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호하는 인간상에 대한 고찰
사랑은 어떤 모양일까. 어떤 종류의 감정에 가까울까. 어렸을 때는 사랑이 의리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강했을 시기였겠지.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 말고 조금은 더 끈끈한 정과 의리에 기대어 끝을 미뤄두고 싶었던 거다. 그즈음에 내가 망태기에 담았던 인간들은 주로 매사에 성실하고 끈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나도 내가 선택한 사람이라면 관계가 어떤 모양으로 흘러가더라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던 것 같다.
‘시절 인연’의 개념을 받아들이고 난 후에는 조금 더 유연해졌다. 어차피 영원한 게 없는 거라면 함께하는 시간 동안의 행복이 더욱 중요하니까. 타인과 시간을 보낼 때 가장 많이 하는 건 대화다. 본인과 타인에게 솔직할 줄 아는 사람과의 대화는 대부분 즐겁다. 삶의 굴곡진 모양새를 엿보며 내 시야를 넓혀가는 건 늘 짜릿하거든. 무례하지 않은 선에서 생각을 풀어놓고 느낌을 공유하는 게 유연한 사람이 좋다. 서로가 사용하는 언어의 용도나 사고의 체계도 중요하겠지만 솔직할 용기만 있다면 그 갭은 메워질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매사에 최선을 다하기에는 지치고, 그렇다고 흘려보내기엔 아쉬운 딱 요즈음에는 공감과 인내가 가장 어렵고도 확실한 사랑의 표현인 것 같다. 시큰둥한 잿빛 하늘에 겨우 쥐어짜 낸 한 줄기 햇살 같은 잘 배운 다정함은 곧 공감이 아닐까 싶다. 하고 싶은 말 하는 건 얼마나 쉬워. 즉각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은 나의 욕구만을 위한 일이기에, 잠시 멈추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일은 아주 큰 인내를 바탕으로 한다. 뭐 인내심이 좋은 편은 아니라서 내 공감은 은은하게 비치는 봄날의 햇살보다는 흐린 오후의 햇살처럼 균일하지 않겠지만은.
또래보다는 포근한 연장자가 편하고, 아주 가까운 사이보다는 조금의 거리감을 둔 관계가 익숙해졌다. 느슨하지만 될 수 있는 한 오래 곁에 머물 거란 신뢰를 주는 사람들이 좋다. 거짓으로 상황을 얼버무리지 않고 내뱉는 말에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깔려있는 어른들이 좋다. 혼자가 편해지고 스스로 애틋해져 좋은 사람만 곁에 두고 싶다. 올해 넘치게 받고 있어서 베풀 여유도 생겼으면 좋겠다 싶고.
연애랑 멀어질수록 결혼을 숙제처럼 인생의 구석 한 켠에 미뤄두는 것 같아서 내심 불안하기도 하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긴 해. 이십 대 내내 열렬히 연애하던 나는 어디 가고, 연애할 때가 가장 불완전하다고 느껴지는 삼십 대의 나만 남았는지. 그렇다고 뭐 억지로 노력한들 성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귀여움과 챙김을 주고받는 지금의 온도가 딱 좋다. 오랜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