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섭 지음
옷과 신발이 젖는 비 오는 날이 싫다. 언젠가부터 빗소리와 비 냄새는 좋아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외출은 화창한 날에만 하고 싶다. 우산을 주기적으로 사게 된다. 주기적으로 잃어버려서, 비 맞기 싫어서. 세상에 내리는 비 중에 따뜻한 비는 없고 하나같이 다 차가운데 그래서인지 비를 막아주는 우산이 참 따뜻하게도 느껴진다.
초등학생 때였을 것이다. 가족들과 노래방에 가면 엄마가 부르셨던 애창곡은 우순실 씨의 ‘잃어버린 우산’이었다. 엄마의 폭발하는 가창력보다 나를 집중하게 만든 건 노래 제목이었다. 어린 아인 엄마의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다. “왜 잃어버린 우산일까?”, “이별한 여인이 빗속을 정처없이 걷다 빗물보다 높은 슬픔에 잠겨 우산을 내팽개친 이야기일까?”라고. 대중가요 대부분은 사랑 이야기이기에!
어른이 되어 노래 제목을 다시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잃어버린 우산이라니! 살면서 우산을 잃어버린 적 없는 사람도 있을까?”
내가 우산을 잃어버릴 땐 주로 취기 오른 채 술집에 두고 오는 일이 다반사다. 검은색 장우산을 고집하다 보니 음식점 우산꽂이의 내 우산을 사람들이 본인 것으로 착각해 가져가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 분명한 건 전자가 더 속이 쓰리다. 후자는 다른 사람의 우산과 교환하는 격이니까.
얼마 전에도 우산을 잃어버려 검은색으로 새로 샀다. 이 우산은 앞으로 얼마나 더 곁에 둘 수 있을까. 어쨌든 비는 막아야 하니까 몇 번이고 우산을 사겠지만 바라는 게 있다면 우산 접히는 부분에 머리카락이나 안 뜯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