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사람들을 모아놓은 듯한 붐비는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퇴근길의 열차는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여기저기선 밀고 당기고 꿉꿉한 고기 냄새가 나기도 한다. 시끄러운 통화 소리와 덜컹거리는 쇳덩이의 울음은 묘한 불협화음을 이룬다.
열차가 정차할 때 곪았던 고름이 터지듯 사람들은 좁은 출입문을 향해 몸을 던진다. 문 바로 앞에서 굳은 채 움직이지 않는 사람, 이리저리 밀치며 자신만 내리면 지구가 멸망해도 괜찮다는 사람, 한껏 몸이 끼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는 사람들이 명작 영화처럼 매번 재방송된다.
나도 한 때는 그 비극적인 장면의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과 감정을 알아차리는 마음 챙김을 시작하고부터 출연자가 아닌 시청자의 위치를 가져갈 수 있게 되었다.
그 지옥과 같은 고철의 몸을 맡길 때에도 나는 행복할 수 있었다.
두 귀를 틀어막지 않고도 들려오는 소리를 아름다운 드라마로 변환하게 된다.
퇴근하며 불평을 늘어놓는 청춘의 이야기,
치킨 냄새를 잔뜩 풍기며 두 손 가득 행복을 포장해 가는 가장의 이야기,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감동적인 장면,
내리고 탈 수 있도록 번거롭지만 자리를 비켜주는 이타적인 장면까지.
모든 장면, 모든 순간이 이전과는 다르게 들리고, 보이고, 느껴진다.
어쩌면 이 세상은 내가 감독으로서 만들어가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슬프고 비극적인 영화만 만들던 나는 힐링물을 만드는 연출자가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만의 영화를 고통스러운 장면으로만 채워간다.
한 장면 한 장면 정성스럽게 시나리오를 쓰며 자신의 미간을 희생시킨다.
여전히 내 머릿속의 메가폰을 든 그 녀석은 자기 마음대로 장면을 해석하려 한다.
그때마다 나에게 주도권이 있음을, 내가 감독의 역할임을 일깨운다.
그렇게 하루 두 번은 발생하는 메인 이벤트를 아름다운 장면으로 가득 채워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