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힘들었던 때는 언제일까? 아마 이런 대답을 할 것이다. 갑자기 직장을 그만둬야 할 때, 사람들과 잦은 갈등을 빚을 때, 끝도 없이 우울할 때, 외로울 때, 반려자가 떠났을 때, 게다가 그것이 내 잘못일 때.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동시에 닥쳤을 때. 때론 삶은 칼 든 강도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직장 4년 차였던가, 팀장에게 사사건건 저항했다. 어느 조직에나 반항하는 부하직원이 있고, 인정하지 않는 상사가 있다. 당시 팀장의 행위가 나의 모든 업무에 걸림돌이라고 생각했다. 상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팀원들의 일상적인 뒷담화를, 팀장에 대한 반기로 곡해했다. 결국 터질 것이 터졌다. 어느 여름날 회식에서 큰 언쟁이 벌어졌다. 다음날 회사에는 나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하극상의 주인공, 포털 사이트에서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한 연예인의 기분을 알 수 있었다. 나쁜 의미로 말이다.
내가 반항할 수밖에 없는(하극상을 했던) 당시의 불합리한 상황을 대변해주지 않는 동료들이 미웠지만, 나 또한 같았을 거란 생각에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설령 내 주장이 맞다한들 조직의 일원으로 그래서는 안 되었다.
당시의 나는 그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직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이직 제의를 받고 있었고, 골라서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마치 그동안의 복선들이 잘 짜인 몰래카메라의 장치처럼 그 사건 이후 헤드헌터로부터의 연락도, 인원을 충원한다는 공고도 자취를 감췄다. 이제 팀장이 자르지 않길 바래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리고 창고로 좌천됐다. 좌천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생성했지만, 직장을 잃는 것보다는 다행이었다. 그리고 사랑했던 이와 이별했다. 누워도 잠들지 못했고 잠들어도 잘 수 없었다. 술 없이는 견딜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몸도 정신도 초췌해져 갔다. 그동안 외면했던 허리와 목에서 오는 통증이 디스크라는 진단을 들고 찾아왔다. 쌓여왔던 부모님과의 갈등이 폭발했고, 사람들에게 지쳐버린 나는 동굴로 들어갔다. 어느 누구도 만나지 않았고, 어떤 삶의 에너지도 찾을 수 없었다. 이렇게 죽으면 억울해 미쳐 버릴 것 같지만, 죽음이 온다면 구태여 막고 싶지 않았다. 우울증이라는 똥밭에 손을 내딛을 수 있을 때 생각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
미친 듯이 산을 찾아다녔다. 같은 산을 같은 날 두 번 타기도 했다. 몸안에 있는 억울함과 분노를 배출하기 위해 고단한 상태로 만들어야 했다. 밤에는 텐트를 들고 산으로, 비가 오는 날에는 걸을 수 있는 길이라면 어디라도 떠났다. 비가 오거나 장마 시즌에는 며칠씩 제주도에 머물며 걷기만 했다. 비에 몸이 젖어 몸이 무거워질수록, 과거에 범했던 과오에 대해 값을 치르는 것이라 생각했다. 걷고 걸으면서 나에게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지 곱씹었다. 몸이 녹초가 되는 날에는 긴 잠으로 마음이 평온해졌다. 고단했지만 잠잘 수 있어서 행복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뒤집힌 모래시계처럼 고통은 되풀이되었다. 현실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지만, 현실은 언제나 도망치기 전 모습 그대로였다. 주말에 산을 다녀온다 한들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다.
비가 억수같이 오던 날, 제주도의 한 오름에 올랐다. 물이 흐르는 바닥에 앉아 오름 아래를 생각 없이 바라봤다. 왜 빗속을 걷는지 언제부턴가 묻지 않았다. 다리가 뻐근하고 물에 젖은 등산화 속에서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도, 이 순간만큼은 평온했다. 회사에 일이 생겼는지 단체 채팅방이 난리통이 이어졌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나를 위한 시간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될 대로 되라는 생각도 컸다. 예전 같았으면 애간장이 타들어가 여행을 망쳤을 것이다.
앳된 모습의 한 여자가 올라왔다. 낯이 익다. 아까 편의점에서 파란 우의를 샀던 여자다. 허리를 숙여 가쁜 숨을 몰아 쉬는 것 같더니, 소리치기 시작한다.
“개새끼야. 잘 먹고 잘살아라. 너한테 마음 준 내가 병신이다. 내가 다신 병신 짓 하나 봐라. 못살아라. 잘살지 마라”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나온 삼순이가 생각났다. 그녀는 과거의 인연을 내치기 위해 비 오는 오름에 올랐다. 힘들 땐 이렇게라도 털어내는 게 도움이 된다.
***
액티비티의 성지라고 불리는 에콰도르 바뇨스 Baños에서 서핑을 하기 위해 몬타니타 Montañita로 향했다. 야간 버스의 좌석은 생각보다 좁고 불편했지만, 아침부터 서핑할 생각에 설레는 마음이 더 컸다. 표를 사면서 몇 번이나 확인했음에도, 직행이라던 버스는 승객이 내리고 타길 반복했다. 내가 아는 직행의 의미가 이곳 사람들과는 다른 모양이다. 신경 쓰였지만 그것뿐이었다. 이런 것들은 길에서 듣는 치노(chino, 스페인어로 중국인)라고 듣는 것만큼 흔하다. 그때까지도 그것이 여행을 포기할 정도의 사건을 만들 것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버스는 산타 엘레나 Santa Elena에 도착했다. 무릎에 어깨끈을 걸어놓은 가방을 들 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머리를 스쳤다. 가방은 해부당한 개구리 배처럼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안에 있던 전자제품 모두를 털렸다. 좌석 밑을 보니 막혀 있어야 할 의자 아래 공간이 뚫려 있었다. 저기로 기어 들어와 가방을 열어 가져 간 것이다. 노트북, 카메라, 액션 카메라가 사라졌다. 버스 안에는 일부 승객이 있었지만 이미 수차례 승객이 내리고 올랐는데 그들의 짐을 확인할 수도 없었다. 버스를 뒤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짐칸에 숨겨두었을까 찾아보면서 수차례 내리고 오르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맨 뒤쪽 좌석에 자주 보던 물건 하나와 마주했다. 내 여권이었다.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 여권지갑 사이에 숨겨둔 300불마저 가져갔다.
차량 안에는 카메라가 달려있었다. 카메라에 찍힌 영상을 보자고 했더니 그건 가짜라고 했다. 터미널에 사설 경찰로 보이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자기는 경찰이 아니라 아무 권한이 없다고 말한다. 보조 운전수 포함 2명의 기사와 사설 경찰은 나의 절박한 상황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이를 훤히 드러내며 웃음을 지었다. 경찰을 부르기 위해 사설경찰에게 휴대폰을 빌려달라고 했더니 휴대폰이 없다고 한다. 방금까지 문자를 보내는 것을 봤다고 말하니 그건 내부용이란다. 기사들에게 말했더니 자기들은 휴대폰이 없다고 한다. 경찰을 부를 테니 잠시 기다려달라고 했더니 그건 너의 사정이며 우리들은 빨리 가서 쉬어야 한다며, 알아서 하라는 말을 남기고 버스는 떠났다. 2017년 6월 6일 에콰도르 산타 엘레나 터미널에서 발생한 일이다.
동이 트면서 터미널은 번잡해지고, 타임랩스를 켜놓은 듯 분주한 사람들 속에 움직임 없는 길 잃은 여행자가 있었다. 결국 경찰을 부르지 않았다. 아무런 정황도 증거도 없었고, 경찰도 저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에콰도르라면 아니 라티노(스페인어를 쓰는 사람들을 통칭한다)들이라면 진절머리가 났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있었다.
중남미 국가를 다니다 보면 가장 많이 접하는 부분이 빈부격차다. 여행 내내 이것이 나를 움츠리게 했다. 운이 좋아 한국에서 태어난 내가, 운이 나빠 이곳에서 살게 된 이들과 마주할 때면 이 여행이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결국 도달한 대답은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였고, 한국과 라틴문화를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릴 생각이었다. 모든 수익은 기부할 것이고 누군가를 도울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당시의 스페인어 실력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잠시 여행을 멈추고 콜롬비아에서 6주 동안 스페인어 공부에 열중하기로 했다. 누군가를 도우면서 나도 성장할 수 있으니, 그것에 소비되는 시간과 비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매일 12시간이 넘도록 스페인어만 생각하던 시간이었다. 쉽지 않았지만 고되지는 않았고, 틈틈이 영상을 만들며 편집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들이 가져간 노트북에는 업로드 대기 중인 영상들이 저장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동안 백업 안 한 두 달 반치의 시진과 일기가 있었다. 배신감은 분노로 번졌다.
몬타니타에는 먹구름이 가득했다. 호스텔을 운영한 지 4년째라는 주인은 호스텔을 연 이래로 일주일 내내 비구름이 도시에 머문 적이 없었다고 했다. 게다가 그 구름은 5일 정도 더 머물 거란 말을 했다. 서핑할 기분도 아니었지만, 시커먼 하늘은 더욱 날 울적하게 했다. 먹구름과 거센 파도를 보며 내뱉은 욕은 살면서 한 번도 입에 담아본 적 없던 것들이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기록을 잃어버린 상실감, 알아주길 바랬던 건 아니었지만 몰아치던 배신감, 우울감이 합쳐져 무기력의 끝으로 나를 밀쳐버렸다. 아침 7시부터 해변의 야자수에 앉아 끝도 없는 생각을 했다. 이런 기분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았다. 그곳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비 내리는 해변의 야자수 밑에 앉아 술 마시는 것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지쳐있었다. 총 30kg의 배낭들을 메고 이동하는 생활이 지쳤고, 여행 후 삶을 위해 매일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압박감에 지쳤다. 행복을 찾는 것도 행복한 척하는 것에도 지쳤다. 불안하고 힘들고 아프고 괴로운 적이 많았지만, 꿈을 따라 세계여행을 떠난 청년은 누구에게도 투정할 수 없었다. 적어도 남들에게는 행복에 겨운 소리에 불과했기에.
여행이 지겨웠지만 멈추고 싶지 않았다. 아직 눈으로 확인해볼 것들이 너무 많았고, 그런 외부적 요인들에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 국경에서도 억류당하고 경찰에게 체포당할 뻔하고 총격전도 겪었는데, 겨우 이런 걸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친척동생의 말대로 전자제품 정도는 다 털려봐야 진짜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모든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아무 생각도 안 하기로 했다. 텅 빈 열정의 기름통에 기름이 다시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 그곳에 있는 동안, 아침 6시부터 하루 종일 야자수에 앉아 술만 마셨다. 머릿속을 텅 비운 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을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계속 여행을 하기로 했다.
그렇다. 나는 내려놓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원치 않았던 상황이었지만 삶의 브레이크는 목적지만 생각하면서 달리던 몸과 마음의 부품들을 식혀줬다. 내게 부여된 부담들을 내려둠으로써 계속해야 하는 것인지 의미를 점검하게 한다. 삶이라는 여정을 거치다 보면 온갖 것들이 몸과 마음에 달라붙는다. 삶이라는 긴 여정을 위해 가볍게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멀리 가려면 몸이 가벼워야 한다. 그러니 지쳤을 때는 다 멈춰야 한다.
그럴 때가 있다. 어느 것 하나 안될 때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 태양이 쨍한데 끝도 없이 우울할 때,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사랑하는 이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타인의 응원이 슬플 때, 혼자의 시간이 익숙할 때,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누군가의 애정이 그리워 더욱 집착하게 된다. 혹시라도 그때 이별을 겪게 되면 혼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또는 내 탓이라는 죄책감에 감당할 수 없는 대미지를 입게 된다. 안타깝지만 그럴 때는 다 내려놓는 방법밖에는 없다. 사랑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때 대부분 사랑이 이별을 맞이한다. 나도 내가 통제가 안되는데, 누군가를 보듬어줄 수 있는 여력이 없다. 그러니 지금의 이런 나를 이해해 달라고 말할수 없다면 놓아주는 것이 모두에게 나은 답안지다.
옷이 더러워지면 세탁기에 넣고 빨아야 한다. 알몸이 된 우리는 옴짝 달짝할 수가 없게 된다. 이때가 인생의 힘든 시간이다. 할 일이 산더미지만, 더럽고 냄새나는 옷을 입고 계속 지낼 수는 없다. 더 나은 걸음을 위해 마음을 홀딱 벗기는 시간이 필요하다.
할 수만 있다면, 과거에 힘들어했던 나에게 이 말을 해줬으면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조바심을 버리고 그 시간을 버티게.
괜한 헛발질로 늪에 빠지는 일을 반복하지 말게.
그러니 의미 없는 생각을 그만두고, 울상 짓지 말고, 눈앞에 펼쳐진 태평양의 폭풍우를 즐기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