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한 변명입니다

토레스 델 파이네

by 김훈

치열한 고민을 거친 생각도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진다. 회사를 그만두기까지 나의 고민도 그렇다. 밤잠을 설치며,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던 생각의 통증들은, 이제는 기억의 편린으로 깊은 곳에 방치됐다. 대부분 현재의 바쁜 삶에 덮여 희미해졌지만 그럼에도 당시 나의 상태만은 분명히 기억난다. 나는 완전히 지쳐있었다.


삶과 일의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일과 스트레스는 한 개체라고 믿었다. 때문에 그걸 분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간간히 해소해주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방전된 몸을 이끌고 아무리 좋은 곳을 다녀봤자 도무지 충전되지 않았다.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었다. 삶의 불균형의 화살을 회사 탓으로 돌려봤다. 곧 알게 되었다. 그건 완전히 틀린 해결책이었다. 정작 범인은 내 안에 있었다.


우유부단했다. 해보고 싶은 것, 다소 무모해 보여도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시도하지 않았다. 변화를 바라는 자아와 소득 없이 끝날 미래를 걱정하는 자아가 충돌했다. 지켜보던 나태함이 언제나 승리자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이 마음 편했던 것은 아니었다. 몸은 침대를 떠나지 않았지만, 입은 언제든 모험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말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휴대폰과 메일은, 나태 천국에서 허우적대는 나를 변론할 구세주였다. 좋은 핑곗거리였다. 무언가 할 수 없었다는 적극적인 변명이었다.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내면 어김없이 괴리감이 찾아왔다. 괴리감을 희석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여행을 다녔다. 전국에 유명하다는 장소와 축제를 맹목적으로 쫓아다녔다. 하지만 주말이 끝나면 더욱 피곤함이 몰려왔다.

‘주말을 보내고 나면 더 힘든 걸까?’
‘여행을 다녀와서도 채워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그러다 등산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산에서 자고 오는 ‘비박’에 흠뻑 빠졌다. 격렬한 산행 끝에 시커먼 어둠의 정적에 휩싸일 수 있는 시간을 갈구했다. 불빛 한점 없는, 들리는 것이라고는 야생의 생존 소리, 그곳에는 오직 나와 대화를 갈망하는 나만 있었다. 주말 내내 산속에서 나와 이야기했다. 비박 후 돌아오는 길은 머릿속이 시원해지고 팔다리에 무언가 힘이 솟았다. 무언가 깨달았다고 생각했고, 오래는 아니더라도 당분간 삶을 이끌어줄 원동력이 돼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월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나는 질려버렸다. 스트레스를 덜고 덜어도 현실로 돌아오면 그대로인 현실에 말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모두 지쳐버렸다. 그래서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현실에 무릎 꿇었다. 선택 앞에서 매번 갈팡질팡 했고, 결국 아무 선택도 하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 회사에 머물기로 했고, 도전을 마다하고, 마음에서 하는 소리에 귀를 닫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이 나눠갖던 정신적 압박은 마음이 도망치자 모두 몸에게 갔다. 두통, 근육통, 원인을 알 수 없는 어지러움, 불면증 등등. 여행을 가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몸은 쉬고 있지만 마음은 알고 있다. 현재로 돌아가면 이 스트레스들이 다시 되돌아올 것을 말이다. 결단이 필요했지만, 무엇도 선택하지 못한 채 자신을 좀먹고 있었다.


돌아보면 몇 번의 선택이 주어졌었다. 은연중 바랬던 것이었으니, 못 이기는 척 잡아도 되는 기회였다. 다른 부서로 지원, 이직, 퇴사 등. 하지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가 두려웠다. 현실을 유지하며 위험을 줄이려고 노력했지만, 때론 삶에선 둘 중 하나에 몸을 던져야 할 때가 있다.

직접 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매번 머물길 선택했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저 상황이 나를 비켜주길 바랬다. 실패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다. 결국 지금의 스트레스는, 과거 선택들을 외면했던 벌인 셈이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는 변했고, 몇 번의 도전을 맛보고 퇴사를 통보했다. 그리고 세계를 돌아보기로 했다. 우연히 길에서 아는 이를 만났다. 영어 모임에서 알게 된 그는 오래전부터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고민하고 있었다. 경험자로써 그에게 성심껏 이야기를 해줬지만, 결국 ‘해보니 정말 좋았다. 그걸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걸 재차 강조했다. 그의 표정으로 말미암아 금방이라도 호주행 티켓을 구매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는 여전히 일 년 전의 선택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더 알아봐야 한다고 했다. 그에게서 과거의 나를 본다.


***

토레스 델 파이네. 칠레에 있는 국립공원으로써 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꼭 한번 방문하길 희망하는 곳이다. 태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한번 온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끔 만드는 그런 곳이었다. 성수기 때 산장은 3~4개월 전부터 예약이 끝나지만 비수기 때는 한가한 편이다. 대신 성수기 때 볼 수 있는 화창한 토레스는 장담할 수 없다. 비수기에는 시도 때도 없이 비와 눈을 동반하고, 태풍에 버금가는 바람에 몸이 휘청 거릴 정도다. 그래서 토레스에는 각각 한 번씩 와야 한다. 거친 자연 앞에서 삶에 감사하는 방법 그리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삶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해 준다.


비수기의 그곳에서 3박 4일은 고난 그 자체였다. 아침저녁으로 내리는 비로 텐트 안은 물로 흥건했다. 마른 적 없던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산속을 헤치는 바람은 사람이 텐트를 잡고 흔드는 것처럼 요란했고 요람처럼 양옆으로 들썩 거렸다. 혹시나 텐트가 굴러서 저 토로 Toro 호수에 빠지는 것은 아니겠지, 말도 안 되는 상상인걸 알면서도 잠들지 못했다. 컨디션은 계속 나빠졌고, 4일의 식량과 숙박 장비가 담긴 가방은 어깨를 후벼 팠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우비가 시야를 덮쳐 계단을 굴러 한동안 꺼내지 않은 욕도 나왔다. 무엇보다 야속했던 것은 이틀 내내 한 번도 태양을 보여주지 않은 하늘이었다.

죽도 삼일째가 되니 질렸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약간의 쌀과 죽, 햄으로만 버텨왔다. 몸은 움직이길 거부했다. 한 줌의 태양이 필요했다. 양말을 말려줄, 한 번쯤은 젖지 않은 등산화를 말이다. 눈을 찡그릴 정도의 태양은 아니더라도 이곳까지 온 수고를 봐서라도 나에게 태양을 내어준다면, 어제 계단에서 굴러 시큰거리는 발목 정도는 용서해줄 요량이었다. 비가 다소 그쳤지만 바람도 여전했고 구름에 가려 밖은 초저녁처럼 어두웠다.

그레이 Gray 빙하에 가야 했지만 의욕이 나지 않았다. 아침 7시 반이 되었지만 다들 지쳤는지, 아니면 이 날씨에 빙하에 간다 한들 그다지 볼 게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텐트를 품은 숲은 조용했다. 뒤집으면 물이 떨어지는 등산화에 발을 밀어 넣으며 생각했다.

매일 먹던 죽쌀햄


‘무엇을 위한 트레킹인가.
어차피 비 오는 날 빙하는 물에 녹다 만
얼음덩이 아닌가?’
‘그냥 오늘 배 타고 나갈까?’


삼 일간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못 먹고, 실망했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은 '여기까지 왔는데 가봐야지'라는 생각을 이성에게 가도록 놔두지 않았다 실망스러운 풍경에 지쳤다. 어쩌면 해가 뜰 거라고 더 이상 희망 고문하고 싶지 않았다. 반드시 끝까지 가볼 필요는 없었다. 때론 가보지 않아도 끝이 보일 때가 있는 법이다. 나는 충분히 지쳐있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과거처럼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를 지레짐작하며 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실망하기 싫어 시작하지 않아 놓고는 무심한 척 자위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걷기 시작했고 기적이 일어났다. 그레이 빙하에 도착하기 직전부터 구름이 걷히더니, 강렬한 태양은 빙하에 반사되기 시작했다. 2년의 여행에서 손꼽을만한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레이 빙하 (pc로 보면 더 감동)

젖은 땅 위의 이끼는 차가웠지만 따뜻했다. 빵은 눅눅해져 육포와 같았지만 그때 행복감에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힘든 컨디션으로 이곳에 올라와준 몸도, 비바람이 예상되었지만 이곳에 오는 걸 동의한 나에게도 감사했다. 처음으로 마주한 마른 돌에 앉아 언제인지도 모를 세월부터 이곳에 있는 빙하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좀 더 여행을 빨리 했다면,
삶이 더 빨리 달라지지 않았을까?’


2년 동안 공부했던 중국어를 그만두고 스페인어에 집중하기로 했었을 때, 나는 괴로웠다. ‘언어 선택에 왜 좀 더 신중하지 못했는지’ ‘실력이 늘지 않아 도망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선택이 헤픈 자신을 비관했다. 하지만 조금 덜 신중하고 하고 싶은 것에 과감하게 배팅한 것, 이건 칭찬받아 마땅했다. 스페인어가 힘들어 잠시 접어두고 마음속에만 간직했던 아랍어와 포르투갈어를 시도하지 않았다면 스페인어가 나랑 꽤 맞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서른다섯에 배운 춤, 남들과 다른 여행을 만들기 위해 공부한 스페인 역사, 등산과 비박을 통해 쌓아 온 생각들, 꾸역꾸역 읽어둔 책들, ‘그걸 해봤자 무슨 소용이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행동을 ‘선택’ 하지 않았다면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 빙하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일을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선택함으로써 후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여행 역시 그랬다. 수년 동안 세계여행을 준비하고 떠나기로 결심하고 결국 행동에 옮겼다. 주변의 수많은 걱정이 몰아쳤지만 적어도 나 자신에게만은 솔직하기로 했다.

'그걸 해도 된다. 요구할 정도로 충분히 노력했으니 이제 해도 된다'

지금보다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이걸 선택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수동적인 삶을 한탄하며 스스로를 좀먹고 있었을 것이다. 단언하건대 그곳에 머물렀다면 지금 느끼는 것들은 평생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불안한 선택이 시간 만료로 흘러가길 바라고 있을 때, 두려움에 눈 감아 놓고 '내 그럴 줄 알았지'라고 자위할 때면, 어김없이 설경구가 내 앞에 서서 이렇게 소리친다.

“비겁한 변명입니다”

이 정도 경치면 눈물 정도 흘려도 되지 않을까

미래를 향해 발을 내딛는다는 건 공포스럽다. 그것을 위해 많은 것을 감수해야 한다. 설령 선택이 옳았다 하더라도 결과는 매정할 수 있다. 그러니 선택을 하던, 하지 않던 자책할 필요는 없다. 누구나 자신의 삶의 기준이 있고 준비가 필요하다. 타인의 선택에 조급함을 가질 필요가 없다. 결국 각자 정확한 타이밍을 잡아낼 것이다.

다만 하나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흐른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유한하기 때문이다’라던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마음속에서 울부짖는 그것을 외면하고 살아가기에는 삶이 너무 짧다. 결국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옳은 선택을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시도해야 한다.


어쩌면 삶은 예측되는 변수 모두를 대비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한 변수들에 충실했던 시간들이 모이면, 우리는 그것을 회상하며 ‘잘한 선택’이라고 부르게 된다. 만약 내가 무엇하나 선택하지 않았다면, 무심하게 흐른 시간은 똑같은 선택 앞에 다시 나를 데려다 놓았을 것이다. 선택해야 할 상황은 그대로인데, 나만 시간이 들어 쇠약해져 있다. 그러니 몇 년이 지나 같은 선택을 고민할 바에는 미숙하고 불안하더라도 지금 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오랜 기간 동안 고민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걸 하지 못하게 하는 나를 끄집어내 이렇게 물어보는 건 어떨까.

“비겁한 변명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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