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독 삼성에 가고 싶었다. 반도체 업종에서 일하고 있으니, 한 번은 세계를 선도하는 기업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때의 회사가 노고에 걸맞은 대우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직장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기왕이면 내 값어치를 인정하는 대기업의 높은 연봉이 필요했다. 하지만 굴지의 기업은 신분상승을 노리는 노동자를 외면했다. 두 번 아니 세 번 정도의 서류 제출은 단 한 번의 면접 기회를 창출하지 못했다. 잘 나가는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는 지인과 술자리를 가졌다. 그날 나는 취했고,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의 하소연과 대기업들의 그들만의 리그를 싸잡아 비난했다고 한다. 다음날 그로부터 받은 메시지에는 ‘힘내라,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말고’였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무척 억울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세상이 나에게만 시련을 주는 것 같았다. 경력도 있고 두 개의 외국어를 할 줄 알고 주인의식이 있는, 나름 회사에서 인정받는 산업역군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대접이라 생각했다. 속에서는 천불이 났지만, 그럴수록 더 열심히 회사를 위해 일했다. 어떻게든 위로(그것이 회사를 뜻하지는 않는다) 올라가기 위해 없는 시간을 쪼개 책을 읽으며 곧 좋은 시간이 올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지쳤버렸다. 열정은 불만이 되었고, 기대는 불평이 되었다. 구덩이에 떨어진 물방울이 가득 차 흘러넘치듯, 어쩌다 새어 나온 외마디 불만은 단어로, 점차 문장으로 바뀌어 주변인들에게 흘러갔다. 나정도의 노력이면 지금보다 괜찮은 곳에 갈 수 있을 거라 확신했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나에게 관심을 보내는 기업들은 비슷하거나 연봉이 조금 높은 그런 곳들 뿐이었다.
세상의 벽에 부딪혀 현실에 순응하며 시간이 흘러갔다. 우연히 보게 된 이력서를 보는데 불현듯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 하나..
‘나 정말 열심히 한 거 맞아?’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지만 이력서에는 직장에 있으면 자연히 생기는 경력, 그 외에는 눈에 띌 만한 게 없었다. 책장에 수북이 쌓인 책들은, 구매하고 한 번도 펴보지 않은 책이 대다수였고, 진지하게 미래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언제인지 생각나지도 않았다. 스페인어를 일 년 동안 공부했지만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Me gusta el café였다. “나는 커피를 좋아해”가 일 년 동안 공부한 전부였다. 문법책은 겨우 1/5만 펼쳐본 흔적이 있었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나는 내가 말한 것처럼 열심히 살지 않았다. 나를 내친 그들은, 나보다 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나는 그랬다. 말과 행동이 언제나 상충됐다. 거창한 계획과는 달리 새벽녘까지 휴대폰을 놓지 못했고, 생산적인 무언가와 상관없는 가십거리를 쫒았다. 마음먹은 것과는 거리가 있는 시간에 일어나 겨우 책상에 앉으면, 나태한 정신에 대한 자기 비난이 이어졌다. 더 노력해야 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왜 그렇게 노력해야 하는지 반항감이 휘몰아쳤다. 적당한 노력으로 부유해지고 싶었다. 성공하고 싶었지만 노력하긴 싫었다. 그러니 매일 다짐하고 지키지 못하는 자신을 비난했다. 그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열심히 살고 있다고 자위했다. 나는 그래 왔다.
삶은 헬스와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입이 떡 벌어질 멋진 몸은 아니더라도, 탄탄한 근육질의 몸을 만들려면, 힘들 정도의 무게를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 근육통의 강을 건너 다시 드는 걸 반복해야 몸에는 근육이 만들어진다. 물론 이것도 ‘헬스장으로 가야’하는 가장 어려운 고난을 넘어야 한다. 멋진 삶을 원한다면 ‘헬스장에 가는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힘들 정도의 ‘노력’을 매일 시도해야 한다.
이런저런 핑계로 책 표지에 먼지가 쌓이도록 놔뒀다 하루에 겨우 2~30분씩 공부하고서, 그나마도 야근과 회식으로 빼먹기 일쑤였다. 겨우 그 정도의 노력으로 막힘없이 외국어가 튀어나오길 바랬다. 끊임없이 더 빠른 길을 찾고, 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에 돈을 쏟았다. 그렇게 해서는 원하는 수준에 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주변의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걸 핑계 삼아 계속 그곳에 머물길 시도했다.
그랬다. 내 인생이 그렇게 하찮았던 것은 내가 그렇게 했었기 때문이다. 말로 모든 걸 늘어놓았던 결과였다. 김연아처럼 살고 싶었지만, 김연아처럼 노력할 마음은 없었다. 나에게 김연아의 성공 이야기는 그저 그녀가 김연아였기 때문에 가능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했다. 그래야 덜 초라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잘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저 그것을 하고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더 나아가 이렇게 시도라도 하고 있는 나에게 동정을, 위로를 건네주길 원했던 것일지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그들의 관심은 부담스럽다. 나아가 그들의 충고는 비참하다. 그래서 불쾌하다. 진심인지 비아냥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예의를 갖춘 타인의 조언에 밑천을 드러내 보인 것 같아 당황스럽다. 그래서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얼마나 노력 중인지, 왜 결과를 얻을 수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핏대 높여 설명했다. 초라해지지 않기 위해 만들었던 자기 방어는 페르소나가 되어 나 조차도 속여왔다. 열심히 하지도 않았으면서 열심히 살았던 것처럼, 그렇게 믿었다.
***
사람들은 벨리스 Beliz라는 나라를 잘 모른다. 중미를 여행했다는 여행자들도 벨리스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멕시코 아래 위치한 작은 나라, 중미에서 영어를 쓰는 몇 안 되는 나라, 멕시코에서 과테말라로 육로 이동을 하지 않는 이상 한국인이 구태여 올 이유가 없는 나라다. 하지만 이곳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관광객들이 몰린다. 6개의 색상을 갖고 있다는 케이 코커 Caye Caulker의 바다를 보기 위해서다.
바다 밑 산호와 해초가 수심이 가늠되지 않는 유리처럼 맑은 바닷물 아래 비친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이런 바다는 본 적이 없다. 그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다 보면 뜨거운 햇살이 부서지는 바닷물에 닿으면 색 바랜 무지개가 보트 머리맡에 드리운다. 과거에는 도톰했을 것 같았던 쿠션은 왜소해질 대로 왜소해져 이 보트가 실어 나른 관광객의 수를 가늠하게 된다. 파도에 보트가 요동치면 엉덩이로 느껴지는 충격이 모두의 비명을 자아낸다. 정말이지 카리브해는 올 때마다 감명스럽다. 영롱한 바다, 형형색색의 산호, 겁을 상실한 물고기 떼, 바닷물마저 달콤하다.
그곳에서 존을 만났다. 말을 시작할 때 “ok”와 “yo” “bro”를 내뱉었다. 첫인사부터 주먹을 내밀어 피스트 범프(주먹을 부딪히는 인사법)를 하자 힙합과 관련 있는 친구임을 직감했다. 예상대로 주말마다 디제잉을 할 정도로 힙합에 심취해 있는 친구였다. 자유가 몸에 밴 그의 직업은 부동산 중개인이었다. 그와의 대화는 놀람의 연속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수억 원대의 자산가였다. 물론 여행지에서의 해방감은 꽤나 많은 거짓말쟁이를 양산하곤 한다. 그의 사진을 보고 충분한 신뢰감이 갔고, 설령 그걸 믿는다 한들 나에게 손해는 아니었다. 그는 시드니에서는 나름 인지도 있는 파티 플래너며, 여행 칼럼니스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귀띔을 내게 했다. 그의 나이 고작 27이었다.
밤이 되자 내가 묵는 호스텔에서는 파티가 열렸다. 영어권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호스텔은 이런 파티가 흔하다. 그곳에 그가 있었다. 요란하게 울리는 비트 속에서 고개를 흔들며 열심히 타이핑 중이었다. 그는 오늘 며칠 전 칸쿤에 있었던 이야기를 기사화하기 위해 글을 적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에게 어떻게 하면 4개의 직업을 구할 수 있냐고 물어봤다.
“우선 내가 하고 싶은지 오랫동안 생각해. 일주일 동안은 내내 그것만 생각해. 책도 읽어보고 테드도 찾아보지. 하고 싶다는 생각이 어느 정도 들면 아주 약간의 시간을 내서 시도하는 거야. 그러다 확신이 들면 제대로 파고드는 거야. 그리고 결과가 있을 때까지 하는 거지”
실망하거나 중도에 포기한 적이 없냐는 말에 그가 답했다.
“엄청 많지. 그런데 모든 걸 다해낼 수는 없어. 시도했다는 것 그리고 그 순간에 최선을 다했으면 나는 괜찮아. 대부분 사람들이 왜 포기 못하는 줄 알아? 전력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삶은 공평해. 물론 어쩔 수 없이 안 되는 경우가 발생하겠지만, 대부분 잘 안 되는 이유는 그만큼 노력하지 않은 이유가 더 크다는걸 사람들은 몰라. 어쩌면 외면하는 것일 수 있겠지. 이걸 불평할 만큼 열심히 했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면 바로 답이 나오지.”
질투와 한심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너도 잘 알잖아’라는 표정으로 “말뿐인 삶은 아무것도 남지 않아”라고 말하는 그를 보며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파티를 즐길 수가 없어 방으로 내려왔다. 한동안 잠잠했던 마음의 호수에 파장이 일었다. 그렇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이 이어지지 않은 것은 내가 뱉은 만큼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나은 삶을 위해 꾸준히 무언가 하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학생이라면 공부를, 직장인이라면 일을 하게 된다. 직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몸과 마음은 지쳐있다. 그 상태에서 무언가 하겠다는 다짐도 어려운데 그걸 꾸준히 정진해나간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회사에 돌아와 겨우 씻고 자는 순간에도 정글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언가 배워야 한다는 압박에 둘러 쌓인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인생에서 다른 일이 일어나길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고 말한 아인슈타인의 경우를 들먹이지 않아도 결국 선택을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좀 더 나은 삶을 바란다면 지금 누운 침대에서 일어나야 한다. “내 나름대로 노력했어”라는 말은 위로가 될지는 몰라도, 결국 “더 노력해볼걸”이란 후회로 돌아온다.
반성한다. ‘내 인생이다’라고 말해놓고는 ‘내 인생’처럼 아끼지 않았다. 좀 더 내 선택을 믿고 그 선택을 좀 더 일찍 그리고 좀 더 꾸준하게 밀어붙였다면, 속이 체한듯한 질투나 자괴감을 느끼지 않았을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내 인생이니까 알아서 하게 놔둬라’라고 했다면 ‘내 인생’을 그렇게 나둬서는 안되었다. 다행인 건 너무 늦지 않게 깨달았다는 것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이라는 생각이 더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욕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