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스트레스 받는 이유

에콰도르 만년설 코토팍시

by 김훈

드디어 만났다. 무려 3번의 조율 끝에 만나는 고향 친구들이었다. 일 년에 한 번은 피서를 같이 보내고 한두 번 정도 만나 술잔을 기울였지만, 취업을 하고 결혼도 하면서 애까지 생기니 만날 기회는 점점 더 사라져 갔다. 시골의 한 갈빗집, 거의 이 년만에 보는 친구들은 어제 만난 것처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아이가 있어 곧 들어가야 한다는 친구 A와 아직 창창한 나이에 백만 탈모인에 가입한 B의 머리가 숫자 3을 닮아간다는 게 달라졌다면 달라진 점이다. 미세하게 때론 격렬하게 모두 나이를 먹고 있었다. 먹고사는 이야기로 술잔이 채워진다. 다들 자신들의 자리에서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나 역시 그들과 다를 것이 없었지만 왜인지 나만 유독 힘이 없었다. 친구 눈에는 내가 힘들어 보였나 보다. 나 때문에 2번이나 취소된 책임을 물으며 친구 B가 묻는다.

“그래서, 살림살이 좀 나아졌냐?”

“글쎄, 모르겠다. 그냥 사는 거지” 내가 대답했다.


나, 꽤 열심히 살았는데 전혀 나아진 게 없는 것 같다. 밥 먹듯 야근을 하고 야식을 먹듯 주말근무한 것이야 회사 상황상 그렇다 쳐도, 새벽에 일어나 외국어 공부를 하고 이런저런 수업과 강연을 들으며 몇 년을 견뎌왔지만 달라진 건 없어 보인다. 흉년이 든 곳간처럼 자신감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위태롭게 거리를 메운 사람들이 보인다.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저들처럼 힘내자라고 자위하며, 한참을 뒤척이다 잠에 들었다.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지천에 깔렸는데 명확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다. 상사와의 종속적이고 일방적인 관계, 타협점이 보이지 않는 부모와의 갈등,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애초에 그것들은 내가 통제할 수 없었고 내가 원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빗물에 불어난 계곡이 거세게 몰아친 듯 매정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만신창이가 된 몸을 끌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바닥에 쓰러지는 것뿐이다.

‘나 오늘 뭐한 거지?’

한 움큼 쥔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흔적조차 없이 하루가 없어지고 있었다. 절명의 순간을 맞을 정도의 스트레스에 대한 유일한 위안은 당겨 쓴 채무의 상환을 마친 뒤 자리를 지키는 통장 속 숫자였다.

경력이 쌓인다고 그리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불안했다. 지금보다 나이가 더 들고 내가 갖고 있는 알량한 장점이 더 이상 장점이 아닐 때, 세상에서 내 쳐질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무언가 끊임없이 해야 했다. 배우고 또 배워야 했다. 언제쯤이면 이 현실이 끝날지 보이지 않았다. 곧 시들어 뿌리째 버려질 화분 속 꽃과 다름없었다. 그런 날의 연속이었다. ‘나 지금 뭐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 날 말이다. 삶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

이곳을 사랑한다. 처음 한 말은 아니지만 이말밖에는 내 기분을 설명할 미사여구를 찾지 못하겠다. 나는 에콰도르 만년설 ‘코토팍시 Cotopaxi’에 있다. 코토팍시는 에콰도르 중부에 위치하고, 화산 활동은 멈췄지만 분화구 사이로 가스가 분출되고 있어 여전히 활화산으로 분류된다. 코토팍시를 여행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산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 마차치 Machachi에서 머물면서 투어를 이용하거나, 도시 멀리에 위치한 산장에서 머무는 것이다. 코토팍시는 활화산이기 때문에 정상에는 올라갈 수 없고 약 5000m 즈음에 위치한 대피소까지만 산행이 허락되어있다. 하산 시에는 자전거를 이용해 내려올 수 있는데 화산활동으로 탄생한 자갈이 깔린 가파른 길 아래로 질주하다 보면 이곳 또한 볼리비아의 데스로드 Death Road-죽음의 길-과 다름없었다. 절대 잊지 못할 쾌감이다.


기왕이면 코토팍시와 가까운 곳에,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곳에서 지내기 위해 시크릿 가든 Secret Garden에 머물기로 했다. 콧속을 후비는 얼얼한 바람, 흰색 골무를 뒤집어쓴 만년설이 등 돌려 앉아있는 아이의 등처럼 보인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까이 있음에 혹시나 닿을까 몇 번이나 손을 뻗어본다. 나와 산사이, 녹색 블록을 빼곡히 박어놓은 듯한 드넓은 초원은 생각하는 것을 잊게 할 정도로 황홀했다. 눈이 녹아 흐르는 개울, 간혹 들리는 이름 모를 새소리, 선글라스를 비집고 들어온 햇살 그리고 만년설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시간 가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이곳에 마음을 뺏겨 버렸다.

흰색 골무를 뒤집어쓰고 뒤돌아 있는 아이를 닮았다

이곳에 있으면 트레킹은 원 없이 할 수 있다. 눈높이에서 바라보던 초원과 뒷 목을 꺾어 올려다보던 산을 발밑에 두면 세상살이로부터 받은 가슴속 노폐물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외딴 산장의 하이라이트는 스무 명 정도는 너끈히 누울 수 있는 대형 해먹이다. 인간을 제외하고 공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서의 밤을 생생히 기억한다. 양말을 두 개나 신는 완전무장도 모자라 담요를 둘둘 몸에 말고서야 해먹에 눕는다. 영하 20도를 훌쩍 밑도는 산은 이곳의 진면목을 보려면 그만한 값을 치러야 한다며 이가 덜덜 떨리는 추위를 선물한다. 이내 추위는 눈앞에 쏟아져내리는 별을 보느라 잊힌다. 한 겨울 양구에서 야간 보초를 섰을 때는 그 한 시간이 죽을 것만큼 힘들었는데, 춥지만 따뜻한 느낌이 아리송하다. 모든 것이 사람 마음에 달린 것 같다. 따뜻한 마음은 심장을 몽둥이질 하고, 따뜻한 피는 온몸으로 배달된다.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에 취해 잠들다 깨다 보면 새벽 즈음 관리인이 얼어 죽을 셈이냐며 깨웠다. 이곳 역시 더할 나위 없었다.


영토 법상 산장은 에콰도르에 있지만 구성원은 UN이다. 중남미 사람이 이용하기 부담스러운 금액도 이유겠지만, 외국인 관광객을 주로 유치하기 위해 지어진 곳이다 보니 직원 빼고는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주로 방문한다. 그러니 방문객은 자연스레 유럽 또는 북미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침략자들로 이루어진 점령지인 셈이다. 그곳에서 만난 영국인 커플은 5년 동안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그들의 입을 통해 들은 한국인은 흥미로웠다. 그들이 말하길 한국인은 전설속에 나오는 엘도라도 El Dorado-황금향-을 찾는 스페인 침략자처럼 보였다고 했다. 한국인은 힘들어 죽을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지옥 같은 직장으로 향하고 있고, 삶이 재미없다고 말하면서도 50살까지는 그렇게 살 거라고 한다. 8살 딸의 영어학원비를 벌기 위해,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도 보지 못한다며 한국의 현실을 꼬집었다. 항변하듯 내가 말했다.

“그것이 자원도 없고 인구도 없는 한국이 발전해온 방식이야. 또한 다들 어쩔 수 없는 삶의 방향이 있지”

“하지만 다들 행복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나라를 헬조선이라고 하면서 그것 벗어날 방법은 이민밖에 없다고 말해. 정말 그것밖에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 그들이 답했다.

우리는 한 번도 본적 없는 엘도라도를 찾느라 한 번뿐인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스페인군이었다. 아이에게 영어보다 아빠 엄마가 필요하단 걸 정말 몰랐던 걸까? 지옥 같은 직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니 지옥 같이 느끼지 않기 위해 내가 했던 것은 무얼까? 나조차도 헬조선이라고 말하면서, 이번 생은 망했다면서 정작 현실을 바꾸기 위해 나는 무엇을 했나? 향긋하고 따뜻한 버섯 수프와 짜릿하게 달콤한 와인과는 어울리지 않는 불편한 현실이었다.


한 철학가가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이 고통스러운 것은 바뀌지 않는 현실이 아니라, 바뀌지 않는 걸 알면서도 바뀌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집안의 완강한 아버지의 정치성향처럼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그 현실이 바뀌길 바란다. 하지만 바라는 것에서 끝난다. 바뀌지 않는 현실만 탓하고 있으니 마음에 병이 드는 것이다. 나를 바꾸는 고단함보다는 현실을 불평하는 것이 편했다. 일찍 일어나지도, 늦은 밤 눈을 비비며 공부하지 않아도, 삶에 대한 머리 아픈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분별없이 먹어댔던 밀가루가 몸속 체지방으로 변환되어 호르몬을 교란시키듯, 지속된 스트레스는 나의 정신과 신체를 빠르게 좀먹기 시작했다. 결국 내가 졌다. 이런 식으로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으니 내가 바뀔 수밖에 없었다.


나를 둘러싼 스트레스 중 주 요인은 업무상 메일이었다. 실체가 없는 편지에 의해 상처 받고 다시 상처주길 반복했다. 언젠가 직장상사가 말했던 ‘완성된 메일 다시 보기’를 시도해봤다. 휘몰아치던 감정이 한차례 지나가니, 칼 위를 춤추듯 살수를 날리는 메일을 굳이 보낼 필요가 없었다. 설령 조금 기분이 나쁘다 한들 이런 메일을 보내서 똑같이 상대에게 보복할 필요는 없었다. 답신을 써놓고 다시 보는 횟수를 늘려갔다. 변화는 즉각적이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려 노력했던 답장에 모두가 온순한 양으로 변하지는 않았지만, 감정 소모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자신이 심했다며 사과를 하는 사람도 생겼다. 무엇보다 참조에 달려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에게 나는 괜찮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었다.


여행을 통해 깨달은 것이 많지만, 특히 매 상황에 녹아드는 방법을 알았다는 것이 기쁘다. 나미비아의 한 마을에서 추장의 권유에 무대에 올라 백 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원주민의 췄을 때도, 콜롬비아 칼리에서 내로라하는 살사 댄서들 사이에서 살사를 추던 것도 나를 바꾼 행위였다. 살사 출 줄 모른다며, 살사밖에 없는 칼리에 온 걸 후회해봤자 내게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저 한번 춤춰보면 되는 것이다. 그래도 나와 맞지 않는다면 내일 아침 짐을 싸서 다른 도시로 가면 된다.


우리가 사는 곳은 어쩔 수 없는 문제들로 가득 찬 곳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애초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머리 싸매고 고민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막을 수 없는 문제를 앞에 두고 “하필 왜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나에게 왔니?”라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하면 널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고 물어보는 건 어땠을까? ‘내가 왜 그걸 해야 하는데?’라며 온몸으로 거부하며 질질 끌바에는 한번 해보고 깔끔하게 포기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토록 스트레스받았던 것은, “조금도 피해보지 않겠다”는 이기심과 “나는 절대 바뀌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너도 바뀌지 않았으니까!”라는 고집 때문이었다. 상황만 바뀌길 바라며 스트레스를 받을 바에는 내가 조금 상황에 맞춰보는 노력을 했다면, 어쩌면 세계여행 같은 큰 변화가 필요 없었을지 모르겠다.


대형 해먹에 누워 별을 보던 날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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