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지면 삶은 충만해지고 세상은 우리를 중심으로 공전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졸린 눈을 비비며 모닝콜을 해주며, 부모님에게 조차 해드린 적없는 요리를 한다. 대가없이 상대의 성공을 바라며, 내 삶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의문인 위태로운 상태에서 조차, 사랑하는 이를 위로하는 초인적 힘을 발휘한다. 사랑을 속삭인 시간이 길어질 수록 우리는 사랑에 무뎌진다. 그리고 사랑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갈때쯤 사랑이 끝날 가능성도 높아져간다.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했지만 상대는 만족할 줄 모른다. 사랑을 이용하는 이들도 있다. 나 역시 그런 비판에서 자유로울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비켜가 줬으면 하는 이별은 언제나 내 주위에 도사리고 있다.
한때 연애 르포 형식의 프로그램이 유행했다. 묘령의 여인이 남자친구를 유혹하는 동안 원래 여자친구는 냉동트럭 안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다. 사랑을 확인 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런 형식의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의 연애사를 들춰 불특정 다수의 비난을 불러일으키는 프로그램을 경멸한다. 사랑을 배신하고 상대를 이용한 것은 욕먹을 일이 맞지만, 일면식도 없는 시청자들에게 비난받도록 하는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함량 미달의 프로그램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곳에 나오는, 배반당하거나 배신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정한 유형을 띈다는 점이다. 처음이 아니며, 그것으로부터 학습하지 못했다.
사기를 당했다면 사기당한 원인에 대해 생각해본다. 시험에 실패하면 문제를 복기하여 틀린 원인을 들여다보고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반면 사랑에 실패하면 우리는 상대에게 잘못을 전가한다. 울고불며 나를 떠난, 혹은 이별을 먼저 말하게한 상대를 비난한다. 그리고 외로움을 참지 못해 이별을 마주할 새도 없이 다른 사랑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같은 이별을 반복한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횟수만 늘었을 뿐이지, 시작과 끝은 출생의 비밀로 시작해 가정의 화목으로 끝나는 주말드라마와 다르지 않았다. 넘어 올만한 상대를 탐색하고 상대의 관심사를 공략했다. 책에서 얼핏 본 얄팍한 지식을 들먹거리며 상대가 마음을 열었을때는 과감하게 고백했다. 이 고백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친구로도 함께 할 수 없다는 협박도 함께였다. 평균 이하의 외모로는 보유하기 힘든 저돌성 덕분에 몇몇의 친구들과 교제할 수 있었고 얼마가지 않아 헤어졌다. 나는 그것을 ‘인연이 아니어서’, ‘세상의 반은 여자’라는 자기 승리급 정신력으로 합리화 했다. 결국 땅을 치고 후회하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에 말도 안되는 이유로 그녀와 이별했다. 이별을 하고 삼 일을 굶었다. 그리움에 사무쳐 꾹꾹 참았던 마음을 밀어내고 그녀에게 구걸했다. 그녀는 나를 만나줬다. 다시 만나기 위함이 아니라 확실한 이별을 고하기 위해서였다. 십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그녀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오빠를 만나면 좋은데 불안했어. 혹시 오늘도 싸우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싸울때마다 오빠가 지적한 ‘내 잘못한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잘못만 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들게 하더라고. 힘들었어. 만날수록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는데, 그만큼 자존감을 갉아먹었어. 아마 오래전부터 이별을 생각했던 것 같아. 다만 그러기에는 내가 오빠를 너무 좋아했다는 거지. 먼저 헤어지자고 해줘서 고마워”
한번의 말다툼에도 지려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상대가 날 이해해 주기를 바랬던 것이었을까? 성향 차이는 어쩔수 없다 하더라도, 그걸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긴 했었나? 떨어진 벽돌에 맞은 날벼락 같은 이별을 곱씹으며 다신 그런 덜 떨어진 사랑을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철저히 반성했다고, 많은걸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번의 인연을 거처, 인생을 담보할 사람을 만났다. 하지만 또 다시 비슷한 이유로 상대가 떠나도록 만들었다. 나의 이별은 계속 반복됐다.
나는 사랑을 해서는 안되는 사람이었다.
***
멕시코의 레알 데 카토르세 Real de catorce는 매우 특이한 마을이다. 거주인구가 천명도 안되는 마을에는 수십배가 넘는 관광객이 몰린다. 과거 외세의 침입에 항전했던 14명의 병사들의 모습에서 비롯된 영광스러운 이름과 달리 이곳은 유령 마을 El Pueblo fantasma로 불린다.
과거 유명한 은광이었고 일확천금을 꿈꾼 사람들로 마을은 호황을 이뤘다. 마을은 발달되고 은광 가까이 작은 마을들이 생겼다. 이후 은 가치가 폭락하면서 사람들은 마을을 떠났다. 결국 시장이 있던 주 마을을 제외하고 은광 주변 소규모 마을들은 건물만 남겨졌다.
유령마을 Real de Catorce
비온 날 소가 밟고 지나간듯, 분지형 마을에 보름달이 비치면 산 중턱 버려진 마을의 형태가 멀리서도 보인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벽돌 틈새를 지나며 남긴 마찰음이 현세의 귀에 도달하면,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유령들의 구슬픈 노래소리처럼 들린다. 이 스산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을 스치면서 마을에 활력을 안겼다.
이곳은 놀라울 정도로 추운 곳이다. 유령도 밖으로 나올 용기를 내지 못할 무자비한 한기가 맴돈다. 분지의 특성상 해가 사라지면서 공기가 차가워지고 그 공기는 빠져나가지 못한채 유령처럼 분지 속 마을을 밤새 돌아다닌다. 11월 중순임에도 혹한기 저리가라할 정도의 추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옷을 껴입고 숨이 막힐듯한 두꺼운 솜이불을 덮었음에도 추위는 가시지 않았다. 그곳에서 호스트 M을 만났다.
독일 태생인 그녀는 몇 년전부터 이곳에 터를 잡았다. 두번의 이혼, 삶을 놓다시피한 세월만 3년이었다. 비참하게 주저 앉은 삶을 인정할 수 없었다. 쓰러져가는 자신을 붙잡기 위해 상대를 원망했고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이곳에 왔다. 관광객이 아닌 이상, 400가구 남짓한 마을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녀가 하는 일이라고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원망할 뿐이었다. 가끔은 삶이 멈추길 바랬다.
넉넉했던 잔고는 조금씩 바닥을 보였고, 공과금이라도 벌 겸 숙박업을 시작했다. 전세계에서 오는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그녀는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모두들 과거를 후회하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죽을때까지 실수를 반복할 수 밖에 없어. 그러니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지”
새카만 어둠이 마을을 순찰중인 새벽 4시, 유령 도시를 향해 문 뒤에서 날 기다리던 차가운 공기를 몸을 밀어넣었다. 마을에서 토하는 조명이 비친 분지의 모습을 보며 말없이 서 있었다. 나의 멋짐을 만끽하라며 무심하게 카메라를 바라보는 모델처럼, 반딧불이가 반짝이듯 힘없이 깜빡거리는 오래된 거리의 조명들이 좁은 거리를 비치고 있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이질적인 모습에 약간의 위압감마저 풍겼다. 옹기종기 모여있던 한기는 코속을 습격해 잠자던 털들을 얼려버렸다. 이질적인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해결하지 못한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왜 실수를 반복할 수 밖에 없는걸까? 언제까지 이별을 해야 하는거지?’
알수 없었다. 어제까지 골머리 싸매던 질문이 오늘이라고 떠오를리라 없었다.
첫번째 유령 마을에 도착했을 때 분지에 가려져있던 태양이 빼꼼 머리를 드밀었다. 한줄기 노란 빛이 몸에 닿자 한기가 달아났다. 하나 위로가 있다면, 여행중인 나는 그때와는 달라져있었다. 원망도 후회도 집착도 미련도 허리를 숙여 손내밀어 닿을 파도만큼 얕아 있었다.
불타는 밤의 분지 위로 별이 빛난다
나는, 지나간 이별을 바라보며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거라 확신했다. 그랬기에 다시 시작한 사랑에 자신있었다. 그럼에도 실수는 반복됐다. 교훈을 안겨주고 사랑은 떠났고, 얼마 후 다른 이와 사랑을 시작했다. 이제 알았다. 과거 이별의 오답노트는 현재 진행중인 사랑의 답안지가 될 수 없었다.
하나 더 알것도 같다. 사랑과 다툼은 불가분의 관계라는걸, 이별을 만든 고통들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성장했다면 이별 자체로 힘들어하지는 않았을것을. 결국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이별의 경험도 새로운 이별을 막지 못했다.
몇번의 일반적인 이별을 거치면서, 중간중간 정신이 베이는 이별을 거치면서 더이상 이별을 하지 않을 거라 자만했던 것인지 모른다. 오만했던 과거가 얼굴을 붉힌다.
우린 다르게 태어났고 다르게 사랑받고 다르게 자랐다. 그런 우리가 만나 다투지 않을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나와 같은 사람이 되길 강요했던 것 아닐까. 곰이 호랑이에게 나의 사랑을 받고 싶다면 곰이 되라고 강요한 셈이다. 이기적인 나를 위해 얼마나 가슴아파했을까, 사랑을 지키기 위해 나는 또 얼마나 상처를 받았던가.
그러니 우리는 계속 실수 하게 될 것이고, 고통 받을 것이고, 헤어질 것이다. 하나 위안이 있다면, 일부 사람들은 몇번의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 사랑의 종착지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언젠간 그들처럼 이별이란 자연재해가 멈추길 희망한다. 이별에 슬퍼하지말고 계속 헤어지자. 이별에서 배우고 있다면, 그것은 언젠가 끝날 거라는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