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온두라스, 우띨라

by 김훈

그런 날이 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짙은 안개에 둘러싸인 것 같을 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앞이 무기력한 내 미래인 것 같아 주저앉아 울고 싶은 그런 날 말이다. 팔을 뻗으며 어디로든 도망치려 해도, 끝도 보이지 않은 벽이 스스로 쓰러뜨리며 계속 달리라고 압박한다. 뒤돌아보면 무얼 하는지도 모른 채 달려온 것만 같아 허탈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동안 노력해왔던 것들이 능력이나 상황의 한계 때론 스스로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멈춰야만 할 때,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면서 생각한다.

‘나는 도대체 그동안 뭘 한 거지?’


스스로가 원하지 않았던 결과, 쉽게 말해 실패를 목전에 둔 사람들은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택한다. 그것을 받아들이던가 부정한다. 자신이 저지른 실패를 똑바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은 힘이 든다. 우선 실패를 받아들이는 것은 누구나 힘들다. 하지만 다시는 반복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다음을 기약한다. 부정하는 이에게는 실패가 고통스럽다. 더욱이 나의 안일함으로 무의미하게 날려버린 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동안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며, 좀 더 숙고하지 못한 채 결정 내린 자신이 원망스럽다. 때론 나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사죄해야 하고, 나를 믿어준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는 사실에 고통스럽다. 그래서 부정한다. 그 실패는 어쩔 수 없는 것이며 시작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고 변명하고 자신을 납득시킨다.


과거에 이년 동안 중국어를 공부했다. 2010년 전후반에는 어쩌면 지금보다 더 중국의 영향력이 막대했다. 미팅에 들어가면 온통 중국에 관한 이야기였고, 기존 입사자들은 중국어 공부에 대한 회사의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러니 신입사원들은 대부분 중국어가 가능한 인력이 채용되었다. 나의 중국어 학습기는 치열하게 이끌어왔으나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4성을 배우기 위해 퇴근길 러시아워를 뚫고 한 시간 거리의 중국어 학원을 다녔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녹초의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오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중국어에 대한 관심이 사막의 수분만큼이나 없었다. 어느 정도 말할 실력이 되었음에도 중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유는 중국에 대한 관심이 전무한 것도 있었지만, 단지 전망이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노력을 계속 하기에는 동기가 부재했다. 섣부른 판단에 2년의 시간이 허무해졌다. 생각 없는 결정을 한 내가 한심했지만, 무(無)에 가까운 흥미로 지금까지 공부해온 노력에 박수를 쳐줘야 할 판이었다.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10%로 밑으로 떨어졌다는 뉴스를 본 2010년 어느 날(현재는 6%다), 어쩌지 못해 잡고 있던 중국어의 끈을 놓았다.


후유증은 극심했다. 이년을 낭비한 것만 같았다. 그동안의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미칠 것만 같았다. 그 시간에 다른 공부를 했다면, 사랑하는 이들과 시간을 보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에, 섣부른 선택을 했던 스스로가 견딜 수 없이 미웠다. 나를 미워하는 동안 불행이 이어졌다. 회사에서 좌천을 당하고(비록 내 잘못이지만),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다.

나는 완벽하게 무너졌다. 실패한 기억들이 칼날이 되어 나를 도려냈다. 눈이 펑펑 오는 1월의 이른 아침, 보일러를 꺼놓은 냉골의 방에서 자신을 체벌하고 있었다. 그동안 살아온 날들이 바람에 흩어지는 재처럼 느껴졌다. 실패로 끝났던 노력의 흔적들을 보고 있으니 괴로움이 몰려왔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끝마친 것이 없었다. 그동안 ‘노력했으면 됐다’라는 말로 자위했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감정은 자비 없이 마음을 파괴했고 형 채 없는 마음속 폭군은 폭주했다.

‘나는 과거는 정말 잘못 뿐인 걸까?’

어쩌면 누군가가 나타나서
‘그렇지 않다. 노력한 것만으로 충분히 값지단다’라고
말해주길 바랬던 건 아닐까.


아잔 브라흐마는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잘못 놓인 2개의 벽돌을 보고 자책하기보다는 잘 쌓은 98개의 벽돌을 보라’고 말이다. 마음속에서 배열도 색상도 엉망진창인 벽을 따라 걸었다. 반으로 쪼개진 벽돌은 냉정하게 말한 탓에 사랑했던 사람들이 떠났던 경험이고, 이끼에 쌓여 한쪽에 내던져진 돌들은 진지한 생각 없이 시도해서 쓴맛을 봤던 경험들이었다. 얼마 후, 그동안 잘 쌓아 올린 벽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잘 올려진 벽도 처음부터 온전치는 않았다. 살짝 쪼개지고 엉망인 색깔의 돌들이 튼튼한 지지대가 되어 주었다. 걸음을 뒤로 옮길수록 그것들은 내 인생의 멋진 부분을 담당하고 있었다.


잘해오고 있었다. 실패할 때마다 세상 탓은 했지만 어쨌든 실행에 옮겼다. 나는 누가 뭐래도, 비록 수족관에 갇혀있더라도 바다로 나갈 기대를 품고 있던 활어였다. 시도했던 것들은 세포 곳곳에 스며들어 삶을 이루는 자양분이 되었다. 원하는 결과를 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하더라도 무의미한 시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그것들이 형체를 갖추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때문에 그동안 시도했던 것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자책했던 것이다. 하지만 멀리서 보이는 번듯한 벽돌들은 삐뚤삐뚤하게 놓인 돌들이 받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

온두라스는 매우 위험한 국가다. 특히 수도 테구시갈파 다음 제2의 도시 산 페드로 술라는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에 이어 인구 10만 명당 살인이 111.03명을 기록한, 4년 동안(2010~14년) 살인율 1위라는 불명예를 얻은 무시무시한 도시다. 온두라스를 포함하여 엘 살바도르와 과테말라는 중남미 화약고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마약상과 살인이 도처에 깔린 위험한 국가다. 하지만 온두라스라고 해서 모든 곳이 위험한 건 아니다. 그를 반증하듯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를 방문한다. 바로 우띨라 Utila 섬을 여행하기 위해서다.


우띨라 섬은 온두라스 북부 카리브해에 위치한 섬으로 스쿠버 다이빙과 바다를 즐기러 온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곳에 들어온 식당, 상점, 다이빙 샵들은 대부분 외국인 자본으로 지어진 곳으로 마치 미국령의 섬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온두라스지만 스페인어 한마디 하지 않아도 여행을 즐기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 이상한 곳이다. 우띨라 섬 옆에는 콕센홀이라는 큰 섬이 존재한다. 우띨라가 해양스포츠를 원하는 젊은이들이 찾는 곳이라면, 콕센홀은 고급 리조트가 가득한 부자들의 휴양도시라는 느낌을 강렬히 풍긴다. 물론 물가도 강렬하다.


그곳에서 H를 만났다. 그녀는 다이빙 마스터(스쿠버 다이빙의 최종단계) 코스를 밟고 있었다. 그녀는 알면 알수록 놀라운 사람이었다. 대학을 다니다 의과에 뜻을 굳힌 후 의학 전문 대학원에 진학하여 의사가 되었다. 어깨에 힘 좀 들어갈만한 직업을 갖고 있음에도 그녀는 겸손했다. 나 정도의 의지력이면 나도 할 수 있다며 과분한 칭찬을 해줬다. 그녀가 멋져 보였던 것은, 의사라는 직업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부단히 노력하던 모습이었다. 나중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외국에서 다이빙 샵을 운영하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 부러움마저 느꼈다. 그녀에 비하면 나는 열등감에 사로잡힌 채 유의미한 결과를 내지 못했던 과거가 부끄러웠다. 노력이라면 나도 눈물 날 만큼 했는데 나는 왜 그녀처럼 되지 못했을까.


여행을 떠나기 전이였다면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우울함에 빠졌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런 실패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열심히 노력했던 중국어나 영어에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거나 공무원에 합격하는 유의미한 결과를 내었다면 좀 더 삶이 윤택해질 수 있었겠지만, 그러한 실패들이 쌓여 좀 더 나은 시도를 이끌었고, 결국 지금의 나는 과거의 실패들과 웃으며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러니 실패했다 해도 그것이 내가 잘못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녀가 나보다 똑똑하고 더 의지가 있었던 것뿐이다.


자신이 잘 쌓은 벽돌을 마주하려면 반드시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상대의 능력을 맹목적으로 부러워해서는 안된다. 그 성공의 이유를 참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 성공을 부러워만 한다면, 상대적으로 볼품없는 나를 하찮게 여기게 된다. 그러니 상대의 능력을 기준으로 나를 평가해서는 안된다. 나에게는 다른 이와 다른 능력이 있다고 믿고, 그걸 찾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원하는 길에 도달할 수 있다.


그뿐이다.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세상에는 모두 저마다의 그릇이 있다. 우리는 그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분명 누군가는 같은 양의 노력으로, 때론 내가 들인 것보다 적은 노력으로 큰 성공할 때가 있다. 물론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을 이룬 대다수는 우리가 보지 못한 노력이 쌓여 성공하는 경우지만, 때론 허탈할 정도로 잘난 사람들이 있다. 헐크를 운동으로 이긴다는 것은 애초에 승산이 없는 싸움이다. 그러니 헐크를 그리고 헐크보다 신체적 능력이 낮은 나를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잘못 쌓아 올린 벽돌은 두 개가 아니라 열개, 아니 수십 개가 넘을지 모른다. 잘못된 벽돌이 벽 전체를 위태롭게 할 때마다 나름의 노력으로 수습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가끔 생각한다. 대학 발표 수업에서 벌벌 떨며 겨우 발표를 마쳤던 내가, 영어로 미팅을 진행했고 수십 명의 사람들 앞에서 스페인어와 꿈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던 원동력은 그동안 해왔던 실패의 경험 즉 잘못 놓인 벽돌 덕분이었다.


만일 나에게 실패 없이 노력한 대로 결과가 나왔다면 그 안에 안주하며 절대 원하던 성장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때론 안일한 생각으로 실패를 맛보고, 죽을 만큼 노력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받지 못했다. 물론 그때의 경험이 너무도 괴롭고 비참하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 시간 때문에 지금의 나는 제법 괜찮아졌다. 때론 너무도 식상해서 뻔한 엔딩 멘트 때문에 고민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식상함을 다시 꺼내야 할 때가 있다.


잘못 놓인 벽돌이 날 힘들게 했지만 그 결과 나는 좀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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