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 ‘엄마는 엄마가 처음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한국 사회의 산업화가 가속되면서 맞벌이가 더 이상 대수롭지 않게 되었다. 관조의 말이 아이에게 미안한 워킹맘을 대변했다. 이 신조어는 ‘나도 아빠가 처음이라’ ‘나도 이번 생은 처음이라’ ‘나도 공시생은 처음이라’는 말을 파생시키며 대한민국을 미안함으로 채워버렸다.
나는 이 말들이 싫었다. 현실을 부정하고 회피하며, 위로를 구걸하는 변명들이 싫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나도 그 말을 하게 될 거라는 것을.
두 번의 시험을 실패하고 11개월 남짓의 공시생 생활을 접기로 했다. 피폐해지는 나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더 열심히 할 자신이 없었다는 말로 자위했지만, 그저 붙을 자신이 없었던 것뿐이다.
첫 번째 시험은 아깝게 떨어졌다. 6개월 만에 이룩한 결과에 코가 남산을 찌를 듯했다. 이미 마음속으로 공무원 생활을 준비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두 번째 시험의 성적을 받아 들고는 눈을 의심했다. 합격선에서 저만치 멀어진 점수를 보고 스스로 뺨을 후려쳤다. 다섯 대쯤 형벌을 멈추고 거울을 보니, 비소를 머금은 내가 보인다. 사실 두 번째 시험을 보고 오던 날 떨어질 것을 직감했다.
책을 몽땅 들고 나와 불태웠다. 그리고 당진 왜목마을로 가서 점퍼를 벗고 한겨울 바닷바람이란 형벌장에 날 세웠다. 살을 에이는 추위, 실패로 끝난 결과, 한심함과 아쉬움이 거세게 부딪히고 사라지는 파도와 같았다. 그러다 불현듯 새어 나온 한마디.
"그동안 고생했다."
1년 남짓 한 거 가지고 유난이라고 하겠지만, 매일 14시간을 한 가지에 몰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과가 어찌 아쉽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만은, 해볼만큼 해봤기에 후회는 없었다. 겨울 바다를 보면서 나지막하게 내뱉었다. ‘공시생은 처음이라..’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취업을 했다. 취업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이 고생들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취업만 시켜주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회사가 나에게 바라는 건 생각보다 많았다. 주어진 임무를 완성하기 위해 나를 포기했다. 여느 신입들이 그러하듯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에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노력에 대한 적당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었고 그것이 행복이라 믿었다. 얼마나 허망한 꿈이던가. ‘직장’이란 이름 아래 ‘돈’이라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꿔 온 것이다.
벽에 다다른 꿈은 방향을 틀었다. 돈을 벌기보다는 적당하게 벌어도 되니 균형 있는 삶으로 목표를 바꿨다. 하지만 직장과 삶의 균형은, 직장에 쏠린 무게 추는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의 워라벨은-그때는 워라벨이란 단어도 없었다- 잡을 수 없는 신기루와 같았다. ‘적당히’라는 단어는 세상에서 가장 이루기 힘든 목표였다. 나는 점점 지쳐갔고 모든 것이 엉망이었을 때 생각했다. 나… 실패한 건가?
조급해졌다.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가 날 잠시도 고요 속에서 나두지 않았다. 워라밸이 안될 바에는 다시 돈이라도 벌어야 했다.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악착같이 찾아 헤맸다. 책을 읽고,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부동산 야간 수업도 들었다. 잠자기 전 중국어를 공부하고, 졸린 눈을 비비며 강연을 듣다 잠에 들었다. 그럼에도 삶은 바뀌지 않았다.
다시 원점, 결국 돈도 균형 있는 삶도 잡지 못했다. 그 후 끝없는 슬럼프에 빠져 들었고, 한참을 술로 하루를 버텨냈다. 하소연을 해도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뿐, 다들 그렇게 사니 나도 이렇게 산다고 비난할이 아무도 없었다.
어느 날 새벽 5시쯤, 유독 하루가 빠른 이웃 주민의 트럭의 시동소리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잠잘 시간마저 아끼며 채찍질하던 인간이 무한한 나태함에 빠져보니, 나침반 없이 사막을 걷는 것과 같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에 몸은 반응하지 않았다.
'움직여야 할 목적이 없는데 굳이 일어날 필요가 있을까?'
쓸모없음을 판결이라도 받은 듯 나에게서 한 움큼의 기대조차 거둔다. 매일 수백수천 번씩 물어봤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음식물 섭취를 멈춘 인간의 몸은 생존을 위해 불필요한 에너지를 줄인다. 몸의 근육이 빠지고, 말라가며, 정신이 몽롱해진다. 마지막으로 살아남기 위해 숙주를 계속 잠재운다. 음식을 먹을 이유조차 찾지 못했고 이틀을 먹지 않았다. 이러고 싶지 않았지만 무얼 해야 할지 몰랐다. 이제는 먹고 싶어도 몸을 일으킬 힘이 없었다. 잠이 다시 들 때쯤 나지막이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그래도 살아야 하지 않겠어?’
데우지도 않은 간편밥을 뜯어 김과 함께 손으로 집어 먹었다. 계속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게, 죽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여전히 논란인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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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훌륭한 꽃은 없다. 저마다 훌륭하다.
개나리는 개나리대로, 동백꽃은 동백꽃대로
자기가 피어야 하는 계절은 따로 있다.
꽃들도 저마다 만개의 시기를 잘 알고 있는데
왜 그대들은 하나같이 초봄에 피어나지 못해 안달인가?
아직 그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대, 언젠가는 꽃을 피울 것이다.
그러므로 고개를 들라. 그대의 계절을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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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은 대표적인 겨울 꽃이다. 눈이 오는 12~1월 즈음 피기 때문에 시인들은 외로움이나 강인한 생명력을 표현할 때 애용한다.
만약 내가 동백꽃이라면 지금까지 말도 안 되는 바람을 품어온 것이다. 동백꽃 주제에 개나리가 되고 싶어 발버둥 쳤다. 왜 개나리가 되고 싶었던 걸까? 그래, 다들 그때 피니까, 다들 빨리 피는 개나리나 장미가 되고 싶다. 깊은 땅에서 발아 전 초라한 상태로 한겨울까지 견디고 싶지 않았다.
이젠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장미가 되고 싶었지만 아니었음을, 이 화려한 잔치에 내 자리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억지로 우겨서 피어봤자, 한여름에 겨울옷을 입은 것처럼 곧 말라죽을 것이다. 인간인 주제에 날개라도 달고 싶었어 바둥거린 꼴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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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순례자의 길은 불안함과 고민으로 가득한 곳이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현재의 고통이 사라지길 바라거나 한심했던 과거를 내 던지기 위해 고행의 길에 오른다.
이곳에 오는 길은 다양하다. 스페인행 티켓을 끊어 길의 시작인 프랑스 생장으로 향한다. 810km라는 길을 걷기 위해서는 약 40일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곳에 오는 사람은 멈춘 사람이다. 잠시 삶의 스위치를 ‘정지’에 맞추고, 과거를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야 할 시간을 되집기 위해 길에 올랐다. 그러니 일 이주일 시간을 내어 여행을 하러 오는 사람들과 마음가짐 자체가 다르다.
11월의 스페인 북부는 영업을 마친 식당이다. 수확을 마치고 한켠에 쌓인 볏짐들과 앙상하게 걸려있는 포도 줄기들은 하루 장사를 마치고 수북이 쌓인 접시와 같다. 황량하게 남겨진 벌판은 손님이 떠난 식탁처럼 쓸쓸하다. 문 닫은 식당에 들어온 손님인양,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 길은 쓸쓸함이 가득하다. 바람마저 황량한 평야를 걷다 보면 답답했던 마음이 잠시나마 뻥 뚫리는 기분이다.
걷는 나여, 무얼 생각하고 있나
이 길이 전환점이 되어주길 바랬다. 일 년이 넘는 여행을 통해 현재에 존재하는 법을 배웠다고 자신했지만, 더 큰 고민이 다가오자 그곳에 갇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길에 있는 대부분이 이런 고민을 갖고 걷는다. 때문에 대화는 어느 곳보다 진중하고 깊고, 여운을 남겼다. 그곳에서 팀 코리아 Team korea를 만났다.
나는 20대 초중반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평등을 주장하면서 자신에게 불리할 때는 연장자의 기품을 요구하는, 자신의 손해는 눈곱만큼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타인의 희생은 쉽게 눈감는 그들을 멸시했다. 적어도 내가 봐온 대다수는 그러했다. 병적까지는 아니더라도 의도적으로 그들을 멀리했다. 그곳에서도 멀리 앉았고 섞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의 편견을 박살 냈다. 순례자의 길에서 그들을 만났던 것에 대해 감사하다.
팀 코리아는 네 명의 스무 살, 스물한 살 한국인 친구들을 터키에서 온 여행가인 무스타파가 지어준 이름이다. 그들과의 첫 만남은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비수기인 탓에 머물고자 했던 마을의 알베르게 Albergue-스페인어로 숙소를 뜻한다-가 닫혀있는 바람에 5km를 더 걸어야 했고, 한밤에 비까지 맞으면서 걸었더니 체력은 바닥나 있었다. 어서 빨리 잠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알베르게에 체크인하고 식당을 지나 방에 들어가려 했더니 한 동양인이 스페인어로 욕을 하고 있었다. 그저 못 배워먹은 외국인이라고 생각했다. 샤워를 하는 내내 특정 욕이 샤워실 틈을 통해 흘러왔다. 그때 간간이 들려오는 익숙함, 한국어였다. 음식을 준비하며 그를 가만히 관찰해보니 그 말을 “좋았어” “최고야” “맛있어” 등 감탄사를 표현할 때 사용했다. 문제는 수십 명이 있는 식당에서, 그것도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에서 그 단어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알려준 장본인을 알아내어 정중히 말했다. 그는 그 단어가 가진 진짜 의미-상황이 좋지 않을 때 살인까지 날 수 있는-를 먼저 알려주지 않은 것에 대해 인정했다. 그리고 한국인 청년에게 진짜 의미를 말해줬을 때, 그는 당황하며 고마워했다.
안면을 튼 그들과 같은 알베르게에서 자주 마주쳤다. 같은 길을 걷기 때문에 걷는 속도가 많이 차이 나지 않는다면 같은 숙소에서 마주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비수기에는 많은 알베르게가 휴업하고 일부 공립 알베르게만 문을 열기 때문에 만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들을 통해 괜찮은 이십 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깨달을 수 있었다. 간혹 나에게 조언을 구하기라도 하면, 토끼굴에서 토끼가 쑥 하고 나오듯 가슴 깊은 곳 이야기가 빠져나왔다. 그들에게는 한치의 거짓이나 과장도 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 자기반성과 때론 잘했던 과거를 통해 뿌듯할 수 있었다. 그들과의 대화는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해 준 소중한 기회였다.
길이 끝날 때쯤에는 이 길에 충실했던 것만으로도 큰 경험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일부 순례객들은 길의 마지막에 다다를수록 조급하다. 그들이 원했던 큰 깨달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길에 오른 초반에는 고단함에 얼굴을 찌푸리지만, 갈수록 무거운 생각에 얼굴이 어두워진다. 그중 S와 했던 이야기가 있다.
까미노는 비가와도 걸어야만 하는, 계속 살아야 하는 삶과 닮았다
“겨우 800km 걸어 놓고는 인생의 답을 찾으려고 한 것부터가 무리지. 평생을 살아도 찾지 못하는 것을 잠깐의 고통과 바꾸려고 하는 것 자체가 사기꾼 심리와 다를 게 없어” S에게 말했다.
“엄마가 그랬어요. 아무것도 찾지 못해도 실망하지 말라고요. 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하셨어요. 그리고 그 말도 했어요. 그 시간을 견디라고..”
그녀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가 말했던 것처럼 자신의 시간을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타인의 시간을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시간을 견디는 것이, 그것이 삶의 미치는 긍정적 파급력을 말이다. 서른 넘어 깨달았던 삶의 이론을 스무 살 초반에 깨달았다니.. 나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 거라는 확신에, 부러움과 질투마저 솟구쳤다.
우리는 모두 꽃이다. 하나하나가 꽃향기를 머금고 꿀을 갖고 있는 꽃이다. 벌꿀들은 우리에게 모일 것이고 사람들은 각자가 거쳐온 삶의 채취를 맡기 위해 몰려들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시기에 필 수는 없다. 왜 나는 싱그러운 5월에 필수 없냐고 불평할 수 있겠지만 방법이 없다.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고 나무가 나무로 태어났듯, 때론 삶에서는 이승의 지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받아 들일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사람도 벌도 찾지 않는, 눈 내리는 추위 속에서 피어야 하는 동백꽃으로 펴야 하는 운명을 말이다.
그렇다고 동백꽃이 안타까운 운명은 아니다. 화려한 꽃망울을 가장 일찍 터트린 개나리는 몇 주의 화려함을 만끽하고 흙으로 돌아간다. 동백꽃은 추위 속에 꽃을 피워 새하얀 눈과 함께 오랫동안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이제 그런 동백꽃이 좋다.
휘황찬란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누군가 말해준들, 긴 기다림은 힘들다. 경제적 빈곤함, 상대적 박탈감, 우울함은 시도 때도 없이 나를 흔든다. 그때의 나에게 할 수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나여, 조급할 필요가 없다. 조급해한다 해도 아무것도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불안에 대항하는 방법은 유일하게 자신을 믿는 방법이다. 자신이 시도했던 그리고 고민했던 것들을 믿고 꾸준히 해 나가는 방법밖에 없다. 설령 미숙하고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결과일지라도, 그것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다. 언젠가 온다. 어제 했던 도전이 오늘은 왠지 쉽게 느껴지고, 예전에는 숨도 못 쉴만한 상처가 이제는 숨 쉴만해지는 시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