 고치를 만들 준비를 하는구나 싶어서 계란판의 머리 부분을 커터칼로 잘라서 고개를 들 수 있도록 해주었다.
누에를 키우면서 내내 신기했던 게 누에의 슬립모드였는데, 고개(?) 머리(?)라 해야 하나...
아무튼 애벌레일 때 상반신을 올린 상태로, 얼핏 인간인 우리의 시선으로 보자면 고개를 쳐들고 자는 모양새였다.
예로부터 <천충>이라 불린다더니, 하늘을 향하고 있어 천충인가 보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치가 되어 안에 들어앉은(?) 누에들..
왼쪽고치가 좀 더 큰 이유는 단짝 누에들인지 ㅋㅋ 두 놈이 한고치안에 들어가서이다. 쌍잠이라 부른다고 한다.
고치를 만드는 걸 지켜보니, 얘네들은 공중부양? 의 본능이 있는지 꼭 실을 뽑아서 양쪽에 지지대를 만들어 해먹처럼 탄탄히 만들어 놓은 뒤 그 해먹에 올라탄다. 그리고 그 후 나머지 고치작업을 계속한다. 저 고치도 사실 내가 사진 찍느라 뒤집어 놓은 것이지, 원래는 계란판 사이드 위쪽에 정교히 붙어 매달려 있었다.
저렇게 마지막 누에까지 고치를 만들고 잠이 드는 걸 본 후 아들과 난 여름휴가를 떠났다 ㅎㅎ 마음 편히~ 솔직히 우리가 여행 갈 때까지 고치가 안될까 봐 어찌나 조마조마하던지....
고치가 된 누에는 그 안에서 번데기가 된 후 짧으면 12일 길면 약 15일 후 탈피를 하여 나방으로 완전한 변신을 한다..
.........
그리고 두둥~~
꽤 긴 휴가를 다녀와보니 2마리가 막 나와서 짝짓기를 하고 있었고 나머지 아이들은 아직도 고치진행 중~~~
입도, 날개도 퇴화된 누에나방은 날지 못하고 오직 짝짓기와 산란에 온 힘을 다한 후, 산란을 마치면 일주일 남짓 살다가 생을 마친다.
누에나방의 짧은 생은 여전히 애잔했지만, 그 생이 남긴 알과 실에는 생명순환이 깃들어 있는 거라고 나름 의미를 부여하며 한살이를 지켜보았다.
이번에 누에를 키우면서 누에에 대해 이것저것 검색도 해보고, 알아보게 되었는데 알수록 정말 신비롭고 인간친화적인 면이 있어 놀라웠다.
우선 누에나 누에의 똥은 냄새가 하나도 안 나고, 다른 날벌레의 꼬임이 전혀 없다. 정말 키우기도 좋고 깨끗하기 그지없다. 왜 옛날에 외할머니가 방 하나를 비워 누에들을 키울 수 있었는지 가늠이 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똥조차 농작물에 좋은 거름이 된다. 동의보감에는 ‘원감사(元蠶沙)’라 하여 세포를 회복시키고 장기 기능을 도우며, 혈압과 동맥경화를 낮추고 피부염증이나 치매를 예방하는 약재로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단지 깨끗한 곤충이 아니라, 인간에게 귀한 약이 되고 삶에 보탬이 되어주는 존재였던 것이다.
거기에 그 아름답고 귀한 비단을 만드는 명주실까지 뽑아주니 어찌 천충(하늘에서 내린 벌레)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
원래 누에 실 뽑기는 누에나방이 나오지 않은 고치를 삶아야지만 끊기지 않고 잠사를 뽑을 수 있다. 우리 누에들은 모두 고치에서 나방으로 나왔기 때문에 고치에 구멍이 뚫려 제대로 된 실은 뽑을 수가 없다. 이런 고치들도 물론 쓰기는 쓴다. 끊어진 실들을 여러 개 꼬아서 커튼이나, 넥타이, 이불 같은 거칠어도 크게 상관없는 실크를 제작할 때 쓰인다.
뜨거운 물에 고치를 삶아서 짧은 실이지만 실 뽑기를 체험해 보며, 자신의 입에서 이 얇고 가느다란 실을 뽑아내는 누에에게 다시 한번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리고 이 가느다란 실이, 실크로드를 만들어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바꾸었다는 사실 또한 놀라웠다.
그런데 이 작은 곤충의 몸에서 나온 실이 단순한 옷감에 그쳤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그 아름다운 광택과 부드러운 촉감은 인간의 욕망과 과시욕을 자극했을 것이고,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은 그것으로 옷을 해서 입음으로 자신의 신분과 위치를 드러내고자 했을 것이다.
그 욕망은 결국 길을 만들었다.
중국 장안에서 시작해 사막과 오아시스를 지나 페르시아와 로마까지 이어진 <실크로드>
그 길 위에서는 유리, 향료, 음악, 종교, 철학 등 문화와 문물들이 오고 갔고, 그 길은 동쪽 끝 한반도까지 뻗어왔다. 신라의 수도 경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유리옥과 서역풍의 악기가 바로 그 흔적이다. 작은 고치에서 나온 실이 대륙을 가로질러 경주의 금관을 장식한 유리에 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 전혀 만나 지지 않을 것만 같던 서쪽 나라와 동쪽나라 간의 놀라운 문화와 문물들 간의 연결의 시작이 누에였다. 조용히 자신의 고치를 만들기 위해 실을 뽑던 작은 생명이 거대한 문명들 간의 교류를 이끌어 낸 것이다
생각해 보면, 여름날 우리 집에서 고치를 짓던 누에와, 삼천 년 전 실크로드를 건너온 비단이 어쩐지 한 가닥으로 이어져 있는 듯하다. 작은 생명들이 만들어 낸 실이 대륙을 잇고, 나라와 나라를 이어주었듯, 올여름 나와 함께 해줬던 누에들이 고치를 지어 나와 세계를 이어주었다.
정말로 어쩌면 누에는 단순한 곤충이 아니라, 우리를 서로 연결하는 하늘의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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