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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Aug 18. 2022

누가 네 이름을 그렇게 지었니?

숨은 제주를 발견하는 재주 4 - 서건도

언젠가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훑어보다가 격세지감을 느꼈던 적이 있다.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1.

졸업 앨범 맨 뒤에 졸업한 학생 모두의 주소와 집 전화번호가 실려있다. (개인정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집 전화번호가 없는 집이 없다는 게 킬 포인트. 집 전화기가 그립감은 참 좋았지.)

2.

그해 졸업 앨범에 실린 학생수는 350명이 넘는다. (한 반당 45명씩 8반). 지금 나는 내가 졸업한 그 학교에서 근무하는데, 내가 가르치는 학년의 학생수는 다 합해봐야 60여 명이다. 저학년으로 갈수록 학생 수는 줄어든다. 학군 조정 탓도 있겠지만 확실히 저출생 문제는 심각하다.

3.

6학년 현장체험학습을 무려 '돈내코'로 갔다. 지금 350명이 넘는 학생을 데리고 돈내코로 현장체험학습을 간다고 하면? 아마도 뉴스에 나올 거다. 돈내코에서 350명이 같이 물놀이하고 도시락을 먹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무지 그림이 안 그려진다.

이것이 1990's 클라스

기억나는 건 다른 반 친구 중 한 명이 누군가가 던진 돌에 눈두덩이를 맞아 집에 먼저 갔다는 사실. 그리고 어쨌든 즐거운 하루였다는 것. 졸업 앨범 속 모두 해맑게 웃고 있는 반별 단체 사진이 이를 증명한다.

아마도 우리는 현장체험학습을 돈내코로 갈 수 있었던 마지막 세대였다. 그 사실이 새삼 감사하다. 


돈내코 현장체험학습을 떠올리면 넝쿨째 함께 딸려오는 기억이 있다. 썩은 섬.

몇 학년 때였더라. 우리는 분명 '썩은 섬'으로 현장체험학습을 갔다. 썩은 섬에 들어가진 않고 그 앞바다에서 놀았던 것 같다. 그날을 떠올리다가 다시 한번 놀라게 되는 사실 하나는, 썩은 섬엔 버스가 못 들어가기 때문에 꽤 먼 곳에 버스를 세워두고 걸어가야 하는데 그때는 350명이 버스를 저 멀리 세워두고 1km가 넘는 거리를 단지 놀겠다는 일념 하나로 불평불만 없이 걸어가는 게 가능했고 그게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았다는 사실. 나는 그런 시대를 살았다.

서건도에서 바라본 한라산

그때의 아이들은 참 잘 놀았다. 언제 어디서든 놀 줄 알았다. 그날도 그랬다. 누군가가 자갈 사이사이에 조개가 있다는 걸 발견하자 이곳저곳에서 조개 치기 한판이 펼쳐졌고, 저쪽에서는 꽃게를 잡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시절, 우리는 모두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였다. 놀 게 없으면 놀 거리를 만들어서라도 놀았다. 요즘 아이들을 보며 가장 아쉬운 어울려 놀 줄 모른다는 다. 노는 모습조차 따로 따로다. 어렸을 때 잘 놀아둬야 그 힘으로 어른의 무게를 버틸 수 있는데...


그러고 보 그때는 그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놀았던 것 같다. 노느라 바빠서인지 누구도 묻지 않았다. 왜 이 섬의 이름이 썩은 섬인지에 대해.

썩은 섬이라 불리기엔 너는 너무 아름답다


이제 이 섬은 서건도라 불린다. 썩은 섬이라 부르기엔 너무 아름답다는 걸 뒤늦게 인식했는지 이제 더 이상 이 섬을 썩은 섬이라 부르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글의 목적은 이 섬에 썩은 섬이라 이름 붙인 사람을 찾아 잘못을 추궁하려는 게 아니다. 이 섬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낱낱이 밝혀 다시는 이 섬을 썩은 섬이라고 부르지 못하도록 예전의 이름을 지우는 게 이 글의 목적이다.




서건도는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운 섬이다. 일단 크기가 앙증맞다. 한 바퀴 도는 데 넉넉 잡아 30분이 안 걸린다. 거리도 가까워서 차를 세워두고 2-30분만 걸어가면 섬에 닿을 수 있다. 다만 섬에 들어가려는 모두에게 출입을 허락하진 않는데, 썰물 때 들어가서 밀물이 들기 전에 나와야만 한다. 아주 그냥 밀당의 고수다. 그 새침함이 귀엽다. 나는 이런 곳들을 사랑한다.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아무나 갈 수 없는 곳.


예전에 이 사실을 간과하고 서건도에서 백패킹을 했다가 다음 날 아침에 못 나왔던 기억이 있다. 아침에 텐트에서 일어나 짐 챙기고 나가려는데 내가 잤던 '진짜 섬'이 되어버린 걸 보고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백패킹을 함께 했던 후배 역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렇게 될 줄 몰랐다는 듯(사실은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지만 확인을 미처 하지 못했다) 무심하게 말했다.

"종종 있는 일이야. 11시까지만 기다리면 돼."


'썰물의 섬에 들어갔다 밀물의 섬에 갇힌 썰'의 단초가 된 백패킹을 하던 밤, 술 한잔 하고 후배가 먼저 잠들자 야밤의 산책을 감행했다. 서건도의 뒤편에 편평한 바위 넓게 펼쳐진 곳이 있다. 의자처럼 앉기 편한 바위가 있어 앉아있으려니 그날따라 사위도 어둡고 파도소리도 잦아들어 어느 순간엔 적막만이 나를 감쌌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다 보니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인지 꿈인지... 잔잔한 바다 위에 부서지는 달빛만이 내가 깨어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거, BGM 틀어놓고 생각에 잠기기 딱 좋은 날이구만-. 며칠 후면 가게 될 정태춘, 박은옥 콘서트가 떠올라 정태춘, 박은옥의 노래를 BGM으로 틀어놓았다. 플레이리스트를 무심코 듣다가 처음 들어본 노래에서 의식의 흐름이 툭,하고 끊겼는데 그때 이미 내 얼굴에는 뜨거운 뭔가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제목을 보니 '사망부가'. 이거 제목부터가 울라고 만든 노래군.


저 산꼭대기 아버지 무덤

모진 세파 속을 헤치다 이제 잠드신 자리

나 오늘 다시 찾아가네

길도 없는 언덕배기에 상포 자락 휘날리며

요랑소리 따라가며 숨 가쁘던 그 언덕길

지금은 싸늘한 달빛만 내리비칠

아 작은 비석도 없는

이승에서 못다 하신 그 말씀 들으러

잔 부으러 나는 가네

저 산꼭대 아버지 무덤

지친 걸음 이제 여기와 홀로 쉬시는 자리

나 오늘 다시 찾아가네

...

지금은 어디서 어둠만 내려올 뿐

아 석상 하나도 없는.

다시 볼 수 없는 분 그모습 기리러

잔 부으러 나는 가네

- 정태춘, 사망부가


술이 더 없는 게 다행이었다. 앉은자리에서 눈물을 훔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일어나 그곳에 다시 가봤더니 일출이 시작되고 있었다. 문섬 위에 내려앉은 해가 앙증맞았다.


11시가 되어 서건도에서 나오다가 지역 주민을 만났다.

"썩은 섬(썩은 섬으로 부르지 말라구요. 따라해보세요. 서!건!도!)에서 자신 거예요?섬에 무덤 있는 거 모르셨어요?"

나는 애써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섬에 무덤이 있는 건 내게 중요치 않았다.


며칠 후 친척 동생이 내 딸과 사촌동생을 데리고 어딘가로 놀러 간다고 하길래 기쁜 마음으로 보내줬다. (이게 웬 횡재냐!) 그날 사촌동생이 보내준 사진은 지금도 내가 가장 아끼는 사진으로 남아있다. (하마터면 나도 애플폰으로 갈아탈 뻔)


이 사진을 보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다시는 절대로 너를 썩은 섬이라고 부르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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