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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훈 Feb 26. 2022

프롤로그. 3년의 귀농을 정리하다

귀농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면

 귀농한 지 벌써 4년 차가 되었습니다. 문득 귀농을 결심했던 때를 떠올려 봅니다. 이유 없는 아득한 희망에 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거친 삶을 견디며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들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실에 이 악물고 잠든 날도 참 많았습니다. 덕분에 치열이 망가져 마흔이 넘은 나이에 교정을 해야 할 상황이니, 제게도 귀농을 결정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민이 컷다해서 귀농 생활이 순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해가 떨어져야 겨우 끝나는 일과에 몸은 지쳐갔고, 나아지지 않는 경제적 사정에 마음도 시들어갔습니다. 한순간의 판단 오류로 밭은 병충해로 뒤덮였고, 중간 매매상의 농간으로 수천만 원의 피해를 입어 오랜 소송을 견디는 중입니다.

하우스 비닐을 손질하다 철심이 튀어 눈을 잃을 뻔했습니다. 비 오는 어느 날 하우스 수리 중에 미끄러졌는데 그 충격이 너무 심해 비 고인 논바닥에 누워 수분 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만약 머리로 넘어졌다면, 이 글을 쓰지 못했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보이지 않았던 농촌의 부조리들, 지자체의 이해 못 할 행정, 생활고에 견디다 못해 스스로 삶을 내려놓은 동료 농부의 부고 소식에 귀농을 접으려 한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하지만 돌아갈 길이 없었습니다. 스페인어와 세계여행을 컨설팅했던 저는, 코로나 19로 인해 모든 걸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모든걸 걸었습니다.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실패한다면 저 또한 이곳에서 삶을 묻을 생각이었습니다. 다행히 삶은 간절한 제게 손을 내밀어 줬고, 어린 나이에 귀농 성공 사례라는 타이틀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쪽파를 생산하고 1차 및 2차 가공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간혹 저를 사업가로 소개하는 분이 있지만, 제 시작은 귀농이었고 현재도 농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스스로를 '농민'이라 생각합니다. 단순 쪽파 생산만으로 억대의 매출을, 금년 구축한 1,2차 가공을 통해 수배의 수익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여러곳에서 강연 의뢰를 받고 있지만 시간적 한계 때문에 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청년농업인들과 생각이 많아질 대화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현재의 농촌은 제가 귀농을 결심한 3~4년 전에 비해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인터넷 발달로 원하는 것은 수초면 알아낼 수 있는 세상인데, 이곳만은 달랐습니다. 큰 고민 없이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장밋빛 성공사례에 혹했고, 귀농 상담을 해준다는 농약방 사장의 말만 믿고 고소득 작물을 선택하는가 하면, 구체적인 계획 없이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감명 받았다며 귀농한 사례까지 수년 전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사실 지금의 농업은 과거에 비하면 상전벽해할 정도지만, 핵심 정보는 매우 비대칭이며 노하우에 속하기 때문에 친한 누군가에게 듣거나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터득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농업의 특성상, 한 번의 실패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 있기에, 농업에 진입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성공하는 이가 많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귀농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은, 대부분 귀농 후에나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웃과의 텃세는 어떻게 극복할지, 왜 농사를 하면 할수록 가난해지는지, 지원사업은 어떻게 따내는지, 농업에 미래가 있긴 한건지 등, 농업을 한발짝 뒤에서 바라봐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것들 투성입니다.


 청년농업인들과의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농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쓰러져가는 농업과 소멸의 길을 걷는 농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 고민의 결과가 이 글입니다. 어떻게 귀농을 준비하고, 귀농 후에는 어떤 식으로 사업을 이끌어야 하는지, 그 길을 조금 먼저 걸었던 사람으로서 고역의 시간을 가감 없이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독하는 농민

 물론 제 글만으로 여러분의 귀농이 갑자기 물 흐르듯 진행되지 않을 것입니다. 타인의 성공 사례가 제게 작용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귀농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귀농 후에도 시행착오를 통해서만 알 수 있었던 것들을 미리 알았다면 좀 더 치밀하고 명확한 전략을 구축할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이 큽니다.


 어쩌면 이 글이 당신을 불편하게 만들지 모릅니다. 귀농의 의지를 꺾을 수도, 성공한 여러 귀농인에 비해 초라함을 느낄지도, 앞으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모를 농업의 미래가 답답함으로 다가올지 모릅니다. 그것이 바로 이 글을 쓴 이유입니다. 이 기록들이 귀농을 고민하는, 또는 이미 귀농을 결정했든, 귀농 후 사업화에 대한 고민이 있는 농민 모두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글의 말미에는 모두 자신만의 해답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이제 천천히 과감하게 써내려 가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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