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나였다

파타고니아 바릴로체

by 김훈

아르헨티나 대륙에서 남극과 가장 가까운 우수아이아, 얼음의 도시가 뿜는 냉기를 피해 들어간 숙소에는 이곳이 세상의 끝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빽빽하다. 스파게티를 삶는 끓는 물이 뿜어낸 건지 사람들이 내뿜은 건지 모를 온기 덕분에 추위로 얼었던 코가 녹기 시작한다. 여행의 벅차오름이 얼굴 가득한 사람들과 여행을 마무리하는 아쉬운 표정이 거실에 한데 섞여있다.


그동안 몇백 번은 했을 자기소개를 끝내자 왜 여행을 떠났는지, 여행은 어땠는지, 여행을 후회하지 않는지와 같은 질문들이 이어진다. 그들 중 세계여행을 막 시작했다며 살갑게 다가왔던 한국 청년을 기억한다.

세상의 끝 우수아이아

이들 사이에서 미스터 블레임 Mr. Blame-불평쟁이-로 불린다는 그의 별명의 기원을 알기까지는 찰나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낯선 땅에서 짊어진 이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부모가 돈이 많았으면 공무원 시험 준비 안 하고 여행이나 다녔을 텐데, 대기업은 명문 대학생만 뽑는다는 등의 푸념을 이어갔다. 고객 앞에서 한국 사회가 얼마나 무능력한지 발표하듯, 썩어빠진 한국의 시스템이 전복돼야 한다며 핏대를 세웠다. 나는 관계없다는 듯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에게는 익숙한 냄새가 났다. 과거 불만 속에서 살아가는 나와 같은 냄새 말이다.


그를 보고 있으니 과거의 나를 바라보던 이들이 느꼈을 안타까운 감정이 전달됐다. 그동안 생각해왔던걸 그에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과거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무 말하지 않았다.

‘말한다 한들 들리지 않을 거야. 아마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분노와 외로움을 거쳐, 실수투성이였던 자신의 과거를 마주한 후에야 진짜 자신과 마주하게 되겠지. 하긴 내가 뭐라고..’


그 밤 이후 그를 볼 수 없었다. 아침 일찍 떠난 모양이다.


나는 결단이 빠른 편이다. 적당한 의지력도 있다. 결단이 서면 그동안 이어온 삶의 패턴은 새로운 목표를 향해 신속히 재설정했다. 불굴의 의지 정도는 아니더라도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웬만해서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잘 될 수 있을까?’ ‘이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맞는가?’라는 상념이 머리에 헤집어 놓으면, 며칠이고 책생앞에 머무는 일이 없다.


나는 슬럼프에 매우 취약하다. 결과를 마주하는 날이면, 그만큼의 노력을 쏟아붓고 겨우 이 정도의 성과를 냈다는 것에 부아가 치민 나를 발견한다. 돌아보면 현재 내가 갖고 있는 약소한 능력들은 그저 들인 시간이 많다 보니 얻게 된 약간의 성과였다. 잘해서 받은 우등상 없이, 상처 받을 학생을 위한 마련한 장려상만이 삶의 찬장을 채웠다. 효율이란 단어와는 등진 사람이었다.


그런 장려상들이 자랑스럽지만 그때는 아니었나 보다. 눈 씻고 쳐다봐도 찾아보려야 찾을 수 없는 부족한 재능 탓에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상념에 마음이 잠식당하면 의지력은 물에 젖은 휴지처럼 툭하고 끊어졌다. 목표한 만큼 공부하겠다고 전쟁에 나가는 장군처럼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린 몸을 책상 앞에 대령하는 것은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꾹꾹 눌러써봐도, 미래에 꿈꾸는 모습을 상상해봐도 바람에 허공을 맴도는 나비처럼 집중할 수 없었다. 인트로만 들어도 무슨 노래인지 알 정도로 질려버린 노래는 책상 앞에 앉아 듣는 순간 생전 처음 듣는 노래로 바뀐다. 잠자리에 들면 허공에 흩뿌린 시간이 아지랑이처럼 천장에 아른거렸다. 무능했다. 무능하고 하찮은 인내력이었다.


그럼에도 알량한 자부심은 있었다. 괜찮은 영어실력이었고, 중국어도 할 줄 알고 스페인어라는 희소성도 갖고 있었다. 수동적이긴 해도 열심히 일했고 괜찮은 성과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는 나를 더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동안 나를 더 인정해줄, 다시 말해 더 나은 급여를 줄 수 있는 회사를 찾았다. 하지만 현실은 비슷하거나 조금 나은 회사들 뿐이었다.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반도체 대기업 이직에 연거푸 실패하자, 헤드헌터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나는 왜 안 되는 겁니까?”

그간 구매부서라는 특징상 외부 영입이 적다는 말로 좋게 둘러대 준 담당자는 정말 모르겠냐는 말투로 진실을 통보했다.


“지원자 스펙이 대기업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이제야 명확했다. 나보다 잘난 이들이 회사에 수두룩한데 급여나 대우에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 이유, 그들은 그들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객관적인 내 시장가치는 지금 회사가 주는 연봉,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딱 그 정도였다. 나만 사실을 외면했을 뿐이다.


내장 깊숙한 곳, 피해의식이 꿈틀 되자 숨죽여있던 에고가 공격했다. 말만 뻔지르르한, 오만함에 휩싸여있는, 그저 그런 놈이라고 나를 몰아붙였다. 알고 있었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것마저 인정해버리면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기댈 곳이 없을 거라 생각했나 보다. 그래서 도망치고 외면하기 급급했다. 아스라진 자존감을 붙들기 위해 불평할 무언가를 찾았다. 그렇게 사회를 원망하고 나를 연민하고, 정당화했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당시에는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나와 마주하기에는 너무 어리숙했다.


‘자괴감은 어디서 시작되었나?’

원인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것의 정체는 지금까지 제대로 이룬 것 하나 없는 부끄러움이자 괴로움이고, 헛되이 흘려보낸 시간이자 안일하게 대처했던 순간들이었다. 스스로가 들이는 노력의 결과를 의심했고, 그 노력이 무의미해질까 봐 미리 겁냈다. 온전히 그것에 대해 집중할 수 없었고, 결과에 후회했다.


그래도 노력했다며 스스로 어깨를 두르렸지만, 위로받을 만큼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은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맞다. 불만족 투성인 이 현실은 모두 내 잘못이었다. 다만 배알이 꼴릴 만큼 솟구치는 분노를 쏟을 곳이 필요했으니 사회 탓을 했다. 스스로와 약속을 어기면서 허공에 흩뿌린 수많은 날들을 허무하게 바라봤다.


***

남미를 여행한다면 꼭 가보고 싶은 곳, 파타고니아 Patagonia에 드디어 왔다. 파타고니아는 아르헨티나와 칠레 남부 국경에 걸친 구간으로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많은 장기 여행자들이 한 달 정도 국경을 넘나 들며 여행할 정도로 볼거리가 넘친다. 북에서 남으로 내려가는 여행자는 주로 바릴로체-정식 명칭은 산 카를로스 데 바릴로체 San Carlos de Bariloche다-를 첫 장소로 선택한다.


이곳은 파타고니아의 시작이 아니더라도 가봐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야오야오 산 Cerro Llao Llao을 끼고 한적하게 트레킹을 하다 보면 나우엘 우아삐 호수 Lago Nahuel Huapi와 설산들이 만든 데칼코마니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경사진 마을을 따라 걷다 보면 목가적인 풍경에 온 마음을 사로잡힌다.

나우엘 우아삐 호수의 데칼코마니

바릴로체에 간다면 꼭 2층 버스 제일 앞 좌석에 타야 한다는 세계여행 선배들의 경고에 따라 이틀 전 미리 티켓을 구매해뒀다. 15시간? 20시간 정도 걸렸을까, 멘도사 Mendoza에서 출발한 버스는 식사를 두 번이나 하고 나서야 바릴로체에 도착했다. 마을을 20km 정도 남겨두고 펼쳐진 순백의 파노라마는 이곳이 왜 아르헨티나의 알프스라고 불리는지 단번에 알 수 있게 된다.


스키 시즌에 맞춰 단체 관광 온 사람들과 파타고니아 여행을 위해 들른 사람들이 한데 몰려 크리스마스를 앞둔 유럽의 어느 도시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이곳의 진짜 트레이드마크는 초콜릿이다. 불난 호떡집마냥 초콜릿 상점들은 카드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만든 줄은 찜통 속 순대처럼 공간을 잠식했다. 맛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곳 사람들은 와인 안주로 초콜릿을 먹을 정도다. 눈 덮인 산과 강, 음식과 와인,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모든 것이 준비된 성수기와 달리 비수기의 파타고니아는 교통편이 극악스럽다. 흔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지 않는 노선은 갑자기 취소되는 경우도 있다. 손님 한두 명을 태우고 20시간을 넘는, 뻔히 보이는 적자를 원하는 회사는 없을 테니 이해는 간다. 그러니 적극적으로 자신이 그 노선을 이용할 거라고 사전에 티켓을 구매함으로써 의사표시를 해두는 것이 좋다.

아르헨티나는 교통 인프라가 잘 갖춰진 나라이기 때문에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정보를 믿었다. 인터넷으로 티켓 구매가 완료되지 않는 것이 미심쩍었지만, 굳이 터미널에 전화할 필요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현지인들은 혹시 모르니 직접 확인하라는 조언을 했다. 공교롭게도 오전에 한두 번 전화를 해보면 매번 부재중이었다. 숙소의 스태프들마저 확실하게 해두기 위해 직접 방문하라고 친절히 경고했지만 별일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이때만 해도 나의 안일함이 어떤 일을 맞이하게 될지 예상하지 못했다.


뿌에르또 바라스 Puerto Varas에 가기 위해 터미널로 향했다. 버스에서 달콤한 잠을 기대하며 티켓부스로 향했더니 버스는 이미 출발했다. 알고 보니 내가 확인했던 정보는 작년 비수기의 버스 운행표였고, 오전 오후 한 대씩 출발하던 버스는 금년에는 오전 한대만 운행하고 있었다. 다음 버스는 이틀 뒤 목요일이었다.

한심함에 얼굴을 손에 묻었다. 여행을 10개월이나 했음에도 안일한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과거에도 느꼈던 한심함을 지구 반대편에서 반복하고 있었다. 이틀 치의 숙소비용을 날렸고, 바릴로체에서 예상 못한 시간과 비용을 지출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다음날 밤 바라스 근처의 마을인 뿌에르또 몬뜨 Puerto Montt행 버스가 있다는 것이었다. 어디다 하소연할 수 없을 정도로 한심함이 들이쳤다. 하나도 빠짐없이 내 탓이었다.


끝도 모를 한심함에 방 안에서 한참을 휘갈겼다. 몇 장 남지 않은 연습장에는 비난으로 채워졌다. 여행 중 차를 놓치는 해프닝이야 흔한 일이지만, 이건 하나서부터 열까지 모두 나의 나태와 오만으로 생긴 일이었다. 과거의 나 그리고 현재의 나는 여전히 한심했다. 다시 온 나를 축하해준다며 파티를 열었다는 친구들에게 “날 혼자 나둬”라며 방 속으로 숨었다.


익숙한 무력감이 날 감싸 안았다. 자아는 다시 과거의 동굴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똑같은 실패를 하고 언제나 같은 후회를 하고 있는 내가 보였다. 슬픈 표정을 하며 ‘버스는 이미 떠났어. 어쩔 수 없잖아’라며 자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위로를 받을 만큼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났던 나는 나에게 말했다. ‘변명하지 마. 네 실수야. 받아들여’


누구나 세상을 탓한다. 실제 자신의 탓이 아닐 수 있고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비참함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탓함으로써 벗어나는 괴로움은 아픔의 완화를 넘어 달콤하기까지 하다. 이것은 약에 의존해 건강을 지키는 것과 같다. 당장은 좋은 것 같아도 서서히 자신을 곪게 만든다.


나는 이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했다. 더 이상 제자리인 삶은 원하지 않았다. 여행처럼 삶도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 삶이 반복되는 후회로, 원망으로 얼룩지는 것을 더 이상 원치 않는다면 스스로의 치부와 마주해야 했다. 그제야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뿌에르또 몬뜨로 넘어가면 새삼 지구라는 존재가 얼마나 거대한지 확인할 수 있다. 버스를 탈 때 살며시 내리던 비는 국경을 넘으면서 거세졌고, 힘겹게 버스가 언덕을 올라가자 눈으로 바뀐다. 칠레 영토의 파타고니아는 계속 내리던 눈으로 얼음왕국을 만들었다. 3미터 남짓의 얼음벽 옆으로 엉금엉금 기어가는 버스 안에서, 한겨울 홋카이도에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경치를 보기 위해, 덤으로 나의 안일함을 고쳐주기 위해 절대자가 장난을 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인간은 실수를 한다. 그리고 실수를 통해 배운다. 그러니 실수해야 한다. 설령 다른 사람의 잘못이 더 크더라도 나로 인해 발생했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좀 더 나은 삶이지 않았을까?잘못을 인정한다해도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었는데 깨끗이 인정하고 받아들일걸 그랬다. 그랬으면 지금보다 더 괜찮은 내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거짓말을 이실직고하면 종아리 한대로 끝날 것을 끝까지 우긴 탓에 빨개벗겨 집에서 쫓겨나버린 꼴이다.


문제는 나로 시작되었으니 답 또한 나에게 있었다. 그러니 이제 괜찮다. 문제가 나인걸 알았으니 반복하지 않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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