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 단편 <병사의 집(Soldier's Home)>
그는 사실 여자들을 손에 넣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너무 복잡했다. 물론 그것 말고도 다른 무엇이 있었다. 막연히 여자를 원하기는 했지만, 여자를 얻기 위해 실제로 작업을 걸기가 싫었다. 여자를 손에 넣고 싶었지만 그 때문에 오랜 시간을 허비하기도 싫었다. 호기심을 끌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용의주도하게 굴기도 싫었다. 이제 더는 거짓말을 하기가 싫었다. 하나같이 부질없는 짓이었다. 크레브스는 결과라는 것 자체가 싫었다. 두 번 다시 어떤 결과건 맛보고 싶지 않았다. 결과 없는 인생을 살고 싶었다. 게다가 그에겐 정말 여자가 필요하지 않았다. 군대에서 그것을 배웠던 것이다.
- 헤밍웨이 <병사의 집> 중에서
헤밍웨이 단편 <병사의 집>의 주인공 '크레브스'는 대학에 다니던 중 1차 대전에 참전해 2년을 보낸다. 그리고 그는 남들보다 뒤늦게 미국으로 귀환하게 되는데, 이젠 환영의 분위기도 식었고, 사람들도 거짓이나 과장을 더한 이야기가 아니면 흥미를 못 느낀다.
'크레브스'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 집 현관에서 길거리의 여자들을 구경하고, 당구장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는 게 전부다. 그는 결과 없는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 그는 여자와 사귀고는 싶지만 그것의 가치를 못 느낀다. 무기력과 환멸, 허무의 감정이 그를 온통 사로잡아 버린 것이다.
"여자에 대해 생각해야 비로소 여자를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군대에서 그것을 배웠다. 이르건 늦건 어차피 여자란 손에 넣게 되는 법이다. 한 여자에게 정말로 마음이 쏠리면 언제든 손에 넣게 될 것이다. 곰곰이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었다. 조만간 그렇게 되고 말 것이다. 그는 군대에서 그것을 배웠다."
크레브스의 어머니는 '때'가 되었으니 이제 일을 하라고 그에게 당부하고, 아버지는 '야망'도 잃고, 인생의 확고한 '목표'도 없는 그를 걱정한다.
그의 어머니는 말한다.
하느님의 왕국에는
빈둥빈둥 노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단다.
그러자 크레브스가 대답한다.
전 하느님의 왕국에
살고 있지 않은 걸요.
소설의 마지막 부분,
크레브스는 자신의 삶이 복잡해지지 않도록 무척 조심해 왔으나, 삶은 어느 것 하나 그에게 감동을 주지 않았다고 말한다. 또 자신의 삶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바랐고, 막 그럴 참이었는데, 이제는 모든 게 끝나고 말았다고 이야기한다.
크레브스는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세상에 다시 적응하기 위해 이를 꽉 물어야 할 것이며, 무엇이든 일을 잡아 일단 시작해야 할 것이고, 가족의 기대에 부단히 부응해야 할 것이며,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거짓과 과장을 들여야 할 것이다.
전쟁통에서 살아남은 크레브스는 사실 자신의 아픔을 숨긴 채 거짓과 과장을 섞어가면서까지 주목을 받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의 부모님은 그에게 쓸데없이 야망과 목표를 묻기 전에 지난 2년의 아픔을 먼저 헤아려 깊이 공감해 주었어야 마땅하다.
"합리적인 인간이 되는 것은 아주 편리한 일이어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든 그에 합당한 이유를 찾아내거나 만들어 낼 수가 있다."
- 벤자민 프랭클린
음,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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